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주택에서 사회적 협동조합 우리집 샬롬의 유지풍 이사장이 주택 창호를 가리키고 있다. 이 주택은 2021년 에너지 효율 공사를 해서, 지난 12월 가스비 인상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았다. 김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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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의 한 빌라. 세입자 A씨는 최근 난방비 대란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은 지 30년 넘은 이 빌라 2층에 입주할 당시 단열 성능 개선 공사가 완료된 점을 주목했었는데, 가스요금(지난해 12월 분)이 단열 공사를 하지 않은 1층보다 10만 원이나 적게 나왔기 때문이다.
공사를 했던 2021년 8월 당시 1층은 빌라 소유주 석모(84)씨가 거주하고 있어서 공사를 하지 못했고, 2, 3층은 석씨가 세입자를 구하는 동안 집이 빈 틈을 이용해 공사했다. 노후 보일러와 천장·내벽 단열재, 창호, 바닥 온수 배관을 교체했다. 석씨가 사는 1층은 노후 설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2021년 겨울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체감할 수 없었던 단열 공사의 효과는 한파와 가스요금 인상이 겹친 지난해 12월부터 극명하게 드러났다. 1층은 도시가스 사용량이 지난해 11월 68㎥에서 12월 258㎥로 3.7배가량 늘었고, 12월 가스요금은 24만 원이 부과됐다. 반면 2층은 11월 62㎥에서 12월 151㎥로 2.4배 늘었고, 가스요금도 14만 원이 나왔다.
A씨 입장에서야 14만 원의 가스요금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니지만, 1층과 비교하면 가스를 약 41.5% 적게 사용해 10만 원의 요금을 아낄 수 있었다. 1, 2층은 면적이 각각 33㎡, 29㎡, 거주자는 1층 2명, 2층 1명으로 난방 수요에 아주 큰 차이는 없다.
집주인 석씨는 "A씨의 경우 난방을 과하게 틀어 한파에도 실내에서 반바지를 입고 생활할 정도였는데, 우리는 훨씬 많은 가스를 쓰면서도 추위에 덜덜 떨었다"며 "가스요금 '폭탄'을 맞은 이후 A씨는 난방을 줄여 대처하겠다고 하는데, 1층은 너무 추워 가스 사용량을 줄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주택 리모델링 0.4%뿐… 집 고쳐 쓰는 문화가 필요하다
24일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석씨의 딸 윤모씨가 지난해 12월 가스요금을 보여주고 있다. 김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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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가스요금 폭탄 논란과 관련해 장기적으로 주택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 위기로 폭염·한파가 잦아지면서 냉·난방 수요가 늘고, 화석 연료 비용이 올라가는 등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전국 건물 착공 면적 중 주택 리모델링 면적은 약 0.4%(0.63㎢)에 불과했다. 86.6%(117㎢)가 신축이었고, 리모델링의 96.4%는 상가·사무실 등 비주거용 건물에 집중됐다. 집을 고쳐 쓰기보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다가 재건축으로 집값을 올리려는 부동산 문화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다.
석씨도 애초에 집을 고쳐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석씨의 건강 악화로 2021년 함께 살게 된 딸이 '돈을 들이더라도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낫다'며 공사를 제안했다. 1,200만 원을 들였는데, 공사를 위해 집을 뜯어보니 상수도 배관이 낡아 제 기능을 못하고 벽의 단열재도 형편없었다고 한다.
'우리집 샬롬'이 공사한 현장. 장판을 드러내자 배관이 깨진 채 방치되어 물이 발목까지 차 있었다. 우리집 샬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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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환경 개선사업을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우리집 샬롬'의 유지풍 이사장은 "노후 주택 주민 중에는 바닥 난방 배관에 누수가 생겨도 이를 알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며 "원래 집이 추우려니 하고 살기보단 성능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에너지효율등급 1+++ 주택은 에너지 요금 8만 원
전문가들은 기후 대응 관점에서 주택 에너지 효율 공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 주택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감축할 수 있고, 이상 기온에서 거주민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 탄소 감축과 기후위기 적응, 양 측면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매년 건물의 2.5%를 개조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실제 건물 에너지 효율 등급이 최고등급(1+++)인 서울 노원 에너지제로주택에 사는 B씨는 지난해 12월 에너지 요금이 8만1,500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합친 금액이다. B씨 주택은 면적이 49㎡로 3명이 함께 살고 있다. 석씨보다 난방 수요가 많지만, 에너지 요금은 16만 원이나 적게 나왔다.
서울 노원구 노원 에너지제로주택 전경. 국토교통부 사업으로 2017년 준공돼 121가구가 살고 있다. 건물 에너지 효율 등급이 '1+++'로 가장 높다. 김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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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제로주택은 가스보일러가 아닌 전기 히트펌프(지열)를 이용해 난방을 하는 점이 효과가 컸다. 히트펌프는 전기를 이용해 외부 열을 끌어오는 기계다. 실내 온도를 20도 이상 유지했지만, 도시가스를 사용하지 않아 요금 폭등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전기요금도 오르고 있지만, 단열 성능이 좋은 데다 건물에 태양광 발전 설비도 운영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할 것으로 보인다.
이응신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 교수는 "지난해 12월은 11월보다 기온이 크게 떨어져 난방 에너지가 30%가량 더 많이 쓰였다"면서도 "주택 단열 성능이 좋아 다른 주택에 비해 에너지 요금이 적게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최저 성능 주택부터 에너지 공사 의무화해야”
서울 '도시재생 사업지 1호'인 종로구 창신-숭인 구역에 노후주택이 밀집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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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주택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논의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효율 공사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주택을 새로 짓는 것 이상으로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석씨도 공사비 1,200만 원 중 600만 원을 서울시의 가꿈주택지원사업을 통해 지원받았다. 에너지 효율 개선을 전제로 노후 주택의 공사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집주인과 거주자(세입자)가 다를 때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주택 효율 공사는 길게는 2, 3주 걸리는데, 집주인이 공사를 원해도 세입자가 공사 기간 동안 집을 비워주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입자가 집이 너무 추워 효율 공사를 원해도, 집주인이 공사비를 내지 않으면 집을 고칠 수 없다.
그래서 '최저 에너지 성능'에 미치지 못하는 주택부터 효율 공사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영국이 시행 중이다.
영국 런던 북부에 위치한 주택 전경. 영국은 2018년부터 주택 에너지 성능이 최저 기준에 미달하면 집을 임대할 수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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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에너지 위기에 취약한 노후 주택부터 공사를 하게 되고, 공사 시점이 새로 집주인·세입자를 구하는 시기여서 공사를 위해 집을 비워줘야 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추소연 RE도시건축연구소장은 "똑같은 설비를 설치하더라도 에너지 성능이 낮은 주택을 고칠 때 성능 개선 효과가 크다"며 "취약한 계층부터, 에너지 효율 개선 효과가 크도록 정책 설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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