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수 목사는 “센터를 찾는 이주 노동자들을 상대로 전도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라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야말로 목회이고 전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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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수 목사(75)는 ‘외국인 노동자의 대부’로 불린다. 한때 그는 외교관을 꿈꾸던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그의 인생은 스물아홉 살 때 출판사 ‘청년사’를 차리면서 180도 바뀌었다. 1970년대 여공의 비참한 생활을 다룬 산문집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1980)을 출판해 전두환 정권에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로부터 40년 넘게 지나 이제 목사가 된 그는 최근 비슷한 결의 책을 펴냈다. 16년간 이주 노동자 상담 기록을 묶은 자그마치 10권짜리 『오랑캐꽃이 핀다』(박영률출판사·사진)다. 지난 2일 수원 경기도노동복지센터 노동상담소에서 한 목사를 만났다.
그는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을 출간했던 40년 전을 회상하며 “판매금지가 될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에 초판을 2만 부나 찍었다”고 말했다. 한 번에 많이 찍어 신속하게 유통시키자는 생각이었다. “정상적인 루트로는 보급이 불가능할 것 같아 교회 청년회 등에 책을 대량으로 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오랑캐꽃이 핀다 |
정권을 피해 전전하던 그는 농사도 짓고 사업도 여러 차례 벌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빚쟁이에 쫓기던 쉰네 살의 그는 돌연 목사 공부를 시작했다. 채권자들이 신학교까지 찾아와 빚 독촉하지는 않을 것 같아 도피처로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이 또 한 번 그의 인생을 바꿨다. 예순의 나이에 목사가 됐고, 경기도 안산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났다. 30대에 노동 서적을 출판하며 만났던 여공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길로 연고도 없는 화성에 가서 ‘화성 외국인 노동자 센터’를 만들었다. 전국에서 이주 노동자가 가장 많은 동네라는 게 유일한 이유였다. 이후 16년간 퇴직금 떼이고 월급 떼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돈을 대신 받아주는 일을 했다.
‘소장’이라는 직함의 그가 센터에서 받는 월급은 70만원이다. 남들 떼인 돈은 받아주지만 정작 자기 월급은 못 챙기는 일도 많다. 후원금이 들쑥날쑥해 직원을 줄여야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센터 운영을 접지는 않았다.
그는 16년 동안 센터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무명씨들의 도움 덕분”이고 “이상한 일”이라며 웃었다. 센터를 접어야 할까 고민하는 순간마다 새 후원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비영리단체는 5년만 넘기면 안 망한다는 말만 듣고 그때까지만 어떻게 버텨보자고 했는데, 실제로 5년을 넘기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뜻밖의 후원자들이 생겼다. 신자가 세 명밖에 안 되는 작은 교회에서 후원금 400만원을 보내온 적도 있다. 희한하게도 매번 그런 식으로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15년 8개월이 지나갔다”고 했다.
이주 노동자들을 도우며 얻은 명성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게 “전국에서 제일 돈 잘 받아주는 목사”라는 별명이다. 화성 외국인 노동자 센터는 지금도 일요일만 되면 전국에서 찾아온 이주 노동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전립선암 투병 끝에 심실보조장치까지 달게 됐지만 한 목사는 일을 쉬는 법이 없다. “걸어서 센터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동분서주하는 동안 한국의 이주 노동자 인권은 나아졌을까. “이제는 월급 떼먹는 사장은 없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다만 퇴직금을 안 주려는 꼼수는 여전히 횡행한다. 그는 “그래도 상황은 조금씩 나아진다”며 “퇴직금을 안 주려고 계약 종료 직전 해고하거나 월급에서 뗀 돈을 퇴직금이라며 주는 관행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의 철칙은 센터를 찾는 이주 노동자들을 상대로 전도하지 않는 것이다. “도와주는 대가로 교회에 나오라고 하면 그건 ‘기브 앤 테이크’일 뿐”이라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목회이고 전도다. 힘닿는 데까지는,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그저 무작정 돕고 싶다”라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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