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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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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7년내 벨라루스 흡수" 문건 폭로…러·나토 맞닥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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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2030년까지 벨라루스를 흡수 통합할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이 폭로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맞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나온 소식으로, 러시아가 계획대로 벨라루스를 통합한다면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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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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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DW)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10년 내 벨라루스를 흡수(absorb)·정복(subjugate)해 해체(dismantle)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러시아 내부 비밀 문건이 최근 공개됐다.

해당 문건은 '러시아의 벨라루스에서의 전략적 목표'란 제목의 17쪽 짜리 문서로 키이우인디펜던트,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 등으로 구성된 국제 언론인 컨소시엄이 입수한 것이다. 이와 관련, DW는 "2021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직속 대외협력국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지난 1999년 '연합국가 창설 조약'을 맺고 경제적 통합 위주의 논의를 해왔다. 그러나 문건 내용만 보면 "러시아의 최종 목표는 '연합국가'가 아니라 '합병'(merger)에 더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해 키이우인디펜던트는 "벨라루스에 대한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야심과 같으며, 나토 입장에선 완충지대 없이 러시아와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유럽국가들과 러시아 사이에서 완충국 역할을 해왔다.



전방위 통합 구체적 목표 정해



골자는, 2030년까지 벨라루스의 정치·경제·군사 영역을 러시아가 완전히 통제하겠단 것이다. 통합 분야를 정치·군사 부문, 경제 부문, 문화 부문 등 크게 세 갈래로 분류하고, 시기를 단기(2022년)·중기(2025년)·장기(2030년)로 나누어 세부 목표를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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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군훈련장을 찾은 루카셴코 대통령(오른쪽)과 빅토르 흐레닌 벨라루스 국방장관.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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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치·군사적 통합 목표다. 2022년까지 합동 군사 훈련을 강화하고, 2025년까지 벨라루스 내 러시아군 주둔을 늘리며 최종적으로는 합동사령부를 창설해 통합된 지휘체계를 구축한단 의미다. 또 벨라루스의 외교·국방 정책, 국경 통제를 러시아가 관할한단 내용도 담겼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2022년 상황만 보면 러시아는 이미 이런 목표를 달성했다"며 "벨라루스가 직접 참전하진 않았지만, 양국 군의 합동 훈련, 벨라루스 내 무기 배치 등이 그 근거"라고 전했다. 지난해 러시아가 이 나라 영토를 통해 우크라이나 북부를 침공했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다.

경제적으로는 단일 통화, 단일 관세·세금 체계 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일 통화는 러시아 루블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벨라루스는 현재 폴란드와 발트 3국의 항구를 이용해 수출품 등을 운송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러시아를 통해서만 운송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담겼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지난해 양국 간 무역은 전년 대비 3배 증가한 500억 달러(약 65조 원)에 달했다"며 "이미 해외 시장을 많이 잃은 벨라루스 경제는 러시아에 점점 종속되어 가는 중"이라고 짚었다. 이밖에 원자력 발전 시스템을 통합하는 내용 등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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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와 접한 국경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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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미디어 관련 정책을 러시아 정부가 통제하겠단 야심도 엿보인다. 친러시아 정서를 형성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우호적인 비정부기구(NGO)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의 뜻과 맞는 미디어를 확대한단 내용이다. 러시아 정부가 그리는 역사관으로 교육하겠단 목표 역시 있다. 러시아 대학에서 공부하는 벨라루스 학생 수를 2배로 늘리기 위해 지원을 확대한다는 게 세부 계획 중 하나다. 현재 러시아에서 수학 중인 벨라루스 대학생은 1만 2000명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양국이 '러시아-벨라루스 연합국가' 창설 논의를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두 나라는 1999년엔 조약을 맺고 각자의 주권과 국제적 지위를 유지하는 방식의 연합국가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에서 푸틴으로 권력이 넘어가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발을 빼며 흐지부지됐다.

문서로만 남는 듯했던 연합국가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은, 장기 집권을 하며 2020년 민주화 시위로 곤욕을 겪은 루카셴코가 푸틴에 더욱 밀착하면서다. 푸틴과 루카셴코는 2021년 9월, 연합국가 창설을 위한 28개 로드맵에 합의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공동체 통합 논의만 나오고 정치적 통합과 관련한 내용이 없어 "완전한 합병은 어려울 것"이란 진단이 나왔었다. 그러나 이번 문건만 놓고 보면 "푸틴의 군사·정치적 목표가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해당 문서의 진위와 관련, 쥐트도이체차이퉁 등은 "여러 국가의 여러 정보기관·취재원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히면서도 "진위를 가리기 힘들단 의견도 일부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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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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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15만 민방위 창설" 지시



한편 루카셴코 대통령은 20일 최대 15만명 규모의 지역 민방위군 창설을 지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나흘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날 나온 소식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보회의에서 "남녀 모두 최소한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유사시 자신의 집과 국가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지시했다. 그러면서 "침략 행위가 있을 경우 신속하고 가혹하며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벨라루스 참전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나온 보도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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