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전경. 김정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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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침입강제추행죄를 최소 징역 7년으로 무겁게 벌하는 건 헌법 위반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9명의 헌법재판관은 23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선고기일을 열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제추행·준강제추행(제3조 제1항)이 위헌이라는 일치된 의견을 냈다.
형법엔 주거침입죄(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와 강제추행죄(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가 있는데, 이걸 동시에 저지르면 특례법인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강제추행죄로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법정형의 하한이 7년 이상이라는 건 집행유예 선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심신미약 등 같은 법에서 정한 감경사유가 있지 않는 한, 판사가 범죄의 구체적인 양상을 감안해 재량껏 감경해줄 수 있는 건 최대 절반이다. 3년 6개월까지 감경하더라도 집행유예 요건인 ‘징역 3년 이하’를 맞추기 어렵다.
이날 선고는 그동안 이 죄로 기소된 많은 피고인이 호소한 억울함을 한데 모아 살펴본 결과다. 각 재판부에 신청해 헌재로 넘어온 위헌법률심판이 25건, 재판부가 안 받아줘 따로 낸 헌법소원심판이 7건이다. 이날 헌재의 위헌 선고는 주거침입강제추행이 더 가볍게 처벌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잘못한 만큼만 처벌받아야 한다는,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상한을 무기징역으로 높게 규정해 불법과 책임이 중대한 경우 그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도 하한을 일률적으로 높게 책정해 경미한 강제추행 또는 준강제추행의 경우까지 모두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행위 유형이 다양하고 경중의 폭이 넓으면 법정형의 폭도 넓어야 하는데, 지금의 주거침입강제추행죄 법정형은 하방이 경직돼 있어 문제란 얘기다. 주거침입에는 공용주택의 공용공간(복도,현관 등)에 들어온 경우나 ‘일반적으론 개방돼 있지만 관리자의 묵시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경우’도 포함된다. 강제추행에는 갑작스런 신체 접촉만으로도 인정되는 기습추행도 포함되고 경우에 따라 신체 접촉이 없어도 추행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헌재는 또 “하한이 지나치게 높으면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며 강제추행보다 강간미수죄가 차라리 나을 수 있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주거침입강간미수죄로 처단하는 경우 미수감경 및 정상참작 감경을 통해 집행유예의 선고가 가능한 정도로 형의 하한이 낮아질 수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강제추행 또는 강간의 고의 인정에 관하여 왜곡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주거침입강제추행죄는 1990년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시절부터 있던 것인데, 오랫동안 5년이었던 하한이 7년으로 바뀐 건 최근의 일(2020년 5월 19일 개정)이다. 이선애 재판관은 3년 전 보고서와 회의록 등을 뒤지고 법제사법위원회에 사실조회 등을 해본 결과 당시 개정 과정에서 주거침입강제추행에 대한 심의가 빠졌다면서 입법 과정상 중대한 문제가 있어 위헌이라는 별개의견을 내기도 했다.
당시 체육계 미투(국가대표선수 코치 성폭력 사건)·n번방(텔레그램을 이용한 성착취 사건) 등이 터지며 성폭력범죄를 더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법 개정 요구가 거셌는데, 이때 주거침입강제추행죄도 얼렁뚱땅 같이 상향돼 버렸다는 거다. 이 재판관은 “성폭력처벌법 3조 2항(특수강도강간죄)과 혼동해 1항(주거침입강제추행죄)에 대한 심의는 하지 않은 채 그 법정형을 상향하도록 의결했다”고 봤다.
이날 헌재의 결정으로 해당 조항은 효력을 잃는다. 국회에서 해당 조항을 개정할 때까진 이 조항으로 기소하거나 선고할 순 없고 형법상 주거침입과 강제추행으로 의율하는 건 무방하다. 7년 이상으로 개정된 이후 이 조항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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