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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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을 다니는 4년차 직장인 이모(33)씨에게 언론에서 보도되는 ‘○○기업 보너스 1000% 지급’, ‘5대 은행 1조원 성과급’ 같은 대기업과 은행권의 보너스 얘기는 그저 딴 세상 얘기다. 이씨는 지난해 연봉이 4%가량 올랐지만, 고공비행하는 장바구니 물가에 실제 소득은 오히려 뒷걸음질 친 느낌이다. 연말 성과급도 별도로 없었다. 이씨는 “물가는 눈에 보일 정도로 올랐는데 연봉은 그대로인 것 같다”며 “올해는 난방비 폭탄까지 맞아서 어디서부터 지출을 줄여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월급이 늘어나도 생활은 더욱 팍팍해지는 현실이 실제 통계로 나타났다. 전례 없는 고물가가 덮쳤던 지난해 월평균 실질임금이 처음으로 역성장한 것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그나마 올랐지만,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의 실질임금은 0.6% 감소하면서 전체 임금을 크게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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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 첫 ‘역성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2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물가 수준을 반영한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59만 2000원으로, 전년(359만 9000원) 대비 0.2% 감소했다. 연간 월평균 실질임금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상용직 1인 이상 사업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래 처음이다.
이는 통장에 찍히는 급여 금액이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지난해 명목임금은 386만 9000원을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4.9%를 기록했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그보다 높은 5.1% 증가했다. 1998년 외환위기(7.5%) 이후 24년 만에 최대치다. 특히 460개 소비자물가 품목 가운데 88.7%인 408개 가격이 뛰면서 체감되는 물가도 크게 올랐다.
정향숙 고용부 노동시장조사과장은 “(높은 물가 상승률은) 국제에너지 가격의 상승, 원자재, 전쟁과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차질 등이 영향을 끼쳤다”며 “올해도 물가상승률이 3.5~3.8%로 전망되고 있어 명목임금 상승률이 4%를 초과하지 못하면 실질임금은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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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0.6%↓ 대기업 1.0%↑
구체적으로 보면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임금 하락은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서 두드러졌다. 지난해 명목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6.1%)와 300인 미만 사업체(4.4%) 모두 전년보다 증가했다. 하지만 실질임금을 기준으로 보면 300인 이상 사업체는 1.0% 증가한 반면, 300인 미만 사업체는 0.6% 감소했다. 300인 미만 실질임금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도 2011년 이후 첫 사례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실질임금이 상대적으로 박한 것은 역대급 실적을 거둔 일부 대기업·금융권의 성과급 '잔치'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정액 급여 평균 인상률은 300인 이상(4.3%)과 300인 미만(4.1%)에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성과급을 포함한 특별급여 인상률은 300인 이상(26.2%)이 300인 미만(12.1%)의 2배 수준이었다.
최근 취업정보 플랫폼 '사람인 HR연구소'가 341개사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성과급 지급 비율은 중소·스타트업(54.0%)이 대·중견기업(67.2%)보다 13.2%포인트 낮았다. 과도한 성과급이 중소기업과의 임금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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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물가 압력’ 버틸 근본적 정책 필요”
정부는 임금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당분간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 구조상 대기업을 중심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다 보니 중소기업은 물가 상승률을 임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규제 개선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물가 압력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 문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근로자 임금이 높은 것도 당연한 결과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 독과점을 통한 시장 통제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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