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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번호판 장사 5000곳 퇴출… 화물기사 표준운임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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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기사들에게 일감은 주지 않고 보유한 화물차 번호판을 빌려줘 사용료만 받는 4000~5000개 지입(持入) 전문 회사들이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들의 ‘번호판 장사’가 화물 기사들의 수입을 줄여 기사들의 총파업을 조장하고, 운임을 높이게 돼 기업과 소비자에게 부담을 준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또 화물 기사의 적정 운임을 보장하는 기존의 안전운임제 대신 표준운임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작년에 폐지된 안전운임제는 정부가 정한 수준보다 낮은 운임을 기사에게 지급하면 운수업체뿐만 아니라 화물을 맡긴 화주(貨主)까지 처벌(과태료)하게 돼 있어 과잉 입법이란 비판이 많았다. 표준운임제는 화주와 운수업체가 운임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화주 처벌은 없애는 대신 운수사에 대한 처벌은 유지해 기사에게 적정 운임이 지급되게 강제한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6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의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지입 전문 업체들의 보유 차량 수를 줄여 시장에서 퇴출하고, 이들의 부당한 ‘번호판 장사’를 막는 것이다.

지입제는 개인 화물차주가 자기 차량을 운수업체 명의로 등록해 운송 사업을 하는 제도로 1997년 도입됐다. 차주는 업체의 운송 면허 번호판을 달고 영업하는 대가로 매달 20만~30만원의 지입료를 주고, 업체는 차주에게 일감을 제공하게 된다. 지입 전문 업체 차량은 10만대 정도로 국내 8t(톤) 이상 화물차의 절반 정도다.

상생 성격도 있는 지입제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 손보려는 부분은, 일감은 주지 않고 번호판 대여로 각종 부당 이득만 챙기는 업체들의 번호판 장사”라며 “이런 일들은 대부분 운송은 하지 않고 번호판만 빌려줘 돈을 버는 지입 전문 업체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2004년부터 시행된 화물차량 총량제로 인해 현재 신규 운송 면허는 발급받기 어렵다. 운송 영업을 하려는 사람은 업체로부터 번호판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를 악용해 적지 않은 업체가 화물 기사들에게서 부당한 추가 비용을 뜯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사가 번호판을 빌릴 때 업체에 내는 ‘번호판 계약비’다. 대략 2000만~3000만원을 내는데, 작년 한국교통연구원 조사 결과 기사들의 89.3%가 이 돈을 업체로부터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나왔다.

‘차량 교체비’도 대표적인 부당 이득으로 통한다. 화물 기사가 자기 돈으로 노후 차량을 바꾸려 할 때 상당수 업체들이 승인 도장을 찍어주는 ‘도장값’으로 700만~800만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지입 전문 업체들은 도장 값 상납을 거부한 기사들에겐 지입(번호판 대여) 계약 갱신을 하지 않는 식으로 보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경우 기사들은 또다시 수천만원의 계약비를 내고 다른 업체와 지입 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 요구를 거부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화물 업계 관계자는 “지입 전문 업체들이 자기들의 소송 비용을 기사들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작년 8월 한 운송사는 신규 면허 발급이 용이한 청소 차량의 번호판을 발급받은 뒤 이를 화물차에 달아 사용하는 등의 불법 증차를 했다가 관할 지자체에 적발돼 감차(減車)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이 업체는 지입 계약을 맺은 기사들에게 “○○시청의 감차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하려 하니 변호사 비용 및 제반 수수료로 1인당 350만원씩을 내라”고 요구했다. 불법은 업체가 저질러 놓고 비용은 기사들에게 전가한 것이다.

국토부는 화물차운수사업법 개정을 통해 업체들의 이런 ‘부당 징수’를 처벌할 법적 근거를 만들고 또 기사들에게 물량을 제공하지 않은 지입 전문 운송사에 대해선 감차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안전운임제·표준운임제

문재인 정부는 화물차주의 적정 소득을 보장한다며 기준 미달 운임이 기사에게 지급됐을 땐 운수사와 화주 모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안전운임제를 도입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표준운임제는 화주 처벌은 폐지하되, 운수사의 적정 운임 지급은 그대로 강제한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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