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 지휘로 콜레기움 보칼레·무지쿰 서울, 예술의전당서 3시간여 대곡 연주
연주자들, 바흐 음악 본질에 온전히 헌신…관객들은 인간에 대한 연민의 순간에 참여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저희 오늘 '마태수난곡'을 처음 했습니다".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로크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고음악 단체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3시간여의 대곡인 바흐의 '마태수난곡' 연주를 마치고 나서 김선아 지휘자가 다시 포디엄에 서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은 창단 16년 만에,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은 7년 만에 해낸 최초의 '마태수난곡' 공연이었다.
하나의 음악 단체를 가꾸고 키워온 그간의 노고와 함께 한 식구들을 향한 애정이,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예술가다운 인식이 그 한마디에 전달됐다. 지휘자 김선아는 악단의 나이는 사람 나이와 비슷하다면서 "아직은 어리기만 한" 악단에 지속적인 격려와 응원을 부탁했다.
"수난절입니다. 요즘은 기독교가 칭찬받지 못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시지요. 지진이, 전쟁이, 세계에 가득합니다. 코로나로 또 경제적인 위기로 많은 이웃이 어려운 요즘, 우리도 이 음악을 들으며 예수님의 희생정신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선아 지휘자와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은 작품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 연주된 파울 게르하르트의 합창곡을 우리말로 불렀고, 수난절의 전통에 따라 박수 없이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며 흩어지기로 했다. 아마도 국내 공연장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운 희귀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지휘자 김선아 |
그러나 사실 이러한 침묵과 묵상,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이 이 작품의 연주 목적이자 그 본질이기에 김선아 지휘자의 앙코르곡과 인사말은 그 자체로 음악의 일부였다.
명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리허설하면서 단원들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유령의 존재를 믿으세요!"
그와 같이 이날 공연에서 연주자와 관객들은 모두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인간다운 연민의 공동체가 됐다.
이날 공연 분위기는 진지하고 밀도 높았다. 솔리스트로는 복음사가(福音史家·오라토리오나 수난곡에서 내레이터 역할)에 테너 홍민섭, 알토에 카운터테너 정민호, 베이스에 우경식 등 그동안 김선아 지휘자와 함께했던 낯익은 얼굴들이 참여했고, 예수에 베이스 안대현, 카운터테너 장정권, 테너 유종훈 등이 객원으로 함께 했다.
소프라노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단원이기도 한 윤지와 임소정이 맡았다. 솔리스트들은 깨끗하고 훌륭한 가창을 들려줬고, 모두 개성 있는 음색과 창법을 지녀 근본적으로 '성극'(聖劇)의 성격을 가진 작품의 재현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중 비중이 가장 높은 복음사가의 홍민섭은 발군의 기량을 보여줬다. 제45곡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성악 창법)에서 한 번의 실수가 있었고 후반부 몇몇 지점에서 독일어 낭송이 무뎌진 대목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시종일관 복음사가의 미덕을 잘 보여줬다.
정확한 발음과 음정, 다채로운 낭송과 뉘앙스의 표현 등은 손색이 없었고, 특히 놀라웠던 것은 제18곡 겟세마네의 기도 장면에서 묻어나는 근심과 체념의 뉘앙스, 제38곡의 베드로의 부인 장면에서 표현된 통곡의 감정이입, 제61곡 예수의 죽음을 선언하는 대목의 처절함과 침묵- 바흐 음악이 빚어낸 참으로 아찔한 연출이었다-등이었다.
보통 복음사가는 서술자의 역할이지만, 바흐는 보고적 진술과 고백적 표현을 결합해 복음사가 또한 예배에 참여하는 이임을 상기시킨다. 이 점에서 홍민섭의 연주는 고백의 파토스로서 작품의 핵심을 건드린 탁월한 해석이었다.
정민호의 따뜻한 가창도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제39곡 아리아에서 악장 백승록의 오블리가토 바이올린과 함께 한 이중주는 오늘 전곡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베이스 우경식은 빌라도, 대제사장 등을 맡은 성극 부분에서 성격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줬고, 예수의 안대현, 소프라노 윤지와 테너 유종훈의 아리아도 인상적이었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
합창대는 군중 혹은 무리의 역할과 묵상 내용을 읊조리는 코랄(합창곡)로 오가며 노래했는데, 전자를 연기할 때는 대위법적인 얽힘이 우세하고, 코랄 연주에는 단성적으로 화성을 쌓아 올린 찬송가풍 노래를 선보인다.
이날 합창은 이 두 가지를 오가면서도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콜레기움 무지쿰 또한 좋은 연주를 보여줬고, 특히 강지연의 비올라 다 감바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고악기 특성상 현이 느슨해져 음정이 흩어지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긴 음가에서 음정 혹은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목관 악기의 경우에는 성악과 짝을 이뤄 이중주를 할 때보다는 복수의 악기가 화성적으로 움직일 때 깨끗한 소리를 들려주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이러한 세부적인 아쉬움에도 이날 공연은 뜻깊었다.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공연과 예배, 재현과 묵상, 연극과 고백, 제의와 실제 삶 사이를 오간다. 무대 위의 음악가는 연주자인 동시에 예배에 참여하는 회중이기도 하다.
김선아 지휘자를 중심으로 모든 연주자는 바흐 음악의 본질에 온전히 헌신했고, 관객들 또한 음악을 통해 인간에 대한 연민의 한순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한국을 넘어 국제적인 고음악 앙상블로 발돋움하기를 모두가 바라게 되는 연주, 본질이 주는 흡족함을 모두가 누린 연주였다.
lied99@han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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