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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김명수, 대법관 인선 관여 않겠다더니 특정인 지목” 현직 판사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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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2023년 대법원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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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가 2020년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인선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부당하게 특정 후보를 지목하며 제청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대법관 인선과정의 문제를 현직 판사가 폭로한 것은 처음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송승용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8일 오전 법원게시판에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권을 적절히 행사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송 부장판사는 최근 대법원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심사동의자 명단을 공개하는 등 인선 절차에 착수한 점을 언급하며 자신이 대법관 후보추천위에 관여한 과정을 밝혔다. 송 부장판사는 2018년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에 전국법관대표회의 선출을 거쳐 위원으로 임명돼 후보자의 심사·추천절차에 관여했다. 그는 자신이 임기를 마친 후인 2020년 9월 8일자로 퇴임한 권순일 대법관의 후임 제청을 위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밝혔다.

대법관은 추천된 후보 중에서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추천된 후보 중 3~4명으로 후보자를 압축하는 과정에 위원회가 관여하고 이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돼 왔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8년 5월 대법관후보추천위 규칙을 개정해 대법원장이 추천위에 특정 심사대상자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삭제했다. ‘위원회가 거수기에 불과하다’비판을 고려해후보추천을 위원회에 맡기고 대법원장이 특정 후보자를 지목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김명수 ‘특정인 지명 않겠다’는데, 추천위원장 “이 분을 눈여겨 보라더라”

추천위원이 임명되면 추천회의 일정이 정해지고 위원들은 후보자들의 자료를 숙지하고 장시간 토론을 거치게 된다. 송 부장판사는 “회의 전 어느 월요일, 모 판사님과 제가 위원장님을 찾아가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며 당시 위원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위원장이 “이번에 인사총괄심의관이 관련 자료를 가져 오면서 모 기자의 칼럼을 제시하며 특정 후보자인 이 모 후보에 대해 “이 분을 눈여겨 보실만 합니다”란 취지의 말을 하고 가더라” 고 말했다고 밝혔다.

송 부장판사는 “저는 위원장님의 위 말씀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만일 인사총괄심의관의 위 행동에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면 대법원장이 스스로 공언한 제시권의 폐지를 뒤집고 간접적이고 음성적이고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위원장님께 제시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했다.

송 부장판사는 “결국 위 ‘특정한 이 모 후보’는 추천회의에서 3인의 후보로 추천됐고 그중 최종적인 대법관 후보로 제청돼 임명됐다”며 해당 대법관이 이흥구 대법관이라고 밝혔다. 이 대법관은 국가보안법 위반자 중 최초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운동권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동기인 조국 전 장관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송 부장판사는 “미욱한 제가 보기에 이는 대법원장의 부당한 제시권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법관 후보추천위의 공식 검증기능을 사실상 형해화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대법관의 제청권까지 무분별하게 남용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만일 제 생각과는 달리 인사총괄심의관의 행위가 개인적인 일탈에 불과한 것이라면 징계시효가 지나지 않았으므로 징계절차를 즉시 진행해 달라”고 촉구했다.

송 부장판사는 뒤늦게 폭로에 나선 이유에 대해 “부끄럽지만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인사조치와 관련 최하위 인사평정을 받는 등의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송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을 비판했다가 인사불이익을 받은 ‘사법행정권 남용’ 피해자로 지목된 인물이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고 법원에서 증언대에 서기도 했다.

그의 폭로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진상조사 필요성이 대두되는 한편, 당장 예정된 헌법재판관 후보추천 절차에서 김 대법원장이 ‘의중’을 반영하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송 부장판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피해자로서 초기 김명수 대법원과 기조를 같이 해 왔다는 측면에서 “김 대법원장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라는 평가도 있다. 송 부장판사는 게시글에 대한 입장을 묻는 본지 질문에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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