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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자수첩] 허술한 출연연 기술이전, 피해는 국민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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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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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홍보 내용을 믿고 투자를 했는데…”

워너비그룹의 대체불가토큰(NFT) 사업에 투자했다는 투자자 A씨가 통화에서 한 말이다.

워너비그룹은 블록체인과 NFT 같은 신기술을 앞세워 최근 투자자를 모은 회사다. 유명 배우인 소지섭을 내세워 TV 광고까지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 방식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금융감독원이 경찰에 직접 수사를 의뢰했고, 유사수신 혐의로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워너비그룹은 합법적인 사업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경찰 조사 소식 만으로도 투자자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A씨는 어쩌다 워너비그룹에 투자를 결심하게 된 걸까. A씨는 유튜브를 이야기했다. 워너비그룹은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서 적극적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이때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핵심 키워드로 등장했다고 한다. ETRI에서 기술을 이전받을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로 자신들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워너비그룹이 지난 25일 새로 공개한 강연 영상을 보면 전영철 워너비그룹 회장은 “ETRI에서 개발한 4차산업 혁명을 주도할 기술을 이전받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설명회와 강연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인 걸 감안하면 NFT나 블록체인의 복잡한 기술에 대한 설명보다는 ETRI라는 출연연의 이름이 투자자들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ETRI는 이런 사실이 문제가 되자 이달 초 워너비그룹에 허위사실이 담긴 홍보자료를 지우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ETRI와 워너비그룹이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에 워너비그룹이 ETRI를 자사 홍보에 쓰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과학기술계에선 이번 사태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었던 일이라고 지적한다. 출연연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기술이전 계약을 맺는 건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실은 워너비그룹이 ETRI에 제출한 기술이전신청서는 내용이 텅텅 빈 항목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ETRI는 이와 별개로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허술한 출연연 기술이전 계약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A씨는 지금도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경찰 수사 결과만 기다린다고 한다. 자신을 믿고 투자를 한 지인들 볼 낯이 없다고 한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기술이전을 결정한 출연연 관계자들은 과연 국민들 볼 낯이 있을까.

이병철 기자(alwaysa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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