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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시민군이 기자를 호위하며 부탁한 한 가지..."미얀마를 잊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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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2년, 미얀마에 가다]
③봄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국제사회 외면 속 미얀마 외로운 싸움
태국으로 가도 하루 4000원도 못 벌어
우크라뿐 아니라 미얀마도 지원 절실

편집자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합법적인 민주 정부를 무너뜨린 지 2년이 지났습니다. 미얀마인들은 총을 들고 싸웁니다.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미얀마인들은 과거의 우리와 닮았습니다. 한국일보는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남동부 카렌주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 군부와 싸우는 시민방위군(PDF)과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학생군의 민주주의 수호 전쟁을 취재했습니다.

한국일보

1일 미얀마 카렌주 미야와디 레이케이코 인근 산 중턱에서 군부 폭격으로 난민이 된 난데퍼(오른쪽 세 번째)가 이모 노뚜뚜(왼쪽 두 번째)를 바라보고 있다. 이들이 몸을 피한 곳은 집이 아닌 축사다. 레이케이코(미얀마)=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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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바라는 건 없어요… 제발,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이달 1일 난데퍼(25)를 만난 곳은 미얀마 카렌주 미야와디에서 코커레이크로 향하던 어느 산 중턱이었다. 지붕만 남은 축사 흙바닥에 어른과 아이 12명이 쪼그리고 앉아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이 난데퍼의 다섯 번째 대피 장소다. 2021년 2월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는 민간인 마을을 무차별 폭격했다. 지난해 정부군 폭격으로 난데퍼의 고향 앵글론 마을도 초토화됐다. 이후 남편, 아이들과 정처 없이 떠돌았다. 땅굴을 파고 지내기도 했다. 6개월 된 셋째 아이는 땅굴에서 태어났다.

군부의 폭격은 끊이지 않았고, 난데퍼 같은 피란민들은 점점 더 깊은 밀림 속으로 숨어들었다. 왜 이렇게 삶이 비참해졌는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난데퍼는 모른다고 했다. "집도, 먹을 것도 당장 안 주셔도 돼요. 이 고통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 주세요."
한국일보

지난달 31일 미얀마 코커레이크주 총도 인근에서 시민방위군이 이틀 전 미얀마군의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집을 가리키고 있다. 총도(미얀마)=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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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일해 3,700원 버는 난민들


군부의 폭격과 방화, 살인, 강간을 피해 많은 미얀마인이 고향을 떠났다. 피란민들의 선택지는 두 개다. 난데퍼처럼 미얀마를 떠도는 '국내 실향민'이 되거나, 국경을 맞댄 태국, 인도 등으로 밀입국해 '국외 실향민'이 되거나. 어느 쪽이든 비참해지긴 마찬가지다.

유엔은 미얀마 인구 절반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고 본다. 미얀마를 벗어나도 생존을 위협받는 건 마찬가지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밥벌이가 어렵다. 일자리를 구해도 처우가 열악하다.
한국일보

지난달 29일 미얀마와 좁은 강 하나를 두고 있는 태국 접경지 매솟에 미얀마 난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매솟=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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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와 모에이강을 사이에 둔 태국 매솟에서 미얀마 난민에게 의료지원을 하는 산아옴(68)은 “공식 입국절차를 밟은 미얀마 노동자는 하루 300바트(약 1만1,200원) 정도 일당을 받지만 대부분의 불법 이민자들은 하루 100바트(약 3,700원)도 간신히 번다”며 “여성들은 성매매를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매솟 지역에만 미얀마인 불법체류자가 50만 명이고, 태국 전체엔 수백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4일 매솟에서 미얀마와 인접한 105번 국도를 타고 북부로 이동하는 2시간 동안 태국 경찰은 차를 10차례 넘게 멈춰 세웠다. 목적지, 일정을 캐묻거나, 여권 사진을 찍어 갔다. 일행 전체의 얼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미얀마인(통역)이 탑승했다는 이유에서다. 태국이 난민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일보

4일 미얀마 접경지인 태국 매솟에서 북쪽으로 향하던 도로에서 태국 경찰이 검문을 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불법으로 입국하는 난민 수가 늘어나면서 태국 경찰은 검문을 강화하고 있다. 매솟(태국)=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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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얘길 전해 달라” 절박한 미얀마


세계는 미얀마를 점점 잊어간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와 물가상승(인플레이션)으로 삶이 팍팍해진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심이 쏠린 탓이다.

미얀마인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4일까지 미얀마를 취재하는 동안 사람들은 ‘우크라이나’를 자주 거론했다. 시민방위군(PDF) 백호부대 부사령관 쏘따포예(49)는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포함해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미얀마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다며 “우크라이나에 쏟는 관심의 10%만 가져달라. 그러면 우리가 하루 만에 이길 수 있다”고 호소했다. 코커레이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우크라이나처럼 외부의 군홧발에 짓밟히는 것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에 유린당하는 것도 비참한 일”이라고 했다.

미얀마인들은 외신을 통해 군부의 만행을 알리고 싶어 했다. 인터뷰 시간은 예상보다 3, 4시간 길어지기 일쑤였다. 외신 기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백호부대 3사단 본부를 방문했을 때는 인근 부대원들까지 찾아와 군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한국일보

1일 미얀마 코커레이크주 총도 인근 마을에서 미얀마군의 공격으로 집을 떠나온 아이들이 불을 쬐며 앉아있다. 총도(미얀마)=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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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군과 학생군들은 신원 노출 위험을 무릅쓰고 기자에게 훈련 장소와 교전 현장을 소개했다. 더 깊은 지역까지 취재할 수 있도록 부대 차원에서 나흘간 호위도 해 줬다. ‘연대’와 ‘관심’이 간절하다는 방증이다.

무기력한 세계... “여기 사람이 있다”


국제사회는 그러나 무기력하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서방 국가가 미얀마 군부를 상대로 폭력 중단과 민주주의 복귀를 압박하지만, 실효 있는 조치는 아니다. 국제사회가 미얀마 민주진영을 직접 지원할 방법도 없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도 해법을 찾고는 있으나, 회원국들의 엇갈린 이해관계 탓에 적극 나서진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는 경제 제재에 반대하는 등 노골적으로 군부 편을 든다. 미얀마와 국경을 맞댄 중국은 미얀마 독재 정권이 운용한 폐쇄 경제를 수십 년간 지원해 왔다.

국제사회가 외면하는 사이 민주화 시계가 멈춘 미얀마에서는 오늘도 사람이 이유 없이 죽어간다. 그래서 미얀마인들은 더 절박하게 호소한다.

“여기도 사람이 있습니다. 제발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매솟(태국)·레이케이코(미얀마)=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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