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충격에 에너지·식량가격 폭등…수십년만 최악 인플레 사태 초래
전쟁 장기화에 러 에너지 무기화…개도국 등 위기 우려 여전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 건물 |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이도연 기자 = 러시아의 침공발(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식량 가격 폭등으로 지난해 세계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 대확산(팬데믹) 이후 막대한 유동성에 취해있던 세계 경제는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충격과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이에 따른 각국 중앙은행들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최근에는 에너지·식량 가격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다시 내려오고 유럽 겨울철 이상고온의 '도움'을 받아 선진국들은 일단 한 고비를 간신히 넘겼다.
하지만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각국 경기침체 우려가 지속하고 빈곤국·개발도상국 사이에서 경제위기 확산 가능성도 여전해 전쟁의 부담은 세계 경제를 계속 짓누르는 분위기다.
이집트 서민들의 먹거리 코샤리 가격도 2배로 급등. |
◇ 에너지·식량 가격 급등…최악 인플레 초래
밀과 천연가스의 세계 최대 수출국인 러시아가 '유럽의 빵 바구니'라 불리는 세계 3∼5위권 밀 수출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세계 에너지·식량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개전 이전 ㎿h(메가와트시)당 60∼70유로대에서 개전 이후 역대 최고가인 345유로까지 5배 가량 뛰어올랐다.
밀 선물 가격도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식량가격지수는 지난해 3월 159.7포인트로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일상회복 이후 심각해진 각국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이런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에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수십 년 만에 최악의 물가 급등 사태에다 이에 대응한 각국 중앙은행의 급속한 금리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세계 서민들은 극심한 민생고를 겪었다.
선진국 영국에서마저 성인 6명 중 1명이 물가 부담에 정기적으로 끼니를 건너뛴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중동·아프리카·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고통은 한계 수준으로 치달았다.
밀 수입의 80%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하던 레바논에서는 빵값이 2배 이상으로 폭등하면서 사람들이 상점마다 몰려들어 닥치는 대로 빵을 사재기하는 '빵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메릴랜드대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쟁 이후 전 세계 가정용 에너지비가 최고 113% 상승하고 이로 인해 최대 1억4천만명이 '극도의 빈곤'에 내몰린 것으로 추산됐다.
가스 공급 부족에 셧다운 위기 처한 독일 화학산업 심장부 |
러시아는 전쟁 전 유럽연합(EU) 천연가스 수입량의 40%를 공급하는 유럽의 최대 에너지 공급 국가였다.
개전 이후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자 러시아는 독일 등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 밸브를 잠그면서 에너지 무기화에 나섰다.
겨울철 '에너지 대란'으로 유럽의 민심을 흔들어 서방의 전쟁 공조에서 이탈시키려 꾀한 것이다.
지난해 가을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공급량이 전년 동기의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면서 유럽의 공장 가동부터 겨울 난방까지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됐다.
이에 EU 국가들은 다급하게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등 수입을 늘려 급한 불을 껐지만, 이는 세계 에너지 수급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의 지난해 가스·석탄 수입액은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겨울 유럽에서 1월 기온이 최고 20도까지 오르는 이상 고온 현상 덕에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내리면서 러시아의 '에너지 협박'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이번 같은 이상고온이 다음에도 되풀이된다는 보장이 없는 가운데 다음 겨울까지 전쟁이 이어질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향후 가스 공급을 완전히 끊거나 '제로 코로나' 해제 이후 중국 측 수요가 회복될 경우 수급 불안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 경우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자원봉사자 |
◇ 전쟁 장기화에 세계경제 부담 여전…개도국 위기 확산 가능성
전쟁이 1년을 맞은 현재 에너지·식량 가격은 대부분 전쟁 이전 수준으로 복귀한 상태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0달러 대로 개전 직전과 거의 비슷해졌고,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지난 17일 기준 49.05유로로 최근 1년 새 최저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최악의 고비는 일단 넘겼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경제성장률이 내려가고 경기침체에 빠지는 국가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쟁에 따른 부담과 인플레이션과의 싸움 등으로 인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2.9%로 지난해 성장률 추정치(3.4%)보다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성장률이 1.7%에 그칠 것으로 보면서,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등 악영향이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선진국과 달리 경제 기초체력이 부실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디폴트 등 경제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지난해 스리랑카, 파키스탄, 레바논, 잠비아, 이집트, 튀니지 등이 IMF로부터 이미 구제금융을 받았거나 협상 중이며,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재 IMF 구제금융을 받으려 대기 중인 국가가 최소 20여개국에 이른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 12일 중동·북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의 부채 상황을 우려한다면서, 이번 전쟁과 기후재난에 따른 식량 부족·청년실업으로 사회불안이 초래될 위험이 있으며 물가 또한 높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bscha@yna.co.kr dylee@yna.co.kr
[그래픽]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1년 세계 경제 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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