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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주중 대사의 ‘불통 대통령’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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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겨레

지난해 10월 화상으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주중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베이징 특파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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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는 오랜만에 부임한 ‘중국 전문가’ 대사라는 기대 속에 지난해 8월 초 취임식을 열었다. 이후 7개월째가 되어가지만, 중국 전문가로서 면모보다 소심하고 소통이 힘들다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최근 행보는 공교롭게도 ‘고교 동창’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행보’와 쏙 빼닮았다.

정 대사는 6일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석달여 만에 열린 베이징 특파원과의 정기 간담회에서 미리 이메일로 받은 3개의 질문에만 답하고 들어갔다. 즉석 질문은 받지 않았고, 답변도 미리 적어 온 내용을 낭독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간담회가 아닌 일종의 발표회였다. 40여명으로 꾸려진 베이징 특파원단은 질문 없는 간담회에 반대했지만 정 대사의 뜻을 꺾지 못했다. 대사관 내 일부 직원도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문화방송>(MBC) 기자와의 갈등을 이유로 ‘약식 회견’(도어 스테핑)을 일방 중단했던 모습에 떠오른다.

정 대사는 질문을 받지 않는 이유로 지난해 8~9월 간담회 때 일부 기자가 ‘실명 보도’를 하지 않기로 한 규칙을 어겼다는 점을 꼽았다. 기자들이 규칙을 어겼으니, 자신도 사흘 전에 미리 이메일로 받은 질문에만 정리된 답변을 하겠다는 것이다. 갈등이 있었다고 소통의 문 자체를 막아버린 것이다.

정 대사가 ‘규칙 위반’이라고 지적하는 보도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상대로 지정학적 위험을 감안해 투자에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특파원 간담회에서 ‘대사를 처음 해 몰랐다’고 말했다”는 것들이다. 보도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 공개됐다면 당황했을 수 있다. 규칙 위반이라면 해당 매체에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면 될 일이다. 정 대사는 이런 노력 대신 특파원단 전체에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현장 질문을 받지 않는 간담회’라는 의미 없는 ‘쇼’를 강행했다.

정 대사가 주장하는 규칙 위반 역시 분명치 않다. 간담회에 비실명 보도 규칙이 있는 것은 국익을 해칠 수 있는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그의 사사로운 답변 모두를 지켜주기 위한 게 아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중국과의 외교다. 정 대사가 이런 소심하고 경직된 태도로 능수능란한 전문 외교관이 즐비한 중국과 외교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학자로 갈고닦은 지식을 펼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대범하고 유연한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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