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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MZ "돈 쓸 기분 나네요"…코로나에 홍대 울때 이곳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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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성수동은 힙한 곳이 많잖아요. 올 때마다 새롭고 재밌어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인근 일대에는 최저기온 -17도를 기록한 한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대학생 이예람(21)씨의 말처럼 MZ세대가 성수동을 찾는 이유는 ‘힙해서’다. 힙하다는 말은 영어 단어 ‘hip’에 한국어 ‘~하다’를 붙여서 만든 말로 개성이 있으면서도 유행을 이끌어간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트렌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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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카페거리와 연무장길이 만나는 사거리. 퇴근하는 직장인과 맛집을 찾은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다.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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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팝업스토어의 성지로 부상



실제 성수동은 트렌디한 카페와 팝업스토어(임시매장)의 성지다. 2010년대 초부터 생긴 오래된 공장이나 정비소를 리모델링한 대규모 레트로 감성 카페가 인기를 끌며 상권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후 개성 넘치는 대형 카페와 리테일 숍이 들어서며 MZ세대에게 핫플레이스가 됐다. 대학생 이상열(22)씨는 “성수동에는 감성 카페, 팝업스토어 등 요즘 트렌드에 맞는 놀 곳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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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성수동 연무장길 인근에 자리한 명품브랜드 디올의 팝업스토어 '디올 성수'.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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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신라면 팝업스토어에 방문한 시민들이 다양한 체험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윤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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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 건물 전체 또는 일부를 빌려 브랜드를 홍보하는 팝업스토어도 자주 열린다. 건물 내·외부를 브랜드 느낌이 물씬 묻어나게 꾸미고 포토 부스 등 각종 체험 행사가 펼쳐진다. 단순 홍보를 넘어 소비자가 브랜드를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경험을 원하는 MZ세대의 취향과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브랜드의 목적이 맞아 떨어지며 명품부터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앞다퉈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다.

그 수요가 폭발적이라 공급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전선경 성수AK부동산 대표 공인중개사는 “팝업스토어를 찾는 10팀 중 1~2팀만 맞춰줄 수 있을 정도”라며 “이미 유명한 건물은 봄까지 일정이 차있다”고 말했다. 디올 성수, 포르쉐 나우, 아모레퍼시픽 롱테이크 이구성수, 농심 신라면 카페테리아 등 이번 달 성수역 인근에서 오픈한 팝업스토어만 20여 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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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지난 25일 성수동 연무장길에 위치한 문구점 '포인트오브뷰(Point of View)'가 문구류를 구경하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윤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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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이 아닌 카페와 편집숍까지도 종종 팝업스토어로 변신한다. 카페 오우드도 그중 한 곳이다. 2020년 12월 오픈 당시 카페거리에서 500m나 떨어져 있는데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세에 있어 우려했지만 지금까지 카페를 찾는 손님과 대관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오우드 운영사 ㈜이공오의 정민석 실장은 “코로나19 기간에도 매출이 증가해 성수동 상권의 성장이 체감된다”고 말했다.

성수동은 요식업장이 많아 음식과 음료(F&B) 분야도 탄탄하다. 메인 거리 연무장길 권리금이 3년전 평당 300만원에서 최근 900만~1100만원으로 3배 이상 올랐을 정도로 상권이 커졌다. 뷰티, 패션, 문구 등 다양한 장르의 리테일숍도 들어섰다. 무신사, 쏘카에 이어 크래프톤까지 입주를 준비하며 오피스 입점도 늘어날 전망이다.



전통 상권 강남역·명동·홍대 하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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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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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확산되기 시작한 코로나19로 최근 3년간 많은 도심 상권이 몰락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도 자영업자 비율이 7위(24.6%)로 높아 타격이 더 컸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할 만큼 모든 경제 지표엔 적신호가 켜졌고,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은 상권 침체로 이어졌다.

하지만 서울 성수동 등 일부 상권은 어려운 시기에도 성장세를 보였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성수동 상권의 매출은 2019년 12월 163억원에서 지난해 6월 292억원으로 2년 6개월 만에 80% 증가했다. 압구정로데오 도산공원 인근 상권(43%)과 한남동 상권(30%)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 반면 기존 전통 도심 상권인 강남역(-12%), 명동(-17%), 홍대(-8%) 상권의 매출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희비를 가른 것은 바로 MZ세대다. 젊은층이 많이 찾는 상권일수록 코로나19의 한파가 빗겨갔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남신구 이사는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증가한 상권을 “MZ세대 상권”이라고 표현했다. 남 이사는 “브랜드 경험을 중시하는 리테일 트렌드와 맞물려 MZ세대가 선호하는 상권일수록 매출이 늘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압구정 도산공원 골목 카페에 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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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오후 압구정 도산공원 인근 카페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윤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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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강남 최고 상권으로 꼽히다 젠트리피케이션 영향으로 다른 상권에 밀린 압구정로데오도 MZ세대에 의해 다시 부상했다. 한파에 이어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26일 오후 12시 도산공원 인근 유명 카페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입장 대기는 42개팀에 달했다. 내부는 빈 테이블 없이 북적였고, 오후 3시 30분부터는 메뉴 소진으로 줄 서기 앱을 통한 예약도 중단됐다. 인접한 다른 디저트 카페에도 입장줄이 늘어섰다. 직장인 김형민(26)씨는 “고급진 분위기가 좋아 압구정로데오를 자주 찾는다”며 “음식도 맛있고 서비스도 좋아 돈 쓰는 기분이 난다”고 말했다.

선두에서 상권을 이끈 건 요식업계다. 2017년 외식업체 GFFG에서 수제버거 전문점 다운타우너와 도넛 브랜드 노티드를 열면서부터 도산공원 상권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유동 인구가 점차 증가해 GFFG 매장 외에도 각종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다. 과거 인기를 끈 메인 거리가 아닌 도산공원 인근 식당, 카페 골목 위주로 상권이 재편된 배경이다. 맛집이 받쳐주며 청담동 명품 거리를 찾은 객단가 높은 고객들과 젊은 세대가 자연스레 유입됐다.

룰루레몬, 디어달리아 등 패션·뷰티 브랜드도 압구정로데오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2020년 10월 베이커리 카페 형식으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한 퍼스널케어 브랜드 쿤달도 그중 한 곳이다. 쿤달 관계자는 “당시 고급 레스토랑, 명품, 병원 등 다양한 상권이 압구정에 몰리고 있었는데 저평가 되어 있어 성장가능성이 크다고 봤다”며 “2020년 12월 대비 지난해 12월 매출이 191% 늘었을 정도로 팬데믹 시기에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상권이 살아나며 권리금도 올랐다. 도산공원 인근에 위치한 전통주점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2016년에는 무권리로 입점했을 정도로 상권이 침체돼 있었지만, 지금은 8평 카페 권리금이 1억 2000만원”이라며 “영업시간 제한이 있을 때 외에는 매출이 계속 증가했다”고 말했다.



예술·문화·쇼핑 어우러진 한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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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오픈한 구찌의 국내 두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 [사진 구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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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상권은 더 화려하고 럭셔리하게 발전하고 있다. 꼼데가르송, 비이커, 디젤 등 브랜드의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가 포진해 있는 꼼데가르송길이 대표 상권이다. 뿐만 아니라 동서식품의 맥심플랜트, 현대카드 스토리지, 리움 미술관, 블루스퀘어 등 미술관과 복합 문화 공간까지 있어 예술과 문화, 쇼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명품 브랜드 매장도 들어섰다. 2021년 5월 구찌가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을 오픈했고, 지난해 2월에는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이 세계 최대 규모의 매장을 한남동에 열었다. 꼼데가르송길 뒷골목, 한남오거리 인근에 트렌디한 맛집과 카페도 곳곳에 있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구매력 있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고객들 체험·경험 원해, 매장 수 줄이고 플래그십 스토어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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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남신구 이사


최근 팝업스토어,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는 브랜드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남신구(사진)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이사는 “MZ세대의 니즈를 반영한 것뿐만 아니라 리테일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Q : 트렌드가 바뀐 배경은.

A : “과거 물건을 직접 보러 나가는 게 하나의 여가 활동일 때는 리테일 형태가 다출점 방식으로 100개, 200개 등 많은 매장을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바일 시장이 본격화되며 언제든 모바일로 물건을 보고 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이전부터 많은 브랜드가 오프라인 매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변화를 앞당겼다. 많은 브랜드들이 매장 수를 줄이고 초대형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Q : 플래그십 매장의 목적은.

A : “방문한 고객들이 매장에서 브랜드를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소비는 온라인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체험과 경험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할 수 있다. 고객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한다. 플래그십 매장을 지속하기 어렵다면 팝업스토어라도 열고, 무신사·발란 등 온라인 브랜드가 오프라인으로 나온 이유다.”

Q : 실제 컨설팅 문의도 세분화됐다고.

A :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것 같다. 과거에는 ‘가시성 좋고, 트래픽 많은 상권에 제일 좋은 자리를 찾아 달라’고 했다면 지금은 브랜드마다 다르고 구체적이다. ‘접근성이 떨어지더라도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 드는 장소를 찾고 있다’는 브랜드도 있고, 매장을 줄이고 ‘대형 상권에 초대형 매장을 내고 싶다’는 브랜드도 있다.”

윤혜인 기자 yun.hy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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