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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재명의 '대통령 4년 중임제', 정말 정치 개혁의 핵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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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신현재 기획위원]
1월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과 정치 개혁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는 "올해로 '87년 헌법체제'가 36년째를 맞았다"며 "이제 시대가 달라졌고 국민은 변화를 요구한다"고 개헌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단지 개헌이 필요하다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재명 대표는 "다행히 올해는 선거가 없는 해"이기에 "개헌을 논의하기에 매우 적절한 시기"라고 개헌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으며, 또한 더불어민주당이 3월까지 자체 개헌안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국회 의석이 과반을 훨씬 넘는 정당의 대표가 밝힌 개헌 구상이니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밝힌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발언과 야당 대표의 이러한 전망이 서로 얽힌다면, 올해는 낡은 제6공화국 정치 질서의 골간을 바꾸는 일대 전환의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기자회견이 있고 나서 벌써 몇 주가 지났는데도 개헌론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는 여전히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 관련한 이재명 대표 검찰 수사가 중심 기사가 되면서 '개헌' 같은 화제는 한참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낡은 정치의 화려한 쇼가 이 낡은 정치를 바꾸려는 어떠한 논의든 모조리 잡아먹는 격이다.

하지만 꼭 개헌론 바깥의 냉담과 무시만 문제는 아니다. 개헌론 자체에도 '개헌'을 식상하게 만들거나 별 의미 없이 만들어 버리는 요소들이 있다. 개헌에 대한 다수의 무관심이나 반감뿐만 아니라 주류 개헌론의 내용도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실은 이재명 대표가 밝힌 더불어민주당의 개헌 비전 역시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정말 개헌의 핵심인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표가 개헌안으로 첫 머리에 든 것은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이었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 정치의 실현과 국정의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도 말했고,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도 언급했다. 또한 "생명권, 환경권 등 국민 기본권과 자치분권 강화, 국민 발안, 주민 소환 등의 직접민주주의 확대, 5.18민주화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같은 사안들"도 열거했다. 겉으로만 보면,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이런 여러 내용 중 단지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민주당 계열 정당들은 오랫동안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개헌안의 핵심 내용으로 제시해왔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잠시 개헌이 논의될 때에도 그랬고, 선거 때마다 공약집의 '정치' 부분에서도 늘 대통령 4년 중임제가 현 정치 질서의 문제점을 극복할 만병통치약 같은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이재명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 방향의 첫 번째로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나온 것도 이런 유구하고 강력한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왜 하필 대통령 4년 중임제인가? 왜 민주당 계열 정당들은 제6공화국 정치 질서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에 집착하는가? 나는 항상 이것이 의아했다. 대통령을 5년간 한 차례 하고 물러나는 게 정말 지금 한국 정치가 한국 사회의 수준과 과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근본 이유인가? 대통령을 4년간 두 차례 역임할 수 있게 열어 놓으면, 정부와 국회, 정당 모두 비전과 정책에 따른 정치를 하고 책임성을 강화할 것인가?

이 방안을 지지하는 이들의 설명을 들어봐도 납득하기는 힘들다. 미국을 비롯해 대통령제를 취하는 나라들이 대부분 한 차례 연임이나 중임을 허용한다는 논리 말고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정도 논리라면, 한국도 기왕에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으니 중임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의 근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에 가장 먼저 필요한 제도적 개혁 방안이 대통령 4년 중임제인 이유까지는 되지 못한다.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의 주된 근거로 "책임 정치의 실현"을 들었다. 현재 한국 정치의 문제점이 사회의 요구나 과제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데 있다는 진단 자체는 옳다. 그러나 이 근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가장 긴급하고 필수적인 처방은 단지 대통령제의 보편적 장치 중 하나를 보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처방은 한국 정치가 '무책임 정치'인 이유에 관한 보다 구체적이고 진지한 분석과 진단에서 나와야 한다.

나는 이 지면에서 몇 차례에 걸쳐 나름대로 이런 작업을 시도했다(하나만 예로 들면, "'국민 스포츠' 대통령 비판하기?…바꿔야 할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제", <프레시안> 2022년 10월 17일). 여기에서 그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첫째 대통령이 행정을 총괄하고 국회는 이를 견제하며 입법을 담당한다는 미국식 대통령제의 고전적 원칙은 지금 한국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의 20년에 가깝게 역대 대통령은 행정부의 의지를 뒷받침해주지 않는 국회 내 '정쟁'을 탓하며 임기를 보내며, 국회는 양대 정당의 차기 대선 예행연습으로 시간을 때운다. 대통령도, 국회도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비전이나 정책을 실현하려는 '책임 정치'는 하지 않는다. 그러한 책임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지대에서 양대 정당 중 다음 번 여당은 어느 쪽일지를 놓고 끊임없이 언론 정치면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극장 정치'가 벌어질 뿐이다.

둘째, 현재 한국의 대통령제는 대한민국에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이 꼭 있어야 할 가장 절박한 이유마저 충족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안전을 유지하는 임무다.

현 헌법에서 대통령 몫으로 되어 있는 여러 임무를 다른 헌법기관으로 옮긴다 하더라도 최후까지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외치의 영역일 것이다. 그만큼 이 작은 민주공화국의 존립에는 시민 다수에 의해 선출된 대외 협상 대표의 역할이 막중하다. 그러나 오로지 양대 정당의 국내 권력 게임에 의해 당선된 현 대한민국 대통령은 바로 이 임무에서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무지와 무능을 노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현행 대통령제의 가장 참담한 실패다.

이런 진단을 바탕으로, 그리고 핀란드를 주된 참고 사례로 삼아 나는 현 대통령제에 의회제(의원내각제) 요소를 크게 받아들이는 개혁 방향을 제안한 바 있다. 대통령은 외치에 주력하고 내정은 국회에서 선출한 국무총리와 그 내각이 맡자는 것이다. 이 경우에 대통령과 국회는 상호 견제를 중심에 두는 관계에 있다기보다는 외치와 내치라는 두 영역에서 각각 책임 정치를 펼쳐야 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이런 시스템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조치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아니라, 예컨대 국회의 국무총리 선출 권한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도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언급한 뒤에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제"를 덧붙이기는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당장의 인기보다는 한국 정치에 관한 진중한 성찰에 바탕을 둔 개헌론이라면, 마땅히 앞세워야 할 것은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제 쪽이다.

프레시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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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개헌보다도 대통령제 개혁

사실 이런 대통령제 개혁 노력은 개헌 이전에도 추진될 수 있다. 헌법 조항을 바꾸기 전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가령 현행 현법에도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항(제86조 1)이 있다. 정당들이 합의하기만 한다면, 국회가 투표로 정한 추천자를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임명하더라도 헌법과 충돌하지 않는다. 국회가 그런 정치 과정을 시도하지 않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을 뿐이다.

대통령은 외치에 주력하고 국무총리와 국무회의는 내정을 전담하는 분업 역시 꼭 헌법 문구를 바꿔야만 실행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수 여론이 지지하고 정당들이 이를 바탕으로 합의하기만 한다면, 현 헌법 아래서도 충분히 단계적으로 분업을 정착시켜나갈 수 있다. 핀란드도 실은 헌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잇단 정치적 선택과 그것이 누적된 전통을 통해 특유의 이원집정부제를 만들어갔다.

물론 권력 구조에 관한 개혁은 결국 개헌으로 완결되어야 한다. 현 헌법 아래에서 이원집정부제 성격을 강하게 띤 국가 운영이 일정하게 성과를 낸다면, 어느 시점에든 헌법 자체를 바꾸는 절차는 꼭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쨌든 순서는 개헌이 반드시 먼저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구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요소들을 실험하는 과정이 먼저 있어야 그 뒤에 개헌이 따라올 가능성이 높다. 시민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개헌이 단지 토론과 표결만으로 쉽게 성사될 수는 없다. 먼저 여러 실험과 예행연습들이 있고서야 헌법 개정이라는 마지막 절차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나의 지난 칼럼("최악의 미래 가져올 尹의 선거제도 개혁안, 최선책은?", <프레시안> 2023년 1월 10일)에 대한 몇몇 분의 비판은 정당하고 정확했다. 그 글에서 나는 선거제도 개혁 세력이 반드시 선거제 개혁과 더불어 "의회제 혹은 핀란드형 이원집정부제로 나아가는 개헌을 주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선거제 개혁과 개헌을 연동시키면 도리어 선거제 개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선거제 개혁 세력이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최종 극복할 대대적 헌법 개정(차라리 새 헌법 제정)을 함께 주창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개헌이 선거제 개혁의 전제인 듯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일리가 있다. 더구나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개헌은 한국식 대통령제 개혁의 마지막 단계다. 즉, 핵심은 대통령제 개혁이지 개헌 자체는 아니다. 선거제 개혁이 '개헌'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보다는 '대통령제 개혁'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쪽이 더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리고 이러한 교정의 붉은 펜은 고스란히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한테도 향한다. 원내 과반을 점한 제1야당이 개헌론을 띄운 것은 반갑지만,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진정 현상 타파를 바란다면 먼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헌법을 바꾸기 전에라도 착수할 수 있는 대통령제 개혁 방안을 제기하고 여론의 지지를 모으는 일이다.

시급한 한국식 대통령제 개혁, 그것은 개헌 전부터 시작될 수 있다. 아니, 시작되어야만 한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신현재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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