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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악마가 된 '곰돌이 푸'…'저작권 우리'에서 해방된 할리우드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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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작 대거 저작권 우리 탈출…새 변형 저작물 홍수



동심을 좇아 숲을 찾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곰과 돼지, 귀여운 ‘곰돌이 푸’와 ‘피글릿’이 잔인하고 피에 굶주린 악마가 된 실사 영화 ‘위니 더 푸, 피와 꿀(Winnie The Pooh: Blood And Honey)’이 다음 달 개봉할 예정이다. 국내 개봉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고편의 잔인함으로 볼 때 어린이들은 볼 수 없는 성인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귀여운 새끼 곰과 돼지가 나오는 어린이 만화 영화 ‘곰돌이 푸’가 공포영화로 나타난 것은 영국 작가 밀른(A. A. Milne)과 삽화가 셰퍼드(E. H. Shepard)의 원작소설 원작 소설 ‘위니-더-푸(Winnie-The-Pooh)’의 저작권이 지난 2021년에 만료되고, 작년 1월부터 공공영역에 나왔기 때문이다. 공표된 1926년부터 95년이 경과한 만큼 이제 디즈니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곰돌이 푸’를 활용해 얼마든지 상업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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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사슴 밤비’와 이를 소재로 새로 만든 영화 캐릭터

지난해 1월에는 미국의 통신회사 ‘민트 모바일(Mint Mobile)’이 ‘곰돌이 푸’의 저작권 보호기간 만료와 함께 ‘찡그린 푸(Winnie the Screwed)’라는 동영상 광고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비싼 통신요금에 짜증난 새끼 곰이 탁자를 들이 받으며 짜증을 낸다는 내용으로, 통신 요금이 불만인 사람은 민트 모바일 서비스에 가입하라는 내용이다.

‘곰돌이 푸’ 외에도 ‘아기 사슴 밤비(Bambi)’와 어니스트 헤밍웨이(Earnest Hemingway)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The Sun Also Rises)’의 저작권 보호 기간도 2021년에 끝났다.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발간된 지 95년이 지난 2020년 저작권이 만료됐다.

1920년대에 출간된 영화나 음악, 소설 등에 대한 저작권 보호기간이 대거 만료되면서 이를 토대로 한 새로운 창작물들도 홍수를 이루고 있다. ‘곰돌이 푸’ 외에도 ‘아기사슴 밤비’를 토대로 한 공포영화, 어린 영웅 ‘피터 팬(Peter Pan)’을 소재로 한 새로운 영화도 예고됐다.

특히 내년에는 ‘미키 마우스(Mickey Mouse)’가 데뷔한 월트 디즈니의 만화 영화 ‘증기선 윌리(Steam Boat Willie)’의 저작권이 만료된다. 월드 디즈니(Walt Disney)와 어브 아이웍스(Ub Iwerks)가 공동으로 창작한 미키 마우스는 1928년 개봉 후 가장 성공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로 연간 50억 달러의 돈을 벌어들인 미키 마우스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28년에서 95년까지” 수명 연장…’미키 마우스 법’이 된 미국의 저작권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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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기선 윌리’에서 처음 등장한 원조 미키 마우스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은 등록하지 않아도 저작권이 부여돼,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은 창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저작권은 저작자가 생존한 기간과 사망한 후 70년 동안 보호된다. 저작자가 불명확한 저작물, 업무상 저작물, 영상저작물은 공표 후 70년 동안 저작권이 인정된다.

미국에서도 저작권은 저작자의 생존 기간과 사후 70년 동안 보호된다. 업무상 저작물(work for hire)이나 저작자가 불명확할 경우 공표 후 95년 또는 창작 후 120년 중 먼저 도래하는 기간까지 보장돼, 우리나라보다 보호기간이 길다.

미국에서의 저작권 보호기간은 처음에는 최대 28년이었다. 1790년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대통령 때 만들어진 미국의 저작권법(The Copyright Act of 1790)은 저작물 등록 후 14년 동안 1차로 저작권을 보호하고, 첫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뒤 저작자가 살아 있을 경우 14년 동안 한번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작권 보호대상도 저작물로 등록된 책, 지도, 도표로 음악은 책으로 등록해 보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법의 효시로 1710년 만들어진 영국의 앤 여왕법(The Statute of Anne)을 사실상 그대로 차용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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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조 ‘미키 마우스’와 현대적으로 변형된 ‘미키 마우스’

이후 미국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은 지속적으로 연장돼 왔다. 저작권법이 제정된 지 40년이 되는 1831년에는 첫 번째 보호기간을 14년에서 28년으로 연장해 총 보호기간이 42년으로 늘어났고, 1909년에는 두 번째 보호 기간도 28년으로 연장해 전체 저작권 보호기간은 56년으로 길어졌다.

현대적인 의미의 저작권법이 시행된 것은 1978년부터이다. 1976년 제정돼 1978년 시행된 1976년 미국 저작권법(The Copyright Act of 1976)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의 생존 기간과 사후 50년으로 규정하고, 업무상 저작물이나 저작자가 명확하지 않은 저작물은 공표 후 75년까지 보호하도록 개정했다.

20년 뒤인 1998년 시행된 미국의 저작권법(일명 소니 보노법: Sonny Bono Act)에서는 저작권 보호 기간을 또 20년 연장했다. 저작자 사후 70년, 저작물 공표 후 95년 또는 창작 후 120년 가운데 먼저 도래하는 시기까지 저작권을 보호하도록 한 것이다. 35세에 작품을 만들어 70세까지 산 사람의 경우 살아생전 35년에 사후 70년까지 105년 동안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있게 것이다.

미국에서 저작권 보호 기간이 1790년 28년에서 1998년 사후 70년으로 확대된 것은 저작자들의 수명이 연장됨에 따른 조치라는 해석도 있지만, 무엇보다 창작자 또는 저작권 보유주체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저작권 보호기간이 사후 50년으로 확대된 1976년과 사후 70년으로 확대된 1998년 저작권법 개정은 만화영화 캐릭터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을 보유한 디즈니사의 강력한 로비가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이 만료될 시기만 되면 다시 보호기간이 연장됐다고 해서 미국의 저작권법은 미키 마우스 보호법(Mickey Mouse Protection Act)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998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미키 마우스의 첫 작품 ‘증기선 윌리’가 개봉한 지 75년 째인 2003년 이후에도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이 20년 더 유지되도록 한 것을 비꼬는 단어이다.

“저작권 만료돼도 무단 사용 안 돼요”…캐릭터 상표화 작전



미국의 저작권법이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을 연장하는 법으로 통용되기도 했지만,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 시효는 1928년 공표된 지 95년이 되는 2023년에서 더 이상 연장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법을 둘러싼 헤게모니가 이제 저작권자에서 저작물 이용자들에게 많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 저작권은 창작자나 출판사, 음반회사, 영화회사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고, 개인들의 저작권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창작물을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을 이용해 쉽게 복제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일반 이용자들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크게 확대됐고, 저작물을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고 수익을 올리는 구글이나 유튜브, 애플 같은 초대형 기업들이 탄생하면서 저작권 이용료를 내야 하는 일반 대중들도 강력한 로비력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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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타잔’, ‘백설공주’, ‘알라딘’

물론 원 저작물의 저작권이 만료됐다고 해서, 이를 원작으로 다시 만든 이야기나 영화, 캐릭터의 저작권도 함께 만료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캐릭터라도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만큼 캐릭터마다 저작권 만료 시기는 달라진다. 캐릭터를 특정 상표로 등록할 경우, 또 다른 권리가 발생한다.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이 1865년 출간한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의 경우 이미 저작권이 만료돼 공중에 헌납 됐지만, 디즈니가 이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나 캐릭터들은 1951년에 제작돼 저작권이 2046년까지 보호된다. ‘오즈의 마법사’, ‘백설공주’, ‘신데렐라’, ‘알라딘’ 등도 이야기 원작은 모두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있어 무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디즈니가 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나 캐릭터들은 아직 저작권이 살아 있다.

‘곰돌이 푸’의 경우 1926년 처음 나온 캐릭터는 흑백이었지만, 빨간 티셔츠에 노란 배를 드러낸 모습은 1966년에 나왔다. 미키 마우스도 1928년 ‘증기선 윌리’에 나오는 모습은 컬러가 아닌 흑백이었고, 하얀 장갑도 끼지 않았다. 새로운 모습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그것이 공포된 이후부터 95년 동안 저작권이 보호된다. 배트맨(Batman)의 저작권은 2034년 만료되지만, 배트맨이 타고 다니는 검은색 배트모빌(Batmobile)은 2037년까지 보호된다.

원 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을 저작권법상 2차적저작물(derivative works)이라 한다. 2차적저작물의 작성 권한은 원저작물의 저작자가 가지는 것이 원칙이다. 저작권이 만료된 곰돌이 푸와 미키 마우스 캐릭터 및 원작의 스토리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원작을 기반으로 작성된 2차적저작물에 대해서는 원저작자의 이용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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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나 로고, 엠블럼 등은 상표로 등록하면 영구 보호도 가능하다. 상표권 보호시효는 10년이지만, 10년마다 다시 등록하면 권리가 계속 연장된다. 1912년 출간된 ‘유인원 타잔(Tarzan of The Apes)’의 경우 이미 저작권은 만료됐지만, 타잔을 소재로 한 카지노나 게임 상품 등의 상표로 등록돼 이를 이용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미키 마우스 같은 캐릭터들은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독특한 식별력을 갖는 로고나 브랜드, 휘장 같은 것으로 하나의 상표로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년부터 저작권이 만료되는 미키 마우스도 디즈니사가 여러 상품의 상표로 등록한 만큼, 상품의 식별 표지로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저작권이 만료되는 할리우드의 영화나 캐릭터 등에 대해 어디까지 권리를 인정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다. 저작권의 취지가 창작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도록 해 창작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있지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은 이미 저작권이 만료된 이야기나 전설, 설화 등을 토대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이들만큼 다른 작품을 모방하는데 재능을 발휘해 온 사람들도 없다.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슈퍼맨은 2034년, 배트맨은 2035년, 원더우먼은 2037년 공중에 헌납 돼 공공영역으로 나온다.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경제적 이익을 얻는 데 성공한 영화나 노래 등이 대거 저작권이 만료되면 될수록, 일반 대중이 이를 얼마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지 공정사용(fair use)에 대한 논란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 답은 결국 개인의 사적인 재산권과 공공의 이익을 어느 정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최선인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용철 기자(yc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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