컨텐츠 바로가기

12.23 (월)

제3자 입금 사기, 신종 보이스피싱 기승… 눈 뜨고 코 베이지 않는 금융보안 수칙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엄마, 나 폰이 고장나서 그러는데 문자 확인하면 답장 줘. 폰 액정보험 인증가입해야 하는데 폰이 고장나서, 엄마 명의로 해도 될까.”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처럼 부지런한 족속들도 없다. 대학 합격자 발표 시즌에는 대학을 사칭해 합격조회나 입학 등록금 납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연말정산 시기에는 국세청이라면서 ‘연말정산 내역 조회’ 링크를 첨부한다. 모바일 청첩장 링크,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링크, 택배 오배송 확인 링크, 해외 구매 통관 확인 문자 등은 이미 누구나 한 번쯤 받아본 ‘국민 스팸’이 됐다.

2021년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1691억원에 달한다.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에 따르면 지난 2019~ 2021년 3년 동안 국민 2명 가운데 1명(48.0%)은 금융사기 피해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국민 절반이 보이스피싱 관련 문자나 전화를 받은 적이 있고 악성코드 설치 등 스미싱이나 해킹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실제 금전적 손실을 본 경우는 3.3%였으며, 평균 피해 금액은 2141만원에 달했다.

금융당국과 경찰청이 발 빠르게 예방 대책을 만들고 있지만, 사기꾼들은 늘 새로운 수법으로 피해자들의 돈을 갈취하곤 한다. ‘누가 그런 뻔한 거짓말에 속아?’라고 치부하기에는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새로운 방식이 동원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요즘 기승을 부리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의 키워드는 ‘제3자 사기’이다. 멀쩡하게 중고 물품(주로 상품권)을 판매하고 내 계좌로 돈을 받았는데도 보이스피싱범으로 몰릴 수 있다.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제3자가 물건만 가로채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멋대로 통장에 돈을 입금하고 범죄계좌로 신고한 뒤 돈을 요구하는 뻔뻔한 ‘제3자 입금’ 수법도 등장했다. 요즘 기승을 부리는 보이스피싱 수법과 예방수칙 등을 정리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 계좌로 모르는 돈 입금
어느 날 통장에 이상한 이름으로 15만원이 입금된다. 그리고 바로 그 계좌가 정지됐다는 문자가 온다. 은행 상담원과 통화해보니 A씨라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이 내 계좌에 입금됐다고 한다. A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내 계좌가 보이스피싱용으로 의심됐고, 은행에서 지급정지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일이면 모든 계좌의 비대면 거래가 중지된다고 한다. 범죄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는 신고 확인서를 제출해도 계좌정지가 풀릴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단다. 나는 아무 짓도 안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최근 악랄한 수법으로 알려진 제3자 사기다. 사기범은 입금자명을 ‘아이디(HE***)’로 지정해 텔레그램 대화를 유도한 뒤 ‘계좌정지를 풀려면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심지어 나에게 돈을 입금한 A씨 스마트폰을 해킹해 돈을 입금한 것도 사기범이었다. 원래 도박 사이트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던 수법인데, 최근에는 당장 계좌가 막히면 불편을 겪을 수 있는 일반인이나 자영업자까지 대상을 넓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범 신분은 노출되지 않으면서, 애꿎은 피해자끼리 실랑이를 벌이게 만드는 악질적인 수법이다.

해당 금융사와 돈을 입금한 피해자가 적극 대응하면 하루 이틀 안에 계좌정지를 풀 수 있지만, 길게는 보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체크카드 사용, 카드대금 결제, 자동이체 등이 막히기 때문에 경제 활동이 사실상 중지된다. 장사를 하기 위해 매일 대금을 주고받아야 하는 사업자라면 피해 금액은 더욱 커진다. 게다가 자영업자들은 영업 등을 위해 계좌를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사기꾼들의 타깃이 되곤 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의 허점을 이용한 범죄로 특정 은행이 아니라 모든 은행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전에도 종종 있던 수법인데 최근 다시 보이는 것 같다”면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은 계좌번호를 노출할 수밖에 없는데, 누구나 이런 수법에 당할 수 있는 만큼 당국의 추가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저금리 정책 대출” 문자는 사기
“최대 3억원, 최저 1.2% 고정금리 정책자금대출 받으세요. 최근 난방비 폭탄에 줄줄이 인상되는 공공요금, 고금리·고물가로 많이 힘드시죠? 금융취약층들의 경제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추가지원예산안을 편성해 ‘비상편성 민생회복 정책자금대출’을 시행합니다. 귀하께서는 대출 대상이지만 아직 미신청으로 확인돼 재안내드립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최근 이런 문자를 받고 눈이 번쩍 뜨였다. 김 씨는 “나도 모르게 전화를 걸 뻔했는데, 남편이 옆에서 ‘은행이 대출해준다고 먼저 안내하는 것 봤냐’고 말려서 그만뒀다”면서 “평소 같았으면 그냥 무시했겠지만 사정이 워낙 어렵다보니 순간 혹하더라. 가뜩이나 힘든데 보이스피싱 사기까지 당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도 잘 버텼는데 식재료와 난방비 등이 오르면서 요즘이 더 힘들다. 대출은 이미 풀로 받았고 신용점수가 높다면서 저금리 정책자금도 못 받아서 돈 나올 구멍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같이 정책자금대출이 나오는 것처럼 속여 보이스피싱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금융감독원은 생활물가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층을 위해 정책자금 대출이 나온 것처럼 속여 보이스피싱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이런 사기 문자는 ‘주관재단’을 기획재정부로 소개하고, 취급기관은 1금융권이라고 안내한다. ‘신용보증재단이 보증비율 100%로 보증한다. 마감이 임박했으니 비대면 온라인 신청 접수(전자 약정)’를 하라면서 허위 연락처로 전화할 것을 유도한다.

물론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이다. 대출 희망자가 전화를 걸면 정확한 상담을 위해 필요하다며 개인정보 등을 요청하고 대출 실행을 위한 사전 자금 입금 등을 요구하는 식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정보와 돈을 가로챈다. 박정은 금감원 금융사기전담대응단 부국장은 “금융 회사가 기존 대출 고객을 대상으로 만기 연장 등 대출 관련 정보 문자를 발송하는 경우는 있으나, 불특정 다수에게 대출 안내·광고 문자를 무작위로 발송하지는 않는다”며 “대출을 빙자한 개인정보 요구, 기존 대출 상환 및 신용등급 상향을 위한 자금 이체 요구 시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해야 한다. 금융사기 피해가 발생했다면 신속히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 시 행동 요령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면서 이동통신 3사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통신사들은 최근 대용량 파일 전송 등이 가능한 문자메시지 서비스 RCS(리치 커뮤니케이션 스위트)로 공인알림문자를 발송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RCS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가 정의한 국제 표준 메시지 규격이다. 그룹 채팅, 읽음 확인, 선물하기, 송금하기, 대용량 파일 전송 등 기존 문자메시지보다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RCS 방식 공인알림문자는 기존 문자메시지에서 ‘전화번호’로 표기됐던 발송 기관을 이미지 형태의 브랜드로 바꿔서 보여준다. 해당 기관이나 기업이 발송한 문자임을 안심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공인알림문자에 안심마크를 적용해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 걱정 없이 전자문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통사 사기 문자 대책 나서
정부 기관 중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처음으로 고용유지지원금 안내문이 담긴 공인알림문자를 안심마크가 포함된 RCS 방식으로 근로자와 사업주에게 시범 발송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또 고객이 수신한 전자문서를 쉽게 재확인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의 기본 문자메시지 메뉴에 ‘공인알림문자 전자문서함’을 만들어 올 상반기 중 제공할 예정이다.

중고거래에서 상대방이 토스뱅크 이용을 꺼린다면 사기를 의심해볼 만 하다. 토스가 사기계좌 안내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은행은 지난 1월 사기 의심거래를 탐지하면 고객이 설정한 가족에게 관련 알림을 보내주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구체적으로 의심거래가 발생하면 연결된 가족에게 피해 발생 날짜와 피싱·중고거래·명의 도용 등 금융사고 유형까지 알려준다.

토스 관계자는 “범죄 상황에 노출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사후 처리가 미흡해진다는 점에 착안해 금융사고 내용을 가족에게 발 빠르게 공유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매일경제

금융사기 예방 관련 서울 시내 ATM 보이스피싱 방지 안내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림은 토스 앱 푸시나 카카오 알림톡으로 전달되며,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도 함께 안내해준다. 계좌정지와 카드 분실신고 신청하는 법, 사고예방 시스템에 등록하는 법 등 당황한 피해자가 밟아야 할 절차들을 알려줘 유용하다. 피해자는 토스 고객센터에 피해 구제를 위한 ‘안심보상제’도 신청할 수 있다. 안심보상제는 명의 도용, 보이스피싱, 중고거래 사기 등 금융 생활 중 발생하는 다양한 피해를 토스가 선제적으로 보상해주는 제도다.

보이스피싱 피해 보상 보험도 등장
보험사들은 보이스피싱 피해를 보상해주는 상품까지 내놓았다. 삼성화재가 최근 선보인 사이버사고 보험은 보이스피싱, 메신저피싱, 해킹 등 금융사기로 말미암아 피보험자 명의의 계좌에서 예금이 부당하게 인출되거나 신용카드가 부당하게 사용돼 발생한 피해를 보상한다. ▲사이버 금융범죄 피해 보상 ▲인터넷 직거래·쇼핑몰 사기피해 보상 ▲온라인 활동 중 배상책임 및 법률비용을 담보별 200만원 한도로 보장한다. 단, 경찰에서 금전상 사기 피해임을 확정받아야 하며, 계약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함께 가입할 수 있다.

삼성화재 외에도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현대해상을 비롯해 손보사 대부분이 ‘특약’을 통해 금융사기 피해를 보상한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도 금융안심보험을 판매 중이다. 온라인 금융사기와 온라인 직거래 사기 피해를 보상하며 한도액은 각각 100만원(자기부담비율 20%), 20만원(자기부담비율 20%)이다. 개인과 기업이 가입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보상 내용을 설정하고 보험료를 내면 된다. 카카오톡으로 함께 가입할 가족을 추가할 수 있으며, 인원이 늘면 최대 10% 할인도 적용된다.

[신찬옥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0호 (2023년 3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