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oo 5년 : 대한민국 성(性) 법률시장 리포트 ①]
‘성범죄 전문 로펌’을 자처하며 2012년 설립된 법무법인 YK는 지난 10년 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2018년 ‘미투(Me Too) 운동’ 이후 달라진 사회 분위기가 성장의 촉매제가 됐다. 소속 변호사수는 131명(지난해 초 기준)으로 국내 11위다. 이 법인 관계자는 “2018년까지 40여명도 안되는 규모였지만 2019년, 2020년을 거치며 3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후발 ‘성범죄 전문 로펌’인 대륜·AK·로엘은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문을 열었다. 이 가운데 로엘은 변호사 수 101명(지난해 초 기준 14위)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성범죄 전문 로펌의 한 변호사는 “‘강간’, ‘추행’ 등을 검색했을 때 상단에 노출된 로펌의 경우, 클릭 한 번당 10만원 가량의 돈을 포털 회사에 내야한다”며 “경쟁 로펌의 광고비를 소진시키려 검색어 공격을 벌이는 곳도 생겼다. 기형적 홍보가 유행처럼 번져 시장이 엉망진창이 됐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많이 쓰는 곳은 포털 광고비만 매주 5억원을 쓴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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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후방산업’ 실형율 올라가자 급성장
지난 2020년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에서 텔레그램 n번방 박사(조주빈)등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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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관련 법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한 성범죄 전담 변호사는 “2010년 전후로 성범죄 전담 로펌이 등장하기 시작해 2018년 무렵엔 법조 시장의 한 축이 됐다”며 “‘미투 운동’과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 판결 이후 사건 수가 급증하고 유형도 다양해졌는데 재판에서 무죄 받기는 더 어려워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법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강간·추행죄’의 1심 실형 선고율은 27.7%로 ‘미투운동’ 이전인 2017년(20.6%)에 비해 크게 늘었다. 연도별로는 2018년 22%, 2019년 25.4%, 2020년 25.1%, 2021년 27.7%로 꾸준한 상승세다. 같은 기간 ‘절도·강도죄’ 실형률이 1% 증가한 걸 감안하면, 성범죄에 대한 사법부 판단이 눈에 띄게 엄격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 사건 접수 건수는 4만7143건에 달한다. 10년 전 2만3119건보다 배로 늘었고, 미투 이전인 6년전(2017년)의 4만918건과 비교해도 15% 증가했다.
그러다보니 피의자들의 감형에 도움을 준다는 ‘법률 후방 산업’도 활황이다. 반성문 대필업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포털사이트에 ‘반성문 대필’을 검색한 뒤, 한 업체에 5만5000원짜리 반성문을 의뢰하자 하루 만에 A4 용지 3장 분량의 반성문이 전달됐다. 업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패키지를 이용한다”며 탄원서와 서약서, 재발방지 교육 수료 확인서 등이 포함된 감형 패키지(55만원) 구입을 권유했다. “실제 선처 받은 사례”라며 판결문을 통해 광고를 하는 업체도 있다.
수백만원이 드는 사설 진술분석업체도 성업중이다. 성범죄는 피해자 진술이 범행을 입증할 유일한 증거인 경우도 많다 보니 진술 신빙성을 흔들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업체를 찾는다는 것이다. 한 진술분석업체 대표는 “센터 고객의 80%가 성범죄 피의자”라고 말했다. 사설 거짓말 탐지 업체를 찾아 수사기관의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를 뒤집기 위한 ‘증거’를 얻어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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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탄원서·헌혈증, 화려해지는 ‘감형스펙’…“인식 왜곡 심화” 우려
성범죄 피의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감형을 위한 스펙이나 관련 업체에 대한 정보를 적극 공유하는 분위기도 성범죄 후방산업 급성장의 배경이 되고 있다. “반성문 매일, 부모님 탄원서, 헌혈증, 기부금 영수증, 봉사활동 확인서 등을 준비했다. 부모님이 장기기증서약서를 주신다고 하는데 그것까진 아직 못했다”는 등 감형 노하우와 경험담을 서로 조언하는 식이다.
감형 스펙을 쌓기 위한 기부 때문에 관련 단체가 곤혹스러워 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지난 2020년 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센터는 3만원 후원금의 출처가 ‘n번방’ 사건 피의자 중 한명인 남경읍이라는 점을 알게 돼 돈을 돌려보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은 “성폭력 범죄 관련 소송에서 감경사유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 등의 기부금은 받지 않는다”고 공지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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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간 성폭력』의 저자인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장은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미투 전문’을 홍보하는 변호사와 로펌 등 성범죄 시장이 강화되는 역설의 역설이 있다”며 “‘시장화’로 인해 성범죄는 사소한 것이며, 돈만 주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으로 확산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억울하게 성범죄에 휘말린 남성들을 대변하겠다며 출범한 시민단체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의 김대현 대표는 “일관된 진술만 있으면 상대를 성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그런 사실이 없는데도 허위 고소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한창 반발이 심할 때는 상담만 하루 10건 가까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성폭력 전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가정이 있는 등 소위 잃을 게 많은 인사들이 억대 합의금을 주는 경우도 생기다보니 이를 이용한 악질적 고소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성범죄 법률 시장 성장의 계기가 된 ‘성인지 감수성’ 판결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법관은 “‘감수성’처럼 모호하고 추상적 개념은 증거에 따라 유·무죄가 갈려야할 형사법 영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성범죄를 법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도덕적 관점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법정책연구원은 2020년『성폭력 형사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경험칙에 관한 연구』에서 상황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조리 있게 진술하기 어려운 성폭력 피해자의 특징을 언급한 뒤 “개별 사건마다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 ‘바로 그 피해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성인지 감수성’ (gender sensitivity) 판결이란
법원의 성범죄 재판에 대한 엄벌 흐름은 2018년 4월 대법원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의 ‘성인지 감수성’ 판결이 마중물이 됐다. 당시 성희롱을 이유로 해임된 대학교수를 복직시키라고 판단한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 대법원은 “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판결문에 썼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어떤 행위가 성희롱인지는 사회 전체의 일반적·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및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성범죄 피해자가 놓인 취약한 상황이나 처지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자는 취지를 처음으로 설명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 서지현 전 검사와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의 전 정무비서 김지은씨가 촉발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운동의 물결 복판에서 판결이 나오자 법조계 일각과 여성계에서는 “사법부의 ‘위드유(WithYou·당신과 함께한다) 선언’”이라는 찬사와 일각의 “사실상 유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비난이 동시에 일었다.
김수민·신혜연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영상=황은지, 신윤정·남윤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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