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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스타트업 키워 고객 만드는 TSMC... 고객 문턱 높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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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TSMC 경쟁력 비교] [3] 모리스 창, 반도체 생태계 만들다

조선일보

세계 3대 AP(스마트폰 두뇌 반도체) 업체로 꼽히는 대만 미디어텍은 원래 대만 2위 파운드리사 UMC의 사내 조직이었다. 컴퓨터 CD 드라이브용 반도체를 설계하다 1997년 분사했고, 대만의 수많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중 하나에 불과했다. 미디어텍은 2010년 전후 스마트폰 확장기를 맞아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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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가 미디어텍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TSMC는 첨단 나노 공정이 개발될 때마다 경쟁 업체(UMC)에서 출발한 미디어텍에 반도체를 만들어 줬다. 수시로 인력을 교류하고 TSMC 연구원들이 달라붙어 칩 설계·생산을 도왔다. ‘TSMC-미디어텍’이 한 팀처럼 뛴 것이다. 그 결과 과거 중저가 AP를 만들던 미디어텍은 지난해 매출 22조원을 올리며 대만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됐다. 미디어텍 창업자 차이 밍 카이 회장은 “파운드리-팹리스라는 이 분업 구조를 만든 모리스 창과 TSMC가 없었다면 지금의 미디어텍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1위 GPU(그래픽 처리 장치) 기업 엔비디아도 스타트업 시절부터 TSMC와 손잡았다.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는 “1997년엔 엔비디아가 직원 100명 정도의 작은 회사라 위탁 생산이 어려웠다”며 “그런데도 모리스는 우리 기술을 설명할 기회를 줬고 여러 차례 회사로 찾아와 최적의 공정을 찾아줬다”고 말했다. 현재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592조원으로 TSMC(589조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세계 CPU(중앙 처리 장치) 2위 업체인 AMD도 1998년부터 TSMC의 고객이었다.

TSMC는 미래 잠재 고객들이 작은 회사일 때부터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이들이 성장하면서 TSMC의 단골 고객이자 핵심 매출원이 됐다. 창업자 모리스 창이 “나의 즐거움 중 하나는 고객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는 새싹부터 고객을 키우고 삼성은 이미 큰 나무만 고객으로 받는다”며 “TSMC는 고객사·협력사들과 한 연합체를 구성하면서 거대한 TSMC 생태계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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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대신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대만 대표로 나섰던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 TSMC 창업자(91·중국명 장중머우)가 2022년 11월 21일(현지시간)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태국에서 대만으로 돌아온 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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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국내 팹리스 A업체 대표는 TSMC 대만 본사 고위 임원을 직접 만났다. 아직 출시 제품·매출 모두 없는 적자 스타트업인데도, TSMC는 A업체에 ‘회사의 기술과 비전을 직접 듣고 싶다’며 시간을 냈다.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스타트업의 위탁 생산 주문은 TSMC 같은 대형 파운드리 업체에도 큰 수익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TSMC는 A업체가 원하는 공정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도록 허가했고, 두 회사는 계약을 체결했다. A업체 대표는 “TSMC에는 전 세계 스타트업들을 심사하는 별도 프로세스가 있다”며 “스타트업의 기술이 훌륭하고 미래가 밝다면, 좋은 가격과 조건으로 첨단 공정을 쓰도록 허락해준다”고 말했다.

TSMC의 국내 협력사·고객들은 ‘TSMC는 친(親)스타트업 기업’이라고 이야기한다. TSMC의 현재 대형 고객들이 과거 스타트업 시절부터 함께 성장해온 파트너였던 만큼, TSMC는 또 다른 잠재 고객을 찾기 위해 스타트업들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태계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또 다른 팹리스 B업체 대표는 “삼성에 물량을 맡기고 싶어도 첨단 공정은 대기업들이 모두 차지한 데다 설계 관련 지원도 거의 없다”며 “반면 TSMC는 견적만 물어봤는데 바로 한국 지사장이 달려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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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A라는 밸류체인 기업들과 뛰는 TSMC

TSMC에는 VCA(Value Chain Alliance·가치 사슬 동맹)라는 이름의 독특한 파트너 기업들이 있다. 전 세계 8곳, 한국에는 한 곳이 있다. 이 회사들은 TSMC에 생산을 맡기려는 팹리스들의 반도체 설계를 돕고, TSMC를 대신해 가격과 물량을 협상하고 주문 의뢰까지 대신해주는 일종의 중간상이자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VCA는 TSMC와 삼성의 접근 방식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이야기한다. 삼성전자에도 DSP(디자인 설루션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팹리스들의 설계와 주문을 돕는 기업들이 있다. 반도체 설계 업체 C사 대표는 “TSMC는 VCA 같은 파트너들에게 회사의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과 생산 원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들이 직접 고객에게 영업을 하도록 전권을 준다”며 “반면 삼성전자는 가격·물량을 모두 직접 결정한다”고 말했다. TSMC는 VCA를 비롯한 여러 기업이 한 생태계를 구성해 원 팀으로 뛰고, 삼성전자는 혼자 뛰는 셈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TSMC가 공개한 IP(설계 자산)·디자인·VCA 등 주요 파트너 기업은 80여 곳에 달하고 작은 기업까지 포함하면 수백 기업이 TSMC의 생태계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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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공정 생태계까지 만드려는 TSMC

TSMC는 반도체 패키징이라고 하는 후공정 분야에서도 거대한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생산 이후 제품 테스트를 하고 고객 입맛에 맞춰 가공·포장(패키징)을 하는 후공정이 새로운 성장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후공정 시장은 2010년 후반부터 매년 평균 10%씩 성장하며 지난해 기준 100조원 규모에 육박한다.

TSMC는 생산 단계뿐 아니라 후공정에서도 자국 협력사들을 키워냈다. 세계 1위 후공정 업체인 대만 ASE그룹을 포함해 세계 10대 후공정 업체 중 6곳(트렌드포스 조사)이 대만 업체다. TSMC는 수주한 물량의 후공정을 ASE를 비롯한 자국 업체에 나눠줬고 대만 후공정 업체들은 TSMC와 함께 기술력과 매출 규모를 키운 것이다. ASE 그룹의 작년 매출은 27조원에 이른다.

TSMC는 해외 기업들과 협업하면서 생태계를 확장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TSMC는 패키징 분야 해외 거점 확보를 위해 일본 쓰쿠바시에 후공정 전문 연구 개발 거점을 짓고 지난해 본격적으로 연구에 착수했다. 일본이 강한 소재·화학 중견 기업 20여 곳과 협업하고, 일본 경제산업성이 전체 투자액 3700억원 중 절반을 지원한다.

[임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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