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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 여자? 요즘 연극계 ‘젠더프리’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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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온실 속 화초 같은 소년 싱클레어에게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충고한 신비로운 조력자, 데미안이 여자라면? 모차르트의 라이벌 살리에리가 여자였다면?

최근 공연계에서 이처럼 정해진 성 구분을 따르지 않는 배우 캐스팅이 이어지고 있다. 극 중 남성 역할에 여성 배우, 반대로 여성 역할에 남성 배우를 맡기는 ‘젠더프리’ 캐스팅이다. 한 배우가 고정 배역 없이 여러 캐릭터를 돌아가면서 맡는 ‘캐릭터프리’ 캐스팅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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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데미안 역할을 맡은 홍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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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개막한 뮤지컬 ‘데미안’은 고정 배역을 두지 않고 한 배우가 공연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연극의 두 주인공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두고, 오전 공연에서 싱클레어를 연기한 배우가 저녁 공연에서 데미안으로 변신하는 식이다.

2년 만에 새 시즌으로 돌아온 뮤지컬 ‘해적’도 배우 한 명이 남녀 캐릭터 두 명을 맡는다. 이 같은 캐릭터프리 캐스팅에 대해 제작자나 배우들은 “극에 대한 출연진의 이해도가 높아지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뮤지컬 데미안에서 데미안·싱클레어 역을 맡은 홍나현 배우는 “두 캐릭터를 돌아가면서 맡기 때문에 더 입체적인 연기가 가능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캐릭터프리 캐스팅은 배우들에게 다양한 연기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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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펀스’에서 건달 해롤드를 연기하는 추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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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개막, 26일 폐막하는 연극 ‘오펀스’는 고아 출신 건달 해롤드가 역시 고아 형제인 트릿과 필립을 만나 서로 의지한 끝에 결국 가족이 되는 이야기다. 중심인물인 남성 건달 해롤드 역을 맡은 배우 4명 중 2명(추상미·양소민)이 여자 배우다. 형제인 트릿·필립 역을 맡은 배우 8명도 남녀가 절반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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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라이벌 살리에리로 분한 차지연. 모두 남자 캐릭터를 여자 배우가 연기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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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개막한 연극 ‘아마데우스’도 젠더프리다. 2021년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젠더프리 캐스팅을 소화한 바 있는 배우 차지연과 국내 공연계에 젠더프리 캐스팅을 처음 도입한 이지나 연출이 손을 잡았다. 배우 차지연은 2020년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모차르트의 라이벌 살리에리 역할을 맡았다.

젠더프리 캐스팅은 캐릭터프리 캐스팅과 살짝 결이 다르다. 주 관객층인 2030 여성의 예민한 성인지 감수성에 맞춰 여성 배우를 주연 역할로 빈번하게 내세우다 보니 여성 배우에게 남성역을 맡기게 된다는 시각, 남성 주인공 서사가 지배적인 공연계에서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 등이 나온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희곡이 남성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나가는 설정이기 때문에 여성 배우에게 큰 역할이 돌아가지 않았다”며 “젠더프리 캐스팅은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역할이 늘어나는 시대의 요구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드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또 “남자 주인공 역할을 여자 배우가 맡게 되면서 작품 각색의 영역이 커지고, 그에 따른 다양한 변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교수는 “젠더프리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자는 취지에서 탄생했다”며 “미국에서는 ‘컬러프리’ 캐스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고 전했다. “왜 흑인은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 역할을 맡을 수 없고, 인어공주 아리엘이 될 수 없냐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라며 “인권 문제, 소수자 문제가 공연계로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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