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공포 속 아침마다 하트 이모지로 생존 확인"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23일(현지시간) 전쟁통에 생이별한 부부 안드리이 미셴코(39)와 올하 타라노바(45)의 달라진 일상을 전했다.
올하는 작년 전쟁이 터진 직후 10살짜리 딸 사샤와 독일 남서부의 작은 마을 트로싱겐으로 이주했다.
이별하는 우크라이나 가족들 |
남편 안드리이는 함께 할 수 없었다. 정부가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젊은 남성에 대해선 출국금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가족은 슬로바키아 국경에서 서로를 끌어안으며 이별을 고했다. 남편도, 아내도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했지만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연상연하 커플인 둘은 IT 회사에서 직장상사와 신입사원으로 만나 바로 사랑에 빠졌다. 결혼 후 아들 딸을 낳고 수도 키이우에서 살림을 꾸렸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집 리모델링을 하고 여름에는 몰디브에서 휴가도 즐기며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전쟁은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안드리이는 아내에게 전란을 피해 외국으로 나가라고 설득하면서 자신은 입대하지 않고 안전한 서부에 머무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안드리이는 오히려 기를 쓰고 입대했고, 러시아군이 키이우로 진격하자 수도 방어군에 배치됐다.
그는 지금은 격전지인 동부 루한스크에서 정찰병으로 복무하며 하루하루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
안드리이는 "나의 조국을 짓밟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러시아군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격전지 바흐무트 |
올하는 매일 아침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다.
안드리이의 '스마일' 이모지가 뜨면 적어도 그날은 남편이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스마일이 오지 않는 날이면 올하는 온종일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어떨 때는 수 주일간 메시지가 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남편의 티셔츠를 베개 밑에 베고 잔다.
두 사람은 길게 통화할 수도 없다.
통화 내용에서 남편의 위치와 관련한 조그만 단서라도 노출되면 남편은 물론 부대원 전체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하는 불안감을 떨치고 남편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달하기 위해 사소한 일상도 모두 동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린다.
딸이 실내 놀이터에서 피자를 시켜놓고 독일에서 맞은 11번째 생일파티를 했다는 소식을 비롯해 머리 염색을 했다거나 은행에 가는 길의 풍경이 어떻다는 등 가능한 모든 것을 찍어 올린다.
반면 안드리이가 전하는 소식은 너무 짧기만 하고 항상 어두운 실내에서만 촬영된다.
그는 임무 출동을 '일하러 간다'는 식으로 돌려 말하지만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는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공격하기에 좋은 포인트를 찾아내는 정찰병이다.
때론 적군의 후방까지 잠입해야 하는 그는 언제 적군의 포탄에 맞을지, 머리 위로 몰래 뜬 적군의 드론에서 떨어지는 수류탄에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
바흐무트 인근 우크라이나군 숙영지 |
안드리이는 어떤 날은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달아났거나 바로 옆 동료가 전사하는 것을 봤겠지만, 올하는 그가 전하는 일상은 전체의 20%도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올하는 언젠가 전쟁이 끝나 남편과 다시 일상을 이어갈 날을 준비하고 있지만 남편이 지난 1년간 겪은 것들이 없던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최근 읽은 책은 '정신적 외상과 회복'이다.
그녀는 체코에서 유학 중인 20살짜리 아들이 독일 거처로 찾아오자 모처럼 지인들을 초청해 우크라이나 전통 만두를 함께 만들어 먹으며 고향 분위기를 즐겼다.
그때 남편으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 요즘은 좀 조용해?" 아내가 물었다.
"응. 사람들이 다 쉬고 있어. 리조트에 온 거 같네" 남편이 답했다.
그 뒤로도 부부는 평범한 대화를 이어갔지만 결국 아내는 터져 나온 울음을 참지 못했다.
안드리이는 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최근 촬영된 인공위성 사진에선 대치 중인 러시아군이 이르면 모레쯤 대대적인 진격을 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었다.
bana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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