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티시’라 명한 광신의 언어 연구
내부자 언어 통한 이분법 구별에
공포·존경 등 감정으로 조종하는
컬트 공동체의 ‘기술’ 분석·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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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티시: 광신의 언어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아르테 | 344쪽 | 2만4000원
광신(狂信)은 왜 일어날까. 1978년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에서는 종교단체 ‘인민사원’의 교주 짐 존스의 지시에 따라 신자 약 900명이 독극물을 나눠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자들은 ‘약속된 땅’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며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려왔다. 불만이 쌓여 폐위될 위기에 몰리자 짐 존스는 신자들에게 ‘혁명적 자살’을 하자고 제안하는 연설을 했다. “우리가 평화로이 살 수 없다면, 평화 속에서 죽어 갑시다. 이 삶을 열흘 더 사는 것보다 죽음이 백만배 낫습니다. 고통은 끝났습니다.”
종교, 사기, 음모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가족을 버리는 광신자의 실제 모습은 예상과 다르다. 지적 수준이 높고 단호한 성격을 지녔으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다. 그런데 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는 비이성적인 선택을 할까.
세뇌가 아니야, 당신은 믿을 준비가 돼 있었다
<컬티시: 광신의 언어학>의 저자 어맨다 몬텔은 미국의 기자, 작가, 언어학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사회주의 코뮨(코뮌·공동체) ‘시나논’에서 보내다 그곳을 나와 신경과학자가 됐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몬텔은 그가 ‘컬티시’라고 부르는 ‘광신의 언어’가 가진 힘을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몬텔은 실제 사건을 취재하고 관계자를 인터뷰해 광신의 언어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현실을 만드는지 이야기한다.
몬텔은 ‘인민사원’ ‘헤븐스 게이트’ ‘3HO’ ‘사이언톨로지’ ‘샴발라’ ‘하나님의 자녀파’ 등 이른바 ‘사이비 종교’에서 시작해 다단계 마케팅 회사를 거쳐 이미 일상에 깊이 침투한 피트니스 클럽,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플루언서까지 살펴보며 광신의 언어를 찾아낸다.
몬텔은 광신적 집단을 ‘세뇌당했다’고 규정하는 행위는 심리적 우월감에 불과하다며 경계한다. 세뇌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간과하며, 검증할 수도 없는 가설이라고 비판한다. 몬텔은 “누군가 ‘세뇌됐다’라고 말하는 순간, 대화는 끝난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탐구할 여지도 사라진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적었다.
몬텔은 절대 믿을 마음이 없는 사람을 강제로 믿게 만드는 세뇌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광신의 언어는 이미 믿을 준비가 된 사람을 믿게 만들 뿐이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집단에 맞춰 바꾸게 한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 세상에서 느끼는 불안과 혼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광신의 언어’
몬텔은 컬트 공동체가 내부자에게 의미, 목적, 소속감을 심어주는 언어의 기술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네 가지 개념을 통해 한 사람이 컬트 공동체에 가입하고 파멸이 뻔히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탈출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 보인다.
‘러브 바밍(Love-bombing)’은 상대에게 ‘나를 깊이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친밀감과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이다. 인민사원의 교주 짐 존스는 대화 상대의 인생에 맞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진보 성향 청년 앞에서는 사회주의자가, 노인 앞에서는 성경에 통달한 사람이 됐다.
‘우리’와 ‘저들’을 구별하는 ‘이분법’은 컬트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다. 사이언톨로지의 창시자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는 신자만이 사용하는 신조어 사전까지 집필했다. 이런 내부자 언어는 기존 단어를 줄여서 만들거나, 기존 단어를 특정한 의미로 바꿔 사용하기도 한다. 공동체가 비밀스럽게 사용하는 내부자 언어는 내부자 스스로 우월하다는 엘리트 의식을 만들고 외부자를 멸시하게 한다. 내부자들은 외부 세계의 언어와 규범에 점차 마음을 닫는다.
특정 단어를 듣기만 해도 공포, 슬픔, 분노, 환희, 존경 등의 감정을 촉발하는 ‘로드된 언어(Loaded language)’도 있다. 내부자 언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서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도자는 내부자 언어를 이용해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조종할 수 있다. ‘애어른(Old soul)’이란 단어는 ‘실제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종교단체 3HO에서는 ‘수차례 환생해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생각을 중단시키고 대화의 여지를 없애는 ‘사고 차단 클리셰(Thought-termination cliche)’는 로드된 언어와 짝을 이루는 심리적 지배 도구이다. 컬트 공동체에 대한 내부자의 질문이나 비판을 사전에 차단한다. “다 신께서 계획하신 거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등의 표현들이다. 종교단체 바깥 일상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비난한 것을 예로 들었다.
열심히 운동하는 당신도 ‘광신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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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피트니스 클럽을 컬트 공동체로 보는 몬텔의 시각이 재미있다. 미국은 21세기를 맞으며 크로스핏, 사이클, 러닝, 요가, 폴 댄싱, 복싱, 주짓수 등 ‘피트니스 스튜디오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몬텔은 미국 밀레니얼세대 청년들이 비싼 의료보건 보험료와 인종·젠더 차별 때문에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피트니스 클럽은 청년층의 교회처럼 타인과 이어지고 공동체를 이루는 장소가 됐다. 피트니스 클럽은 회원들 사이 경쟁을 유도해 더 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갈망하게 한다. 이를테면 운동 그룹이 함께 기록이나 체중을 비교하는 것이다. 멤버십을 연장하게 하려면 여기에 소속감과 자부심을 더해야 한다. 크로스핏 강사들은 군대 교관처럼 전투적인 말투와 운동선수의 단어를 사용한다. 강사들은 자기최면적인 구호를 외치고, 회원들은 이를 복창하며 더 강도 높은 운동에 빠져든다.
피트니스는 가장 강력한 자기계발이다. 회원들은 몸이 변하면, 마음이 변하고 삶이 변한다는 생각으로 일체화된다. 공통적으로 가진 믿음은 수업을 통해 인생이 극적으로 나아지리라는 것이다. 회원들은 강사를 인생이 더 행복해지는 정답을 알고 있는 구루(영적 스승)처럼 느끼게 된다. 몬텔은 “피트니스는 새로운 종교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강사들이 새로운 성직자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적었다.
논리와 직감 포기하지 말아야
몬텔이 모든 공동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람의 존재가 본래부터 외로움을 타고났다고 본다. 자연에서 생존을 위해 집단을 구성한 고대부터 사람은 집단을 통해 행복을 느꼈다. 몬텔은 “우리 모두가 뭔가를 믿는 일이나 어딘가에 참여하는 일을 거부한다고 세상이 나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도한 경계심은 삶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을 망쳐버릴 수 있다”고 적었다.
몬텔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지 않으면 컬트에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와 그 언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몬텔은 “자신의 논리적 사고나 감정적 직감을 포기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만으로도, 고립된 코뮨에서든 억압적인 스타트업 직장에서든 사기꾼 인스타그램 구루 앞에서든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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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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