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창업의 길 40. 프렌들리에이아이
전병곤 프렌들리에이아이 대표가 19일 오후 서울대 컴퓨터연구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했다.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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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2년 신참이지만 AI 업계 기대주
이루다가 똑똑해졌다. 최근 세계적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 오픈AI의 챗GPT엔 감히 따라갈 수 없지만. 2021년 1월 처음 세상에 나온 국산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는 당시 한 달도 못 돼 퇴출됐다. 여성ㆍ인종 차별 발언을 하고, 대화 속에서 다른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드러내는 등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세월을 보내고, 지난해 10월‘이루다2.0’의 정식 버전으로 세상에 돌아왔다. 사용자가 유도하는 불량스럽거나 무례한 질문엔 “이상한 소리하면 니랑 톡안할거임”“기분 나빠”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길게 이어지진 못하지만 앞에서 한 말을 기억하고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2년 사이에 꽤 자란 느낌이다. 이루다 2.0를 내놓은 스타트업 스캐터랩 뒤에 또 다른 인공지능 스타트업이 있는 덕분이다. 생성 AI(Generative AI) 개발 플랫폼 스타트업 프렌들리에이아이가 그 주인공이다. 전병곤(51)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2021년 1월 설립한 프렌들리에이아이는 인공지능 개발 기업들이 AI 관련 기술이 없더라도 클라우드를 이용해서 생성AI를 개발하고 서비스할 수 있도록 AI 모델 학습과 서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캐터랩의 이루다 2.0도 대화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성AI다. 프렌들리에이아이를 통해 초기 버전보다 17배나 큰 모델을 서비스하고 있다.
프렌들리에이아이는 2021년 1월 창업한 스타트업 중에서도 ‘신참’이지만, 인공지능 업계의 ‘기대주’로 인정받고 있다. 생성AI 서빙 관련 보유 기술의 미국 특허 등을 인정받아 창업 11개월만인 2021년 12월 8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끝냈다. 지난해 12월20일 서울대에서 열린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의 혁신창업상 시상식에선 KAIST 총장상을 받았다. 회사의 창업자 겸 대표인 전 교수는 지난 24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ㆍ스위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젊은 과학자들과 오찬’을 할 때 국내 AI 분야를 대표해서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 1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컴퓨터연구소에 자리잡은 프렌들리에이아이를 찾아 전 교수를 만났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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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기업 개발 시간 비용 획기적으로 줄여줘
Q : 프렌들리에이아이는 어떤 기업인가.
A : 일종의 B2B형 인공지능 기업이다. 생성AI를 만들고 사용하는 인공지능 기업이 우리의 고객이다. 우리의 학습 및 서빙 서비스를 쓰면 고객사는 생성AI 개발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AI서빙을 쉽고 저렴하게 할 수 있다. 글과 그림 등의 뛰어난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는 AI를 만들어내려면 기술과 컴퓨팅 자원이 모두 많이 필요하다. 학습해야 하는 매개변수 (패러미터)가 많아지고, 데이터가 증가할수록 개발의 복잡성도 증가한다. 급격하게 증가하는 컴퓨터 자원 비용도 개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프렌들리에이아이는 ‘페리플로우(periflow)’라는 특허 기반 서비스를 통해 고객 기업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스캐터랩처럼 자체적으로 생성AI를 만드는 회사가 대표적인 고객이다. 대기업과도 협업하고 있다. 챗GPT와 같은 모델도 저비용으로 만들고 서비스할 수 있게 해준다.
Q : 이루다도 챗GPT처럼 될 수 있다는 얘긴가.
A : 둘은 목적과 목표가 다르다. 이루다는 친구같이 말을 하는 AI라는 뾰족한 목표를 가지고 개발된 특화 AI이다. 반면 챗GPT는 다양한 컨텍스트에서 다양한 종류의 문답을 다양한 수준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범용 AI다. 특화된 AI는 범용 AI보다 훨씬 더 적은 데이터와 더 작은 모델로도 만들 수 있다. 이루다 2.0 모델의 패러미터는 23억개 정도이고, 챗GPT는 1750억개다. 물론 특화된 AI도 더 많고 더 좋은 데이터로 학습하면 성능이 더 좋아진다.
지난해 10월 너티 앱으로 컴백한 스캐터랩의 AI 챗봇 이루다2.0 [사진 스캐터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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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처리 능력, 세계적으로 봐도 탁월"
Q : 프렌들리에이아이를 이해하려면 생성AI와 초거대AI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A : 생성AI는 사용자가 요구하는 대로 원하는 결과물을 생산해 내는 AI를 말한다. 명령어를 넣으면 그림을 그려내는 ‘스테이블 디퓨전’, 전문지식도 대화로 척척 알려 주는 챗GPT가 모두 생성 AI다. 초거대AI란 패러미터가 많은, 즉 모델이 큰 AI를 말한다.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500억 개 이상의 패러미터를 가진 AI를 초거대 AI라고 한다. 패러미터가 많을수록 생성AI가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전 교수가 동영상 그래프 하나를 보여줬다. X축은 시간, Y축은 초당 정보 처리량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보 처리량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녹색과 노란색 선이 같이 시작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노란색 선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녹색선은 Y축 위로 치솟아 올랐다. 전 교수는 “녹색은 프렌들리에이아이의 기술, 노란색 선은 우리 기술을 제외한 가장 좋은 기술”이라며“전세계적으로 봐도 우리의 AI 처리 능력이 탁월함을 보여주는 그래프”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영 리더와의 대화'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이 프렌들리에이아이 대표인 전병곤 서울대 교수다.[사진 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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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진출하는 게 올해 가장 큰 숙제
Q : 이 정도 독보적 기술력이면 굳이 국내에 있을 이유가 있나. 향후 계획은.
A : 미국에 진출하는 게 올해 가장 큰 숙제다. 미국을 중심으로 생성AI 기업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우리의 잠재 고객이다. 미국에 진출하려면 자원이 더 필요하다. 올해 여름부터 추가 투자 유치를 모임을 자주 열 계획이다.
Q : 어떻게 그런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나.
A : 생성AI에 특화된 AI모델 개발 플랫폼은 전세계에서 프렌들리에이아이의 페리플로우가 유일하다. 프렌들리에이아이 연구팀은 그간 큰 규모의 모델을 학습하고 서빙하는 기술들을 연구해왔다. 이런 연구 개발의 지식이 축적되어 지금의 페리플로우가 됐다. 현재 프렌들리에이아이 직원 21명 중 AI연구개발 인력이 19명이다. 내 제자들이 많다. 회사가 서울대 안에 있어 우수 AI 인재를 유치하는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
전 교수의 연구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2020년 세계 최초로 경량화와 병렬화를 통한 세계 최고 성능의 GPU 추론 엔진을 개발했고, 2019년에도 세계 최초로 희소성을 고려한 자동분산 학습과 자동 심볼릭 수행을 위한 고속학습의 연구성과를 거뒀다. 구글과 아마존ㆍ페이스북ㆍ마이크로소프트에서 다수의 연구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병곤 프렌들리에이아이 대표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대 컴퓨터연구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했다.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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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본사 이전하면 나스닥 목표
Q : 이 정도 기술력이면 구글 같은 곳에서 인수하려고 하지 않을까.
A : 그것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우리의 기술이 정말 꼭 필요하다면 인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Q : 상장 계획도 있나.
A : 우리 회사의 전략은 열려있다. 우리 기술을 더 많은 기업이 이용하게 하는 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 중 하나다. 이를 위해서 상장이 더 중요한지 아니면 인수ㆍ합병(M&A)이 더 좋을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Q : 만약 상장을 한다면 그게 나스닥인가 코스닥인가.
A : 본사가 어디냐에 따라 결정될 거다. 미국으로 본사가 이전되면 나스닥 상장으로 갈 수도 있다.
전병곤 프렌들리에이아이 대표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대 컴퓨터연구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했다.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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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로 끝낼 게 아니라 직접 제품 만들어 보자"
전 교수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컴퓨터공학으로 각각 석ㆍ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인텔연구소와 야후ㆍ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6년간 연구원을 지내다 2013년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Q : MS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했으면 연봉도 상당했겠다. 왜 굳이 박봉의 모국 교수로 변신했나.
A : 2012~2013년에 MS에서 일할 때 연봉이 3억~4억원쯤 됐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기준으론 10억원쯤 되는 대우였다. 서울대로 오니 연봉이 1억원 아래로 뚝 떨어졌다. 미국에 있을 때 연구도 재미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아 생활에 상당히 만족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세계적인 연구그룹을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한국 학생의 우수성을 익히 경험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를 택했다.
Q : 그렇게 연구를 하다 돌연 창업을 했다.
A : 연구를 진행하면서 계속 관심이 가는 문제가 있었다. GPT3 같은 모델은 수행하는 계산이 너무 복잡해 시간도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걸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연구를 하게 됐는데, 이게 그냥 연구로 끝낼 게 아니라, 제품으로 만들어 기업에 제공하면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국 스탠퍼드대에 있을 때 경험했던 창업 열풍에 영향을 받았을 거 같은데, 나도 어느 시점에는 스타트업을 한 번 해보고 싶은 그런 꿈도 있었다. 그 두 가지가 잘 맞아서 창업을 하게 됐다.
Q : 과학자와 기업가는 다르지 않나. 창업하면, 교수로서 연구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나.
A : 매우 다르다. 연구를 잘한다고 경영을 잘하는 건 전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경영하는 회사는 연구 방향과 상당이 잘 맞다. 관심있는 분야로 회사를 세웠고, 이쪽으로 연구도 계속 하고 있다. 연구와 스타트업이 서로 도움을 준다. 물론 예전보다 훨씬 바빠진 측면은 있다. 굳이 희생된 부분이 있다면, 저녁과 주말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 들었다.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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