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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스라엘과 수교, 이란에 다시 대사 파견… UAE 대통령의 실용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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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사관학교 나온 군사 전략가, 징병제 도입하며 딸도 훈련소 보내

국방 중심은 미국·사우디에 두고 안보 위협 이란·시리아와 교류 나서

엄중한 안보 환경 한국과 비슷… 특별전략적동반자 관계 더 깊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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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알아사드(왼쪽) 시리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UAE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아사드의 아랍국 방문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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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는 7개 에미리트(토후국)의 연방 국가다. 군주인 토후(에미르)들이 주권의 일부를 연방 정부에 위임하고 권력을 나누는 모습은 다소 생경하다. 그중 아부다비가 실질적인 맏형 격이다. 두바이 등 여타 에미리트들은 대략 아부다비의 지도를 따른다.

아부다비의 수장이자 UAE의 연방 대통령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는 숨은 고수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파격적인 행보로 연일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과는 달리 그는 별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서방의 외교 전문가들은 UAE의 무함마드 대통령을 역내 최고의 전략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전임 대통령이 병석에 누운 2014년 이후 실질적 통치자 역할을 하며 쌓은 내공이 만만찮다. 그의 리더십은 다음과 같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실용주의 개방 외교다. 대통령 스스로 고백하듯 아버지 자이드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어받은 포용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대통령 개인은 보수 이슬람 신앙을 견지하지만 외교는 철저하게 실리를 우선한다. 같은 걸프 지역의 사우디와 카타르의 극보수 이슬람 이념인 와하비즘과 거리를 둔다.

둘째, 왕실 결속과 연방 화합을 우선시한다. 어머니 파티마 여사의 역할이 작지 않다. 여사는 1920년대 6년간 3차례나 권력이 뒤집히며 벌어졌던 아부다비의 참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자식들에게 각인시켰다. 무함마드의 형제들은 모친의 가르침대로 현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있다. 미묘한 세습 갈등이 있는 중동의 이웃 왕국들과 사뭇 다르다. 중심축 아부다비가 탄탄하니 연방도 안정적이다. 석유 생산의 90%를 점유하는 아부다비가 여타 에미리트들을 재정적으로 돌본 덕이기도 하다. 반면 국내 위협 요인인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엄혹하게 색출, 처벌한다. 인권 문제가 제기될 정도다.

셋째, 국가 안보에 단호하다. 아랍 왕정 리더십의 정통성 요건 중 하나가 군 지휘 역량이다. 늘 전운이 감돌기 때문이다. 국가 위기 시에는 군복을 챙겨 입는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아랍 전체 지도자들 중 최고 수준의 군사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다. 영국 왕립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서 수학했고, 항공기 조종, 고공 강하 등을 즐겼다고 한다. 20대에 공군사령관, 30대에 통합군 참모장을 역임했다. 걸프전 당시 미 중부군사령관과 함께 작전 지휘에 동참하며 전장 경험을 쌓았다. 2014년부터 징병제를 실시했다. 당시 15세였던 딸 하사 공주도 입대, 군사 훈련을 받았다. 퇴소하는 딸과 포옹하던 무함마드의 대견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전선(戰線)에 항상 왕실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통합군 총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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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하얀(왼쪽) UAE 국가안보보좌관이 2021년 12월 이란을 방문해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이란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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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는 민주적인 지도자가 아니다. 권력 유지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여느 절대군주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깊이가 남다르다. 이처럼 안팎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아온 무함마드 대통령의 고민이 최근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중동 관여 축소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전격 철군이 결정적이었다. 대미 안보 의존도가 높은 UAE는 충격을 받았다. 외교 행태가 바뀌었다. 안으로는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되, 밖으로는 대화를 통해 위험을 낮추고 있다. 무기를 챙겨 나라를 튼튼히 하고, 외교를 통해 위협을 낮추는 실용주의 외교 안보의 정석이다.

이미 오랜 적대국 이스라엘과 수교하면서 분쟁 상태를 해소했다. 이제 UAE의 최대 안보 위협은 이란이다. 바다 건너편 지근거리에서 혁명을 수출하려 시도하는 이란과 마주하는 부담은 가볍지 않다. 걸프 해역 3개 도서(島嶼)를 둘러싼 영토 분쟁은 현안이다. 여기에 중동 전역에 퍼진 친이란 세력, 특히 예멘 후티 반군 등의 도발 스트레스가 더 크다. 2022년 1월 아부다비 공항 드론 피습 충격 이후 방공망 구축 및 요격 능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과 전면전을 불사하기는 어렵다. 위험 회피 외교를 병행하고 있다. 소환했던 대사도 다시 보냈고, 국가안보보좌관도 테헤란을 다녀왔다. 경제 및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두바이 테헤란 왕복 직항 편만 현재 주 47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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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외교부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의 UAE 방문 소식은 놀라웠다. 아사드는 이란과 준동맹 관계다. 내전 이래 고립 상태에 있던 아사드의 첫 아랍 국가 방문이었다. 그를 환대한 무함마드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UAE가 특정 진영의 붙박이가 아니라는 신호를 발신한 셈이다. 진영을 넘나드는 중재 의지까지 드러냈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미국과 각을 세우던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UAE는 강대국이 아니다. 중견 국가에 가깝다. 지정학적으로는 사우디와 이란 두 강대국 사이에 끼인 국가다. 그간 안보와 경제 모두 미국에 의존해왔다. 지금도 주축은 여전히 사우디와 미국 편에 두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란, 중국과도 일정 부분 협력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몸놀림이 달라졌다. 건국 이후 50여 년간 보여주었던 전통적 외교를 벗어나 시즌2 외교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한국과 UAE 관계는 각별하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UAE가 불모지 사막에서 국가 건설의 기적을 이루어냈다면, 한국은 전쟁의 참화를 딛고 경제 발전의 기적을 이루어냈다는 동질감을 자주 피력했다. 양국이 처한 엄중한 안보 환경에 대한 고민도 비슷할 것이다. 격변의 시기,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다시 사막으로, 다시 참화의 잿더미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이례적인 300억달러 투자액 명시 소식에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수치로 나타나는 경제 성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한국과 UAE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과 그 고민의 함의다. 지정학의 단층선에 서 있는 두 나라는 더 자주, 더 깊이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특별전략적동반자관계’는 미사여구가 아니다. 전략을 공유하며 함께 미래를 고민하는 사이, 즉 특별한 지음(知音)임을 뜻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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