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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아이들 뛰놀던 학교엔 실버주택과 노인대학…방치된 폐교도 수두룩 [4500km 폐교로드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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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은군 속리산 기슭에 있던 속리중학교. 보은산업단지에서 20km가량 떨어진 이 학교는 2011년 원남중과 속리중‧내북중 세 학교가 속리산중으로 통폐합되면서 문을 닫았다. 지난 11월 찾아간 속리중은 학교 지주석에 현판은 남아 있었지만 교문과 건물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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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은군에 있는 옛 속리중. 학교 건물은 해체됐고, 부지엔 공공실버주택을 짓는다.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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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라도 편히 살면 좋지 않겠나”



대신, 폐교 부지에선 터 닦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공실버주택을 짓기 위해서다. 공공실버주택은 홀몸노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고령자 복지주택 보급 사업 중 하나다. 보은군청 관계자는 “약 170억원을 들여 2024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속리중 인근에서 20여 분만에 처음 만난 한 주민은 “원래 학교로 되돌릴 수도 없고 젊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로 올 일도 없는데, 노인들이라도 편히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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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대학으로 바뀐 충남 부여군 옛 인세초.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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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인세초, 폐교 후 노인대학으로 활용



초등학교가 노인대학으로 바뀐 곳도 있다. 충남 부여군 세도면 귀덕리에 있는 옛 인세초. 1951년 개교한 이 학교는 약 5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2018년 폐교했다. 폐교 당시 전교생은 21명, 그해 졸업생은 6명이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찾아간 학교 정문엔 ‘세도노인대학’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이날은 문을 닫았지만 매주 목요일 부여에 거주하는 노인 백여 명이 찾는다고 한다. 운동장은 농촌 체험 캠핑장으로 활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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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폐교한 부여 인세초는 노인대학과 농촌 체험 캠핌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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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인근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학교가 사라지고 노인대학으로 바뀌니 속상하지만 어쩌겠느냐”며 “귀덕리엔 초등학생이 한 명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1930년생이라고 밝힌 한 노인 역시 “임씨 집장촌인 여기 귀덕리와 옆 마을 청포리, 가회리에 애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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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폐교한 전북 고창군 대산면 대성고.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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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를 놀리고 있으니 돈이 썩어났다고 해”



폐교가 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면 그나마 낫다. 폐교 후 방치된 곳이 적지 않아서다. 전북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옛 대성고(2004년 폐교) 앞에서 만난 60대 노인은 “저 큰 건물과 땅을 십몇 년째 놀리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돈이 썩어났다고 혀를 찬다”고 말했다. ‘청소년 단체 놀이 체험장’으로 쓰인다는 전남교육청 설명과는 달리 운동장엔 주민들이 말려 놓은 홍고추가 널려 있었고, 운동장은 수풀이 가득했다. 건물 역시 굳게 잠겨 있었다. 마을 주민은 “아주 가끔 영화나 드라마 촬영할 때 쓰는 것 빼곤 저렇게 방치돼 있다”며 “가뜩이나 썰렁한 마을이 저 학교 때문에 더 을씨년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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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폐교 이후 방치된 경남 산청군 산청초 차황분교 내부 모습.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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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차황면 산청초 차황분교 사정도 비슷했다. 이 학교는 산청군 소재 산청중(산청읍), 생초중(생초면), 경호중(금서면)이 통폐합되면서 2018년 문을 닫았다. 본지가 찾은 날 학교 운동장 한쪽에선 노인 4명이 게이트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동장 절반은 어른 키 절반만큼 수풀이 우거졌고, 건물 내부는 깨진 유리창과 부서진 집기가 가득했다. 폐교 후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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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후 25년간 버려진 전북 진안군 주천면 구봉초.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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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있던 구봉초는 아예 25년 동안 버려진 폐교다. 운동장은 잡풀이 우거져 걷기 힘들 정도였다. 학교 건물은 흉가처럼 보였고, 녹슨 세종대왕상과 이승복상만이 이곳이 학교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구봉초 인근에서 만난 한 70대 노인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어릴 적 다니던 학교였는데, 지금은 쳐다보기도 싫은 곳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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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선 폐교 후 방치된 학교가 수두룩다. 왼쪽은 전남 고흥군 나로고등학교(2014년 폐교), 오른쪽은 전북 정읍시 관청초(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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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 폐교 후 방치된 학교 수두룩



폐교 후 방치된 학교는 지방에선 오랜 골칫거리다. 나로우주센터에서 7km 떨어진 전남 고흥군 나로고등학교(2014년 폐교)를 비롯해 전북 임실군 관촌동초(1991년), 전북 정읍 고부여중(2007년), 전남 함평군 영창초(2009년), 경북 의성군 가음중(2017년), 충남 청양 장평중(2020년) 등 본지가 찾은 폐교 상당수가 방치된 채 남아 있었다. 1992년 폐교된 보성초가 있는 경북 군위군 사리리에서 만난 한 노인은 “학교가 망하고 마을도 다 망했다”며 “저 학교처럼 우리 마을에도 빈집이 한두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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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후 방치된 충남 청양군 장평중(왼쪽)과 경남 의성군 가음중. 각각 2020년과 2017년 폐교했다.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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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활용 폐교 351곳, “활용한다는 학교도 사실상 방치”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 미활용 폐교는 351곳이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는 “매각 완료됐거나 활용 중이라고 집계된 폐교 중 상당수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며 “아무도 찾지 않는 지역 폐교를 매각하기도 어렵지만, 매각돼도 제대로 활용되는 곳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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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군에 있던 청양여자정보고는 폐교 후 13년 만에 사회적 경제 혁신타운 건립을 위해 건물이 해체됐다.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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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중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도 적지 않다. 충남 청양에 있는 청양여자정보고(2009년 폐교)는 충남 사회적경제 혁신타운 건립을 위해 지난해 건물이 해체됐다. 부지 앞 식당 주인은 “이걸 한다, 저걸 한다며 10년 넘게 방치됐었는데 막상 사라지니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충남 부여군에 있던 임주초(1995년 폐교), 경북 영덕군에 있는 창수초 오촌분교 역시 지금은 흔적도 없다. 임주초 앞에서 만난 주민은 “폐교 후엔 그나마 공장으로 쓰였는데 공장이 망하면서 건물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보은·부여·고창·산청·진안=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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