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잔술’ 술잔 계속 작아져
그나마도 손해 누적 ‘폐업 초읽기’
소주·맥주 출고가 오름세 이어지며
주당들은 “차라리 집에서 위스키”
소상공인 “코로나보다 더한 위기”
1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잔술집에 놓인 소주와 잔. 이홍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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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15년째 잔술을 파는 전영길씨(76) 가게의 술잔은 매년 조금씩 작아졌다. 지난해 주류 가격이 일괄 상승한 뒤로는 손바닥만 했던 막걸릿잔이 주먹만한 크기로 바뀌었다. 종이컵에 넘치게 따라주던 소주는 이제 작은 스테인리스 잔에 담겨 나온다. 술 한 잔당 가격은 1000원. 소주 한 병에 3잔 나온다고 계산하면 병당 3000원꼴이다. 전씨는 “다른 동네에 비하면 한참 싼 가격이어도 가격을 올릴 수 없다”면서 “지폐 한 장 들고 오는 노인분들이 주 고객인데 어떻게 올리겠느냐”고 했다.
“마침 뉴스에 나오네요. 올해 주류가격이 더 오르면 저희야 방법이 없죠.” 뉴스를 보던 전씨의 아내 김정숙씨(69)가 동전 더미를 뒤적이며 말했다. 이들 부부는 최근 폐업을 결정했다. 입주하며 낸 권리금 6500만원도 포기했다. 김씨는 “술값이 오른다고 한 잔당 1000원씩 받던 잔술을 1200원으로 올릴 수도 없는 꼴”이라며 “매달 손해가 나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텅텅 빈 가게를 보며 “월세가 300만원인데 이번 달엔 10원 한 장 모아놓은 돈이 없다”고 했다.
주류 가격 인상에 작아진 술잔. 이홍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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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기획재정부와 주류 업계에 따르면 올해 소주와 맥주 가격이 모두 인상된다. 주정을 국내에 독점 유통하는 대한주정판매는 지난해 10년 만에 주정 가격을 7.8% 인상했다. 원료인 타피오카 원가가 오른 탓이다. 주정이 주원료인 소주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4월부터는 맥주에 붙는 세금도 1L당 30.5원 더 오른 885.7원이 된다.
소주·맥주 출고가가 오름세이지만 음식점에서 주류 가격을 쉽게 올리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 종로구에서 밥집을 운영하는 김태섭씨(66)는 “원가가 아무리 올라도 어르신들 무서워서 가격을 쉽게 못 올린다”고 했다. 김씨 가게에선 맥주와 소주를 4000원에 판다. 한 정거장 떨어진 종각역 주변 술집 대부분은 주류를 5000원에 판매한다. 김씨는 “작년 주류 출고가가 올랐을 때 가격을 못 올렸다”며 “도저히 못 버티겠어 올해 인상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출고가가) 또 오르니 머리가 띵하다”고 했다.
20일 서울의 한 식당을 찾은 한 시민이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맥을 만들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주류 업계 등은 오는 4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이 지난해보다 ℓ당 30.5원 올라 885.7원이 된다고 19일 발표했다. 소주의 경우 맥주처럼 주세가 인상된 것은 아니지만 원재료와 부자재 가격이 올랐다. 소주의 원재료인 주정(에탄올)을 국내에서 독점 유통하는 대한주정판매는 지난해 10년 만에 주정값을 7.8% 올렸다.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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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술값이 더 오르면 식당에서 주류 소비를 줄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날 밤 서울 성북구 대학가에서 후배와 술을 먹던 직장인 김기선씨(31)는 “학생 때는 3000원이었던 소주가 4000원이 되고 5000원이 되었다”면서 “또 올라 6000원이 된다면 아껴서 먹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슈퍼에 갔는데 3월부터 술값이 오를 수 있다고 써 있었다”면서 “서민들의 취미를 뺏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직장인 박모씨(28)는 “6000원 주고 소주를 마실 바엔 위스키를 한 병 사 집에서 먹겠다”고 했다.
술 소비 감소는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진다. 음식보다 술 판매가 이윤이 더 많이 남기 때문이다. 성북구에서 김치찌갯집을 운영하는 박재성씨(44)는 “찌개 2인분 가격을 1만4000원으로 정한 게 10년 전”이라며 “안주에서 마진이 잘 안 나와 술로 많이 메꾸는데, 술 소비가 줄어들면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소비자 입장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은 5000원인 것 같다”면서 “한 병에 6000원 하면 나도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했다. 2021년 통계청 사회조사결과 재정 악화 시 우선으로 줄일 지출항목 1순위는 외식비로 조사됐다.
자영업자들은 주류 가격 인상을 ‘진짜 위기’의 경고등으로 느낀다. 김태섭씨는 이날 술병을 치우며 “최근 식자재값, 공공요금 등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손님들 자체가 줄었다”면서 “당장 남는 이윤이 줄어드는 것보다도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어쩌면 코로나 때보다 더 심각한 ‘경기 한파’가 오는 것 아닌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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