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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화물연대 총파업

[스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안전운임제 개편안'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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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컨테이너 운송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출 회사들과 컨테이너 화물차 기사들을 연결해 주는 업체가 운송사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안전운임제에 대해서 쓴 글을 읽고는, 저라면 자기들이 궁금한 걸 대답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정부가 우리 보고 불로소득 끝판왕이라는데, 우리한테 왜 그러는 거죠?"
"현실을 잘 몰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잘 설명하면 이해를 해주지 않을까요?"
"어디에 호소를 하면 되는 걸까요?"


이런 질문들을 쉴 새 없이 쏟아냈습니다. 평생 그냥 일만 해왔지, 이렇게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는 신세가 될 거라곤 생각을 못 해 봐선지, 적잖이 당황하고 속상해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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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부가 '안전운임제 개편안'을 내놨습니다. 제목이 깁니다. '공정한 시장질서 회복을 위한 화물 운송산업 정상화'라고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불공정' '반시장질서' '비정상'이 판을 쳤다는 뜻인데, 그런 상황을 만든 악당, 악마들이 있겠죠. 바로 중간에 있는 운송사들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중간에서 하는 일 없이 기생하고, 빨대를 꽂아가면서 수수료를 챙겨 왔다"는 겁니다. 실제 정부 워딩이 그렇습니다.

그런 회사들도 물론 있습니다. 지금은 발급되지 않는 화물차 번호판을 가지고, 화물차 기사들에게 돈장사를 하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박찬범 기자가, '[취재파일] 화물노동자 등골 빼먹는 '번호판 장사' 이번엔 바뀔까'에서 정리를 잘 해뒀습니다) 그런데 이런 '악덕 회사'들을 때려잡겠다면서, 실제는 화물 주인과 화물차 기사들을 연결하는, 보통 운송사들까지 한 덩어리로 묶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안전운임제를 이렇게 고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우선 수출회사들은 운송요금을 사실상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안전운임제'하에서는 정부가 정한 요금이 있었고, 이걸 주지 않으면 과태료를 5백만 원씩 내야 했는데, 이 조항을 없애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수출회사들은 입찰을 붙여서, 최저가를 부른 운송회사를 골라서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안전운임제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재미있습니다. 그다음에 운송사는, 수출회사에서 얼마에 물건을 따왔든 상관없이, 화물차 기사한테는 정부가 정해준 금액을 줘야 합니다. 이건 어기면 과태료를 냅니다. 수수료를 인정하지 않겠다, 혹은 못 받겠으면 빠지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수출회사와 벌이를 보장받는 화물차 기사들은 다 해피해지고, 악당들인 운송사들만 혼나는 '정상화'가 이뤄집니다.

3. 그런데, 만약에 정부 말대로 컨테이너 운송사들도, 일부 번호판 돈벌이 하는 회사처럼, 하는 일 없이 돈만 뜯어간다면, 그냥 다 없애 버리는 게 낫죠. 이 업체들은 무슨 일을 하는 델까요.

컨테이너 운송사들은 수도권에 빈 컨테이너를 쌓아둔 땅과, 크레인 같은 각종 장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수출회사가 물건을 맡기면, 미국이면 미국 유럽이면 유럽, 같은 지역으로 비슷한 날짜에 가는 것들을 구별해서 각각의 컨테이너에 채워 넣습니다. 그리고 배 나가는 날짜를 보고 있다가,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화물차 기사를 구해서 부산항으로 내려 보냅니다.

항상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지만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컨테이너가 반만 찬 상태에서도 내려 보내야 할 때가 있고, 반대로 부산항에서 짐이 없어서 빈 차로 올라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최소화되도록 관리를 잘해야 되고, 잘 안 풀려서 일반 화물차 기사들이 거부를 할 때는, 자체 화물차를 가지고 있다가 또 처리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관리하는데 장비와 사람, 돈, 그리고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안전운임제 하에서 컨테이너 운송사들은 수출회사에서 100원을 받았다 치면, 평균 9.4원을 이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뗍니다. 그리고 90.6원을 화물차 운전자에게 넘깁니다. 정부는 사실상 이 중간 수수료 9.4원을 내놓으라는 걸로 해석됩니다.

4. 그런데 이미 현장 상황은 많이 다르게 돌아갑니다. 올해 들어서 안전운임제가 이미 무력화된 이후로, 수출회사들은 이미 운송사들한테 요금을 내려받으라고 요구 중입니다. 많게는 30%까지 깎자고 나섰습니다. 100원 하던 요금이 70원이 된단 뜻입니다. 그래도 정부가 수출회사는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내렸으니까, 이제 본격화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운송사는, 화물차 기사한테 정부가 정한 돈을 내놓아야 합니다.

화물차 기사에게 주는 돈이 얼만지는, 13명의 위원들이 결정합니다. 기존의 안전운임제 때는 정부, 수출회사, 운송사, 화물연대 대표가 각각 4:3:3:3이었습니다. 운송사와 화물연대가 합쳐서 6명이라 힘이 있었고, 반대로 수출회사들은 불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앞으로는 6:3:2:2로 바꾸겠답니다. 정부+수출회사 사람들이 9명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제는 수출회사 입맛에 맞게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70원 줄 테니까 사이좋게 나눠 먹어, 싸우지 말고" 방식이 될 거라는 우려가 업계에 퍼지는 이유입니다.

5.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볼 점이 있습니다. 중간에 운송사가 지금 떼는 9.4원이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정작 정부는 따져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정부 발표 자료 어디에도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물연대 파업 이후에 두어 달 만에 나온 정책이니까, 정확히 따져볼 시간이 부족했을 겁니다.

그런데 더 솔직히는, 정부는 아예 그걸 분석할 능력도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움직이고 있는 컨테이너 화물차가 몇 대인지, 정확한 숫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난번 화물연대 파업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업무개시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공무원들이 이 명령서를 들고 컨테이너 운송사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화물차를 모는 사람이 누군지를 모르니까요. 그래서 운송사한테, 명령서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이렇게 가장 기초적인 화물차 숫자도 모르는 정부가, 수수료가 적당한지, 누가 악당인지, 확인 못 하는 건 당연하죠. 누군가의 밥그릇을 걷어차는 일인데,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곳도 아니고 정부가 공식 발표를 하면서, 이런 식으로 주장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밥그릇 걷어채인 쪽이 반항할 기력이 없다는 게, 정부가 용기를 낸 계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물연대는 지난 파업 이후로 이미 그로기 상태고요. 악당으로 지목된 운송사들도, 이미 돈벌이가 잘 안된다고 대기업 계열사들은 거의 다 빠져나가서, 그리 크지 않은 업체들만 남아있습니다. 그마저도 숫자도 얼마 안 되고,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습니다. 때리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만만한 샌드백들이 없는 거죠.

6. 승자는 정부와 수출업체들입니다. 정부는 이 발표로 개혁을 한다는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정부가 "중간에 낀 놈들이 악당이다, 때려잡겠다" 이러면,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래, 개혁을 하는구나" 하고 반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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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여당 사람들은, 지입제를 폐지한다는 이야기를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치한 지 20년이 넘은 원희룡 장관도,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지입제를 입에 올린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화물차 기사들이 갈라져 있는 걸 읽었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옵니다. 안전운임제는 컨테이너와 시멘트만 해당됩니다. 대다수 다른 화물차 기사들은 관계가 없죠. 그래서 일반 기사들한테 "지입제 없애줄게, 대신 안전운임제는 덜어내도 괜찮지?"라는 시그널을 보낸다는 시각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결국 이 정책은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실행이 됩니다. 그런데 다들 알고 있다시피 국회는 민주당이 다수고, 쉽게 통과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정부가 개혁을 하려고 하는데 야당이 또 방해를 한다"는 그림도 얻어 갈 수 있습니다.

수출업체들은 어쨌든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올해 들어서 안전운임제는 끝이 났습니다. 법이 만들어지든 안 만들어지든, 요금 후려치기를 해도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개혁한다는 이미지를 쌓으면서 야당을 압박할 수 있고, 수출회사들은 이미 얻을 걸 얻었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 이미 거의 다 잊었고요. 안전운임제 문제는 결국 이런 식으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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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주 기자(news4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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