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에 빠진 대학생 이야기를 다룬 소설 『인센디어리스』로 2018년 뉴욕타임스 ‘주목받는 작가 4인’에 꼽힌 권오경 작가. [사진 문학과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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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스 빌딩이 무너졌다. 연기가 신의 숨결처럼 솟아올랐다. 정적이 뒤따랐고, 승리감에 찬 무리의 함성이 이어졌다.”
미국에서 주목받는 또 한 명의 한국계 작가 권오경의 장편소설 『인센디어리스』(문학과지성사·사진)는 이 장면을 맨 앞에 배치했다. 9·11 테러를 연상시키지만 소설은 실화를 복기한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 피비가 모친의 비극적 사망 이후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과정이 큰 줄거리다. 광신도가 된 피비는 낙태 반대 시위에 나서다가 급기야 임신 중절 수술을 하는 산부인과에 폭탄 테러를 저지르기까지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권오경은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예술학 석사를 땄다. 무려 10년에 걸쳐 집필한 이 소설 한 권으로 깜짝 성공을 예약했다. 미국에서 소설이 출간된 2018년 뉴욕타임스의 ‘주목받는 작가 4인’ 중 하나로 선정된 데 이어 전미 도서비평가협회 존 레너드 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영화감독 코고나다가 드라마로도 만든다.
인센디어리스 |
최근 한글판 번역 출간에 맞춰 이뤄진 지난 11일 줌 인터뷰에서 권오경은 “17살 때 기독교 신앙을 잃었고 이후 체감한 기독교인의 세계관과 무신론자의 세계관 사이의 간극에서 소설의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독서를 통해 여러 신념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며 “지금은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무신론자로의 전향이 “내 인생에서 겪은 가장 큰 상실이며 아직도 매일 슬픔을 느끼는 이유”라고 했다. 그 슬픔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소설을 꾸준히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작가가 경험한 기독교 신자와 그 반대편의 무신론자 사이의 간극은 소설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소설에서 주인공 피비와 그의 남자친구 윌, 사이비 교주 존 릴, 세 사람의 시점을 교차시킨 것도 “충돌하는 세계관 속 갈등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설의 세 인물은 조금씩 작가 권씨를 닮았다. 한국계 미국인인 피비는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권씨를, 신학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독실했지만 역시 종교를 포기하게 되는 윌은 17살에 믿음을 잃은 권씨를, 사이비 교주 존 릴은 한때 종교 지도자(목사)를 꿈꿨던 권씨를 각각 떠올리게 한다. 권씨는 “세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실존 인물을 참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에 나 자신을 담았다”고 했다.
권오경이 처음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한 건 아니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 은행업계에 일자리를 구했다. “직장에서 가입시켜주는 의료보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절망이 찾아왔다. “우울해 하던 나를 본 어머니가 ‘다시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준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며 “글쓰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원하지 않는 일을 선택했던 때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소설의 드라마화에 대해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굉장히 흥분됐다”며 “5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흔치 않았다”고 말했다. “차학경, 이민진, 이창래, 이런 작가들이 모두가 ‘(동양인은) 안 된다’고 했을 때 반증이 되어준 사람들”이라며 “내게는 이들이 챔피언”이라고 했다.
권씨는 두 번째 소설을 7년째 작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발레리나를 사랑하는 사진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작가 역시 여성이다. 이 소설을 통해 “여성의 야망과 욕구를 탐색하고 싶다”고 했다. “여성들은 엄마로서, 딸로서 특정한 행동을 할 것을 요구받지만 정작 자신의 욕망과 야망은 억누르면서 산다”는 문제의식이 담길 거라고 했다.
권오경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했다. 특히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인센디어리스』도 근본적으로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피비가 평범한 20대에서 테러범으로 변하는 과정은 상실로 인한 결핍 상태의 인간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확신을 가진 인간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권씨는 “나는 신앙을 문학으로 대체했다”고 했다. “책이 곧 사원”이라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동지애를 느낍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글을 쓸 겁니다. 문학이야말로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이니까요.”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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