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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얕은 진원·강력 여진에 ‘약골 건물’ 폭삭…지진 피해 더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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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찰이 6일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딸을 구해내고, 놀란 아이를 안아서 달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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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지진이 엄청난 생명을 앗아간 것은 강력한 지진이 지표 가까이에서 발생했고, 곧바로 센 여진이 이어지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친 결과로 해석된다. 주기적으로 거대 지진이 일어나는 지역임에도 대부분의 건물이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점도 피해를 키웠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를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이 일어난 이유는 이 지역 지각판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거대 지각판이 맞물리는 곳에선 수십~수백년에 한번씩 거대 지진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지역으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난 일본 동부, 2004년 12월 ‘아체 대지진’이 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부 등을 꼽을 수 있다. 튀르키예 역시 아나톨리아 지각판, 아라비아 지각판, 아프리카 지각판, 유라시아 지각판이 복잡하게 만나는 교차점에 자리잡고 있어 언제든 거대 지진이 날 수 있는 지역으로 꼽혀왔다.

이번 지진은 그중에서도 아나톨리아 지각판과 아라비아 지각판이 만나 충돌하는 동아나톨리아 단층에서 일어났다. 이 단층에선 1822년 8월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시리아의 알레포에서만 7천명이 사망한 기록이 있지만, 최근엔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다. 스티븐 힉스 런던대학 교수(지질학)는 “1900년대 지진 감시 네트워크가 갖춰진 이래 규모 7 이상의 지진은 이 지역에 없었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100년 넘게 오랫동안 지각판끼리 마찰하며 거대한 압력이 쌓인 탓에 지진의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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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7을 넘는 큰 지진이 없었던 탓에 이 지역의 건물은 내진 설비 등 대비에 미흡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 지역 사람들은 지진의 흔들림에 매우 취약한 건물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보여주듯 큰 피해를 본 도시 가지안테프나 디야르바크르 등 피해 지역을 보면, 폭격을 맞은 듯 산산이 부서지거나 위아래로 완전히 찌부러진 건물이 많았다. 건물이 부서져도 골조가 버텨준다면 안에 있는 사람의 생존을 기대할 수 있지만, 피해 지역의 많은 건물은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철근 등으로 보강하지 않고 쌓아 올린 벽돌 건물, 충격을 잘 흡수하지 못하는 비연성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은 옆으로 흔드는 지진의 힘에 쉽게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해럴드 토빈 퍼시픽 노스웨스트 지진네트워크 소장은 무너진 건물들 옆에 간간이 멀쩡해 보이는 건물들이 보이는 것은 내진설계 기준에 따르지 않은 건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고 미국의 <엔비시>(NBC) 방송에 말했다. 2015년 9천여명이 목숨을 잃은 네팔 대지진 때도 지진에 취약한 비연성 콘크리트 건물 등이 쉽게 부서지면서 피해를 키웠다.

또 다른 변수는 지진의 깊이였다. 지진은 규모가 커도 지하 수백킬로미터에서 나면 별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지진의 진원은 지표에서 불과 약 18㎞ 떨어진 곳이었다. 최초 지진의 충격은 가까운 중동의 이집트나 레바논은 물론 5500㎞나 떨어진 그린란드에서도 감지됐다고 ‘덴마크-그린란드 지질학연구소’가 밝혔다.

보기 드물게 강력한 여진도 결정적이었다. 새벽 4시17분에 규모 7.8의 지진이 난 뒤 크고 작은 수십 차례 여진이 이어졌다. 11분 뒤 규모 6.5의 지진이 또 발생한 데 이어 9시간쯤 지난 오후 1시24분에는 규모 7.5의 강력한 여진이 다시 덮쳤다. 최초 지진 발생지로부터 95㎞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이 여진의 진원 깊이는 약 10㎞로 더 얕았다. 최초 강진의 타격을 받아 흔들리고 약화된 건물들이 이때 많이 무너졌다.

지질학자들도 이렇게 강력한 여진은 보기 드물다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는 지진에 대한 세계적 통계를 대입하면 이번 경우 가장 강력한 여진은 규모 6.8, 또는 최초 지진에 비해 30분의 1의 강도에 그쳐야 했다고 보도했다. 지진의 힘과 발생 양상뿐 아니라 최초 강진이 모두가 무방비 상태인 새벽에 일어났고, 피해 지역에 인구가 밀집해 있었다는 점도 희생자 수를 늘렸다.

박병수 선임기자,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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