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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법없이도 사는법] 부부싸움도 ‘아동학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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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태운 택시기사에 욕설한 벤츠 운전자, 법원 ‘아동학대’ 인정

조선일보

법원 로고.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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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선변경으로 인한 시비 도중 아이들이 승객으로 탑승한 택시의 기사에게 고성과 욕설을 한 벤츠 운전자에게 법원이 아동학대 혐의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직접 아동에게 욕설한 경우가 아니라도 ‘정서적 학대’를 인정한 점에서 의미있는 판결입니다.

B씨는 작년 4월 7세, 6세 두 아들과 함께 경기 성남시에서 택시를 타고 가던 중 부근 8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벤츠 차량이 끼어들었고, 택시가 급정거했습니다. 택시가 갑자기 진로변경을 했다며 벤츠운전자 a씨가 경적을 크게 울리며 택시 앞으로 끼어들어 멈추게 한 것입니다. 그는 기사에게 달려와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 XXXX야 운전 똑바로 해, X 같은 놈”이라고 크 소리로 욕설을 했고 택시기사가 창문에 걸친 A씨의 팔뚝을 밀어내자 “뒤진다, 손 내려”하고 고성을 질렸습니다.

뒷좌석에서 두 아들과 함께 있던 B씨는 “아이가 있으니 그만 하세요”라고 호소했지만 A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택시기사에게 “애들 있는데 왜 운전을 X 같이 해”라며 욕설을 이어갔습니다. 왕복 8차선 도로 한복판이어서 내릴 수도 없었던 B씨는 아이들의 귀를 막아주며 폭언에 노출되지 않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2분건 이어지던 고성과 욕설은 견인차량이 도착하자 A씨가 벤츠차량을 몰고 떠나면서 그쳤습니다.

검찰은 A씨에 대해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운전자폭행)등을 적용해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사안이 중하다고 보고 정식 재판으로 넘겼습니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남균 판사는 지난달 12일 “A씨는 택시기사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해 도로교통의 안전을 해쳤고, 피해 어린이들의 정신건강 및 정서적 발달에 해를 끼쳤다”며 벌금 300만원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B씨를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조수아 변호사는 “아동에 대한 직접적인 폭언 뿐 아니라 아동이 들을 수 있는 장소에서 이뤄진 간접적 폭언도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는 판결”이라고 합니다.

◇아동에 대한 ‘간접 폭언’도 아동학대.. “부부싸움도 조심해야”

아동에 대한 욕설이 아동학대(정서적 학대)로 인정된 사례는 여럿 있습니다. 2021년 서울중앙지법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욕설하고 행패를 부린 50대 남성에게 아동학대 혐의를 인정해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숙제 안한 학생에게 ‘개xx’라고 욕설한 학원장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아동에 대한 욕설이 아닌데도 아동학대가 인정됐습니다. A씨가 해당 장소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욕설을 했기 때문입니다. 부모인 B씨가 “아이가 있으니까 그만 해주세요”라고 수차례 부탁했는데도 A씨가 욕설과 고성을 이어 갔고, 이로 인해 아이들이 악몽을 꾸는 등의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이 같은 ‘간접적 폭언’ 아동학대는 의외로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특히 문제되는 상황이 아이 앞에서 부모가 싸우는 경우입니다. 부부가 몸싸움까지 하며 심하게 다툰 사안에서 아이가 경찰에 신고 했는데 경찰이 부부에게 아동학대 혐의 적용을 검토중인 사건도 있다고 합니다. 범죄피해자 국선전담 곽아량 변호사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부가 여러 차례 몸싸움을 하고 아이가 신고한 것도 여러 번이어서 단순 가정폭력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정서적 학대로 본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에 대한 직접 욕설이 아니라도 정신건강이나 정서적 발달에 해를 끼치면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2019년 ‘제주 카니발 사건’과 비교하면 아동학대를 다루는 수사기관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주 카니발 사건’은 2019년 7월 제주에서 카니발을 몰던 가해자가 차선 변경 시비 끝에 피해자의 차량을 멈춰 세운 뒤 차량 뒷좌석에서 피해자 자녀(당시 5세, 8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차량 운전자를 폭행한 사건입니다. 가해자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특가법(운전자상해죄)만 적용됐고 아동학대죄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정서적 학대’의 인정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인 만큼 법조계에서는 ‘벤츠 사건’과 같은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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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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