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협상과정서 "언론보도된 우회지원 불가"
대통령실, 해법 발표 채근…2차 공개토론도 반대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과 면담을 진행했다. 외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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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다음주 초 강제동원(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그동안 주장해온 '일본 피고기업의 기부 참여' 없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협상을 뒤로 하고 발표를 앞당기게 된 배경엔 대통령실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다음주 초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안을 발표하고, 이르면 이달 중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4일 이와 관련해 "현재 외교 당국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협의가 종료되는대로 설명드릴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외교부는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정해진 바 없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정부 강제동원 해법안은 일본 전범기업들이 사과하고 현금으로 배상하라고 주장해온 피해자들 입장과 상반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간 외교부가 촉구해온 '일본 피고기업의 기부 참여'가 배제돼 적잖은 반발과 논란이 불가피해보인다. 외교부는 지난 1월 행정안전부 산하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금에 준하는 판결금을 강제동원 원고들에게 지급하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성의있는 호응조치'를 촉구했다.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대통령실은 '일본과의 합의가 실패하면 먼저 최종안을 발표하자'는 취지로 봉합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한국의 외교적 지위가 격상된 만큼, 정부가 담대하게 선제적으로 나서는 협상안을 발표하고 추후 일본 피고기업의 자발적 기부 등을 협의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지난 1월 공개토론회에 이어 추가 토론회를 개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피고기업이 자발적 기부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일본 피고기업이 배상금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강요할 수 없다"며 선그어왔다. 일본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우리 정부에 "세간에 공개된 방식으로 피고기업이 돈을 낼 경우 사실상 배상금이라고 인식될 것"이라고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본 시민단체 '호쿠리쿠 연락회'의 나카가와 미유키 사무국장 또한 "돈을 낸다는 것 자체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피고기업들은 쉽게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지난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올해 94세인 강제 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95세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쳤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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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 사이 '피고기업의 관여'를 두고 공감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공개토론회 이후 정부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일본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고, 일본 외무성 또한 일본의 호응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양측 모두 '조속한 셔틀외교 복원'에 매몰돼 강제동원 문제 봉합을 서두르면서 결국 일본의 적극적인 사죄 표명과 우회적인 배상지원 얻지 못하게 됐다. 한일 관계를 담당한 정부 인사와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좀 더 시간을 두고 협상하는 방안을 건의했지만, 윤 대통령은 조속한 한일관계 개선을 우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강제동원 해법 시간표를 서두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 외무성 역시 입장을 바꿔 협상에 비협조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 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한국 정부의 해법 발표가 이뤄지면 반성이 담긴 과거 담화의 계승을 표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가장 큰 쟁점이 됐던 재단 기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이 없는 한일 협력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피고기업의 후원을 받은 게이단렌이 별도로 한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급 및 한일협력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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