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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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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유족 연락처도 몰라… 더딘 협상에 안팎으로 치이는 외교부[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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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동네북
여러 사람이 두루 건드리거나 만만하게 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국일보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9월 광주에 사는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 자택을 찾아 큰절을 올리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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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교부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외교부는 속히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피해자의 반발과 일본 정부·기업의 완고한 태도에 치여 이도 저도 못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협상에 물꼬를 트고 필요한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하는 대통령실은 뒷짐만 진 채 외교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운데 끼인 외교부는 말 그대로 '동네북' 신세입니다.

정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연락도 못해


외교부는 지난달 12일 공개토론회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대한 유력한 정부안을 발표했습니다. 우리 기업이 돈을 내 먼저 배상하는 안이었죠. 그러면서 피해자와 유족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2018년 대법원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분이 14명에 불과하니 외교부가 이들과 수시로 직접 만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한국일보

같은 날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자택으로 찾아온 박진 장관에게 자필 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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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외교부는 주무부서인 아시아·태평양국의 국장급 심의관이 1, 2주에 한 번씩 피해자 측과 소통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딱히 성과가 없는 모양입니다. 14분 가운데 생존자 3명은 문제가 없는데, 나머지 11명의 경우 유족과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피해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소송대리인단이나 관련 시민단체와 주로 만났다네요. 설득의 대상은 뒤로 밀리고, 제3자가 끼어든 모양새입니다. 대리인단이나 시민단체로부터 피해자 가족들의 연락처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라 따로 확보할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당사자와 접촉조차 못 하는 외교부가 대체 누구를 설득하겠다는 건지 아리송할 따름입니다. 판은 벌였고, 큰소리도 쳤지만 뒷수습이 안 되는 격이지요.
한국일보

지난달 31일 오전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왼쪽 네 번째) 할머니와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강제동원(징용) 해법을 규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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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들은 왜 외교부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 것일까요. 오랫동안 쌓인 불신의 결과입니다. △'대위변제'라는 미명으로 피해자에게 우선 양보를 요구하는 자세와 △양금덕 할머니의 인권상 취소 등 일방적으로 외교부식 해법을 강요하고 있는데 피해자들과의 개별 면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을 수 있겠냐는 것이죠.

이처럼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강제동원 피해 승소판결을 받은 유족들이 실제 외교부와의 면담 요청을 수용하는지조차 알 도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13일과 16일 외교부의 일방적인 접근방식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맞불을 놓을 예정입니다.

몽니 부리는 일본과의 협상은 '도돌이표'

한국일보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지난달 30일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강제징용 배상 등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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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외교부의 설득 대상이라면, 일본은 협상 대상입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일본은 '사죄와 배상의 주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반하장으로 몽니를 부리고 있습니다.

자연히 협상은 첩첩산중입니다. 일본 정부는 전범기업이 돈을 낼 일도, 사과를 할 일도 없다며 선을 긋고 있죠. 고작 일본 총리나 정부가 과거에 밝혔던 담화를 계승한다는 '당연한 말'을 해법으로 내놓으며 생색내는 모습입니다.

당초 일본에서 한국과의 외교를 주도해온 인사들은 우리 외교부 당국자와 만나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일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1965년 청구권 협정 정신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강조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과 달리 일본이 협상에서 눈에 띄는 성의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자 우리 정부도 난감한 표정입니다.

빨리 해결하라면서…뒷짐지고 물러서 있는 대통령실과 총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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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왼쪽)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마드리드=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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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옴짝달싹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국장급에 이어 차관급 협의, 그리고 한일 외교장관이 만나 접점을 찾으려 하지만 속시원하게 한 걸음 떼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장서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한일 안보협력을 재촉하는 우호적인 분위기인데도 왜 이런 것일까요.

외교부가 답을 찾지 못한다면 시선은 국정운영의 최종 컨트롤타워인 용산 대통령실로 향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일본과의 막힌 관계를 뚫는 불쏘시개 역할을 자임하기보다 '속도전'에 급급해 외교부를 채근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입니다. 윤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한 터라 어떻게든 올 상반기 안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해결하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넘치지만, 시간표만 정했을뿐 딱히 새로운 방법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섬세한 내부 소통을 거쳐 일본과 해법을 조율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정부안으로 해법을 먼저 정해놓고 이후에 피해자와 소통하고 일본과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조급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방식은 어느 쪽도 공감할 수 없기 마련입니다.

특히 외교부가 일본을 감당하기에 힘이 부친다면, 더 윗선에서 정치적 해결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무게감 있는 인사들이 물밑에서 오가는 것도 필요할 겁니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당시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은 중요한 결단을 서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피해 당사자 설득 과정을 간과하는 바람에 거센 비난을 받긴 했지만, 일본과 다양한 채널로 협상의 강도를 높인 건 평가받을 만한 부분입니다. 이와 달리 이번 강제동원 협상에서 대통령실과 일본 총리실은 모두 뒷짐만 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피해자와의 소통은 어렵고 △협상 상대는 완강하고 △고위급 채널은 제대로 가동하지 않으니 외교부가 덤터기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외교부의 숙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접근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강제동원 피해 보상 해법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곰곰이 짚어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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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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