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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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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현장 급습했더니…유명 교회 수도원이 관리하는 곳? [사색(史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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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성지로 향하고자 하는 의지는 몰아치는 비바람에 희미해졌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에는 녹이 슬었습니다. 지쳐있던 그의 눈에 들어 온 건 한 교회의 수도원. 추운 몸을 녹일 방이 절실했고, 주린 배를 채울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요. 마치 하나님이 길 잃은 양에게 빛을 내린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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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윈체스터 대성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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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안고 들어간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속살이 훤히 비치는 여성이 요염한 표정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잘 못 들어왔나 싶어, 여행자는 다시 현관으로 나갔지요. 눈을 비비고 다시 건물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그곳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상징인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공연히 매춘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장소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수도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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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는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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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중세 유럽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통제하는, 소위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 유럽에서 어떻게 수도원에서 공공연한 성매매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일까요. 현대 사회에서 일어났다면, 모든 언론이 이를 사회면 머리기사로 다루겠지만, 당시 상황은 달랐습니다. ‘성’(性)이라는 관념은 늘 그 당시 사회의 문화·경제·정치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됐기 때문입니다. ‘매춘’을 둘러싼 생각은 고대와 중세 그리고 현대에 끊임없이 변화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주 사색 역시 낚시성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주제는 매춘입니다.

고대 성매매는 사원에서 이뤄졌다...‘신성 매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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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유물에는 매춘을 암시하는 작품이 유독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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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에 대한 기록은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에서부터 발견됩니다. 바로 수메르 였습니다. 기원전 2400년, 수메르 우르크에서는 사제들이 매춘 업소를 운영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그것도 사원에서였습니다. 수메르 문명의 이야기가 모아져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에 한 구절입니다.

“유녀는 가슴을 풀어 헤치고 음부를 열었다”.
이 유녀들은 사원에 거주하면서 환대 매춘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주로 여행자나 순례자를 대상으로 성적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대에는 성(聖)스러움과 성(性)스러움이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성의 생식능력은 자연이 준 선물로서 주술적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전에서 신이 주신 능력을 찬양하면서 성적 관계를 맺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학자들이 이 당시 사원에서 이뤄진 매춘을 ‘신성매춘’(Sacred Prostitution)이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저명한 수메르 학자 사무엘 노아 크라메르는 “수메르의 왕들이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인안나 사원에서 성교하면서 권위를 과시했다”고 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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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의 사랑과 전쟁의 신 인안나가 묘사된 항아리. 인안나가 모셔진 사원에서는 신성매춘이란 이름의 성행위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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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매춘에서 ‘포르노’가 나왔다
우리에게 친숙한 그리스 사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린도의 아프로디테의 신전에서도 매춘행위가 이뤄졌습니다. 그곳 신전의 유녀들은 ‘헤타이라’로 불렸습니다. 그들은 신전에서 몸을 팔고 그 돈을 아프로디테에게 봉헌했지요. 의복을 바르게 입었고, 언행이 고상했기에 저잣거리의 매춘여성들과는 그 급이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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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남부 고린도 지역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소속 유녀들은 성행위를 벌였다. 그 돈의 일부를 아프로디테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서였다. 학자들은 이를 ‘신성매춘’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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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는 그리스 사내들이 자주 찾는 매춘여성도 있었습니다. 고급 유녀인 헤타이라와 구분짓기 위해 이들은 ‘포르노이’(Pornoi)로 불렸습니다. 포르노이와 그들의 단골손님들의 생활, 습관, 행동을 기록한 기록물이 바로 ‘포르노그래피’였습니다. 우리말로 풀면 일종의 성매매 장부인 셈이지요. 성관계 영상과 이미지를 뜻하는 ‘포르노’가 바로 여기서 파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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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내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발견된 유물 거울에서 신성매춘 장면이 묘사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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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를 계승한 고대 로마는 제국이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그들은 전쟁을 벌였고, 전 유럽을 자신의 앞마당으로 만들었지요. 브리튼 섬에서부터 터키 지역까지 곳곳에서 노예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자연스레 여성들을 성노예로 팔기 위한 시장이 형성됩니다. 노예상들은 여자들이 잘 보이는 곳에 전시를 했습니다. ‘팔기 위해 전시하다’는 뜻의 라틴어가 프로스티투테(prostitute)가 매춘부를 의미하는 ‘프로스티튜트’로 변용된 배경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매춘의 역사가 현대 언어에까지 그 흔적을 남긴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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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인들은 정복지 여성들을 노예 시장에서 전시해 놓고 판매했다. 전시하다는 뜻의 라틴어 prostitute가 성매매 여성을 일컫는 말로 변용된 배경이다. 그림은 프랑스 화가 장 레온 제롬의 1884년 작품 ‘slave market in 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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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는 교회가 포주였다
중세 유럽에서 매춘의 변곡점입니다. 기독교가 중세인의 삶을 억죄기 시작해서였습니다. 그들은 매춘을 ‘악’으로 여겼습니다. 일반인 여성과 유녀를 구별짓기 위해 그들에게 특별한 옷을 입히기도 했지요. 영국 브리스톨 유녀들은 줄무늬 망토를 입어야 했고,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는 줄무늬 후드를 입혔습니다. 왜 하필 스트라이프냐고요. 구약성경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두 직물로 직조한 옷을 네 몸에 걸치지 말라”(레위기 19:19). 여러 직물로 만든 줄무늬 옷은 그야말로 ‘악마의 옷’이었죠. 주변인인 성매매 여성에게 누구보다 잘 어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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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에는 매춘 여성들은 특정 복장을 입기를 강요당했다. 사진 속 흰 모자를 쓴 여성들은 모두 성매매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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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세가 매춘을 무조건 배척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성매매 여성이 사라질 경우, ‘정숙한 여성’들이 해를 당할 수 있다면서 ‘필요악’으로 여겼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부로 통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필요악으로서 성매매’를 옹호한 사람입니다. 국가와 교회는 결국 성매매를 배척하기보다는 관리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프랑스 파리, 툴르즈, 영국 런던 등 유럽 주요 도시에는 성매매 집결지인 ‘유곽’이 자리를 잡게 되지요. 모두 국가와 교회가 관리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성매매가 만연하지 않게 하려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국가와 교회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1161년 영국 윈체스터 주교는 매춘업을 허가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기도 했습니다. 주교가 일종의 성매매 허가 권한을 얻게 된 것입니다. 물론 성매매 수익의 일부는 교회로 갔을테지요. 매춘부를 뜻하는 속어인 윈체스터 구스(거위)의 어원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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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본스 묘지에 잠든 성매매 여성이 그려진 모습. 그들은 ‘윈체스터 거위’로 불렸기에, 그림에도 거위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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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지역 신부와 수녀들도 자신들의 건물을 성매매 장소로 대여하기도 했습니다. 수익성에 모두가 눈이 먼 시대였습니다. 영국 전역에서 교회 내부에 매춘이 만연한 탓에 케임브리지 대학 총장의 임무 중 하나는 매춘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당시 대학은 교회의 부설기관이었습니다) 14세기 스웨덴의 성 브리기타 수녀는 “수녀원이 신성하기는커녕 유곽에 가깝다”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관리를 받은 유녀들은 죽어서까지 ‘이방인’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윈체스터 지역의 가톨릭 신부들은 유녀들에 대한 장례미사를 거절합니다. 미사를 받지 못한다는 건 “지옥에나 떨어져라”라는 저주나 다름 없었지요. 유녀들의 시신은 (동정심 가득한) 시민들에 의해 한 곳에 모아졌습니다. 지금도 런던 크로스 본즈라는 지역에는 중세시대부터 근세까지 장례미사를 거절당한 유녀들의 집단 묘지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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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윈체스터 크로즈본즈에 세워진 위로비. 성매매 여성들이 잠들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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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본지 묘지에 시민들이 추모 리본을 달아놓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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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독과 종교개혁...매춘에 타격을 가하다
날개를 단 매춘에도 위기는 찾아옵니다. 성병 ‘매독’의 등장 때문입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매독이 처음으로 유럽 땅에 발을 디딥니다. (신대륙에서 온 건지는 유럽에서 자연발생한 건지는 아직도 학설이 분분합니다)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침략하면서 ‘이탈리아전쟁’ 까지 발발하자 매독은 맹위를 떨칩니다. 자연스레 난삽한 성교가 이뤄지는 성매매집결지가 매독의 온상으로 비난받게 됩니다. 1546년에 런던에서, 1560년에 파리에서 공창이 폐지됩니다. 16세기 독일의 헬레나 로우볼딘이라는 매춘여성은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돼 손가락이 잘리고 거리에서 추방까지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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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독의 등장으로 매춘의 확산이 저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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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방종한 성생활을 비판한 종교개혁이 유럽에 퍼지면서 매춘을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루터는 “모두가 정화되고 있는 이때 우리 기독교도가 사회 한복판에 유곽을 일상적으로 용인하는 건 슬픈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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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을 비판하는 95개조 논제를 발표해 종교개혁을 이끈다. 그는 만연한 매춘에도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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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 매춘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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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으로 섹스인형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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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불꽃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성적 욕망은 쉬이 멈추지 않았지요. 의학의 발전으로 대부분의 성병이 치료가 가능해진 것도 매춘의 수명을 늘렸습니다.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매춘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섹스로봇과 섹스인형까지 등장합니다. 신의 공간에서 시작된 매춘이 이제는 공상과학 영역까지 퍼진 셈입니다. 100년 뒤 매춘은 어떤 모습일까요.

<네줄요약>

ㅇ고대에서는 종교 사원에서 매춘했다.

ㅇ중세 유럽에서는 교회에서도 매춘했다.

ㅇ매독과 종교개혁으로 매춘이 주춤해졌다.

ㅇ이젠 인형, 로봇이랑 매춘도 생길 거 같다.

<참고자료>

ㅇ매춘의 역사(1992년), 번 벌로·보니 벌로 지음, 까치 펴냄

ㅇ풍속의 역사(1988년),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까치 펴냄

ㅇ중세의 소외집단(1999년), 제프리 리처즈 지음, 느티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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