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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인구와 경제] '부담증가의 사회'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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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면모와 후진 갈등이 뒤섞인 일본
연간 출생아 80만 명 아래 전망에
총리 "사회가 붕괴직전에 직면" 호소
만시지탄인 데다 백약이 무효한 상황
청년은 자포자기, 중고령은 아등바등
그럼에도 출산율·경제 한국보다 나아
골든타임 놓친 한국의 최후 카드는?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본보는 2020년 4월부터 시작한 <인구와 경제>를 통해 인구감소가 부른 사회적 파장과 그 대응 방안을 다각적으로 논의해왔습니다.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인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의 <인구과 경제>는 이번 회로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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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던 일본은 인구구조 변화로 사회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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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ㆍ끝> 사회구조 뒤흔든 인구변화 ‘선진일본의 불행 풍경’

3년 만의 일본은 사뭇 변했다. 풍경은 비슷하되 속내는 달라졌다. 짧은 방문이라 완전히 꿰뚫지는 못했지만, 3년의 거리두기 후 대면여행은 달라진 면면과 복잡한 소회로 마무리됐다. 요약하면 선진 면모와 후진 갈등이 뒤섞이며 사회구조의 붕괴 조짐이 완연해졌다. 주요 언론의 표현처럼 ‘빈곤일본(일본경제신문)’의 ‘신계급사회(주간다이아몬드)’가 한때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던 사회활력을 완벽히 집어삼킨 듯했다. ‘1억총중류사회’의 자랑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의 생활조차 버거운 이들이 급증했다. 천정부지의 부채 압박이 불지른 고집스러운 금융완화(엔저 유도) 속의 고물가는 “한국보다 못하다”는 푸념과 함께 폭망론에 직결한다. 요컨대 ‘나쁜 엔저’가 국민을 가난으로 내몬다는 의미다. 원인은 뭘까? 숱한 영향변수가 있지만, 가장 확실한 건 인구변화다. 그나마 일본은 2012년부터 아베노믹스로 전방위적 구조개혁과 충격완화에 나섰음에도 실효성은 거의 없었다. 이쯤에서 교훈은 명확해진다. 상황이 훨씬 나쁜 우리로서는 더 신속하고 유효한 대응카드가 필수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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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200만 명을 넘던 일본 신생아 수는 지난해 80만 명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신생아 수 감소는 일본 정부 추계보다 8년이 당겨진 것이다. 사진은 오사카 거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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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 붕괴 조짐 뚜렷 ‘불편·불만·불안 곳곳에’


일본사회의 활력은 급감했다. 도시·농촌 몇 곳의 생활현장을 직간접적으로 살폈는데, 인구증가·고도성장 때 먹혔던 세대부조형 사회구조가 심각한 기능부전에 빠진 걸로 보인다. 깊어진 양극화 속 비정상·불균형마저 횡행하는 형태다. 인구변화발 경착륙이 생활단위의 불편·불만·불안을 가중시킨 것이다. 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은 신조류가 됐고, 고령화(고령화비율 29%)는 위험수위를 넘겼다(2021년). 1970년대 한해 200만 명의 출생자도 2022년 80만 명 밑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80만 붕괴는 123년(통계작성) 만으로 추계보다 8년 앞당겨졌다. 총리가 신년벽두에 “일본사회가 붕괴직전에 직면했다”며 “당장 조치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고 호소한 배경이다. 사회 전반의 삐걱대는 불편·불안·불만을 흡수할 정치공학적 수사로 해석되나, 더는 미루기 힘든 절체절명의 개혁 필요로도 이해된다. 기성세대·기득주체의 고착화된 이익독점을 평준·중립화할 구조개혁에의 주문이다. 그럼에도 BBC는 “그간 출산정책을 펴왔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며 리더십의 발언에 찬물을 끼얹었다. 만시지탄일뿐더러 백약무효란 의미다. 어떤 반론도 ‘일본병=인구병’에 맞서기 힘들다는 뜻이다.

덩달아 사회구조는 곳곳에서 붕괴된다. 세대바통이 전제된 조세·복지·고용시스템은 시차를 갖고 무너진다. 조세는 재정균형이 무너졌다. 예산수입 중 조세는 61%(69조 엔)뿐이라 31%(36조 엔)는 적자국채로 벌충한다. 이에 반해 세출 중 사회보장과 국채비가 각각 32%(37조 엔), 22%(25조 엔)에 달한다(2023년). 그래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가 270%에 이른다. 정상국가로 보기 힘든 해괴한(?) 살림살이다. 연금·보험 등 사회보험도 ‘보험료 < 급부비’로 돌아섰기에 정부지원 없이는 유지 불능이다. 급부비만 정부예산을 웃도는 나라답다. 복지개혁도 일본은 훨씬 빨리 시작했는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복잡다단한 이슈란 얘기다. 즉 일본은 2022년 국민연금 납부기한을 ‘60세→65세’로 늘렸다(45년). 5년을 더 내면 1인당 약 100만 엔의 신규 부담이 생겨난다. 의료·간병보험은 소득·연령(75세)을 기준으로 자기부담을 더 높였다. 현행 원칙상 자기부담은 10%이지만, 일정소득을 넘기거나 현역소득과 비슷하면 각각 20%, 30%로 높아진다. 때문에 최소한 사회보험의 납부부담이 연장된 65세까지 고령근로는 불가피하다. 이에 반해 65세까지의 계속고용은 임금부담 탓에 난항이다. 전직 지원·경력 설계도 대기업에 한정될 뿐 중소기업은 어렵다. 그만큼 조세·복지(인구수요)와 고용·산업(인구공급)의 동시다발적인 구조개혁은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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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로 일본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청년은 나아지기 힘드니 향상심이 줄어들고, 중고령은 열심히 안 뛰면 노후생활이 어려워 아등바등한다. 도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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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변화 속 가속화된 비정상·불균형의 사회풍경


일본은 활력감소 속 부담증가의 사회가 됐다. 열심히 일해도 가처분소득이 고만고만한 폐색(閉塞)사회로 평가된다. 도전과 혁신은 몇몇 기업파트를 빼면 찾아보기 어렵다. 일류기업조차 없으면 후진국으로 향하는 떨어지는 칼날 신세란 발언도 들린다. 청년은 나아지기 힘드니 향상심이 줄어들고, 중고령은 열심히 안 뛰면 노후생활이 어려워 아등바등한다. 실제 인구변화가 촉발·재촉시킨 관련 트렌드는 심화된 듯하다. 특히 청년그룹의 기성이익에 대한 반발·포기정서가 깊어졌다. 요컨대 ‘노인 배싱(Bashing)’이다. “내가 번 돈으로 유유자적의 연금생활을 즐긴다”는 박탈감 탓이다. 길게는 30년째 정체된 임금 불만도 크다. 한국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을 논할 때 늘 등장하는 통계가 신입사원 임금비교다. 신년 벽두엔 고액 알바에 속은 일부 청년이 노인 대상의 연쇄강도·살인사건을 벌여 충격에 빠트렸다. 확인 사례만 20건 이상이다. 엔저까지 맞물린 청년절망은 일본을 떠나는 워홀(워킹홀리데이) 행진으로 이어진다. 정규직의 사회 입직을 포기한 프리터(자유벌이) 인생과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반면 국가적 리크루팅은 이들의 빈자리를 메운다. 간병·건설·농업·유통현장은 산업연수생처럼 외국인 근로자 없이 돌아가지 못한다. 3년 전과 비교하니 숫자와 국적은 훨씬 다양화됐다. 거리풍경은 늙음이 확연하다. 손님도 직원도 하나같이 실버인구다. 그들끼리의 ‘노노(老老)경제’다. 노후인생은 엇갈린다. 말년 격차는 악어의 입처럼 ‘부자노인 vs. 빈곤노인’의 차이를 벌린다. 호텔의 브런치와 400엔 규동집이 공존한다.

사회구조의 붕괴 흐름 속 버텨내려는 개별 대응체계는 관전포인트다. 가계차원의 세대부조를 완성하려는 재산승계가 그렇다. 부모 자산의 상속·증여가 급속한 성장테마가 된 것이다. 가계자산의 60%(2,000조 엔)를 움켜쥔 고령인구의 자녀걱정이 만들어낸 트렌드다. 정부도 활력 증진을 위해 비과세 등 특례조치로 자산이전 촉진정책을 강화한다. 이름하여 ‘부(富)의 회춘’이란 신조어로 소비진작·경기회복을 노린다. 소도시에서 만난 70대 해녀조차 육아 자녀를 위한 자산이전이 동년배의 공통 고민이라 전했다. 정부가 ‘부자나라 vs. 빈곤국민’의 미스매칭을 풀고자 구조개혁에 나섰다면 가계는 ‘부자부모 vs. 빈곤자녀’의 엇박자를 완화할 자체 방안에 고심한다. 개별선택이 사회편익이 될지 관심사다. 한편에선 비정상·불균형의 지방일수록 인구충격의 그림자는 더 자욱해졌다. 유지불능 확정지역마저 수두룩하다. 인적조차 끊긴 등록인구 제로마을이 164곳이며, 진입 직전은 3,622곳으로 집계됐다(2019년·총무성). 인구쟁탈전은 거세진다. 소멸위기 거론지역은 물론 최근엔 대도시조차 유입경합에 뛰어든다. 새로운 흐름도 목격된다. 인구반전 없는 재정파탄의 교훈은 지방자치단체의 인구유지 포기선언을 낳는다. 해 봤자 무의미하다는 반성 차원이다. 일부는 동네를 품위 있게 사라지도록 운동까지 펼친다(오이타현 미야하라 마을). 이렇게 되면 인구유출은 더 빨라진다. 직주락(職住樂) 없는 공간의 운명은 뻔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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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일본은 한국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다. 비어있는 서울 시내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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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걱정? No! ‘시한폭탄 앞당겨진 한국의 앞날’


3년 만의 일본은 한국의 되돌릴 수 없는 확정적인 미래로 해석된다. 철 지난 매뉴얼과 낡은 사회질서에 사로잡힌 집단우울이 빚어낸 반면교사가 떠오른다. 절대 좇아선 안 될 전형적 선행실패란 점에서 한국의 상황 대응은 시작되는 게 옳다. 구조개혁의 연기와 방치가 치를 값비싼 수업료를 반복해선 곤란해서다. 후진국이 됐다느니 한국에 뒤졌다느니 운운하는 평가에 일희일비할 여유는 없다. 사실 더 시급·절실한 건 한국사정인 까닭이다. 일본을 걱정할 계제는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일본은 여전히 파워풀하다. 부자 3대는 간다고 ‘일본=선진국’은 글로벌 공통평가다. 무능한 정부와 얌전한 국민이 빚어낸 불협화음만 주목하면 일본파워는 가려진다. 당장 일본의 대외순자산은 압도적 세계 1위다. 2022년 기준으로 31년 연속 ‘넘버 1’이다. 2021년 말 411조 엔으로 엔저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2위 독일(316조 엔)과 3위 홍콩(243조 엔)과도 큰 격차다. 기업경쟁력은 불문가지다. 500대 기업순위 중 일본은 중국(136개)·미국(124개)에 이어 3위(47개)다. 한국은 16개뿐이다(2022년·포춘). 이에 반해 인구변화의 핵심항목인 출산율은 한일 각각 0.75명(2022년 2분기)과 1.3명(2021년)이다. 출생자는 ‘25만 명 vs. 80만 명’으로 더 벌어진다. 엔저라지만, ‘엔화=안전자산’이란 등식도 굳건하다. 이런 일본이 인구변화로 몸살을 앓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지는 명확해진다. 치료보다 예방이나, 깊은 병세 속 체력마저 약하면 서둘러 전방위적 적극 치료에 나서는 게 맞다. 골든타임마저 놓친 한국사회가 버텨낼 최후 카드는 대대적인 이(異)차원의 구조개혁뿐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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