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짧은 글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알고보니 기고 제목…헤럴드경제에 보내와
“고은, 재판땐 변호사, 지금은 출판사 뒤 숨어”
최영미 시인. [연합] |
[헤럴드경제=이윤미 선임기자] 피해자와 독자에게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시집과 대화집을 출간하고 슬그머니 복귀한 고은 시인의 행동에 최영미 시인이 12일 페이스북에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이란 짧은 글을 올렸다.
독자들은 최 시인의 이 짧은 멘트를 심경을 담은 압축된 표현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는 그가 쓰고자 하는 긴 글의 제목이었다.
최영미 시인이 13일 헤럴드경제에 이번 사태에 참담한 심경을 담은, 같은 제목의 기고를 보내왔다.
최 시인은 기고에서 성추행 고발 이후 지난 5년을 고은 시인이 “5번의 가을을 보내는 동안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한 데 대해 끔찍함과 허망한 마음을 드러냈다.
고은 시인이 최 시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 2심 모두 승소한 최 시인은 “나는 두 번의 가을을 보내며 고통의 시간을 살았다.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인데도 진실만으로는 부족했다. 진실을 증명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가족과 부인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는 고은의 발언에 충격을 느낀다고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 뒤에 숨더니 이제는 출판사 뒤에 숨어 현란한 말의 잔치를 벌이는 그가 나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최 시인은 고은 시인의 소장에는 그간의 경력과 활동이 길게 열거돼 있었는데 자신이 싸워야 할 상대가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거대 네트워크, 문단 권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고은 시인은 단 한 번도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았고 “당사자 신문 신청에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핑계를 대며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기한 소송인데 법정에 나올 배짱도 없는 비겁한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란 말인가”고 직격했다.
최 시인은 또 고은 시인이 등단 65주년 시집 ‘무의 노래’에 붙인 평론가 김우창의 글에 대해서도 “아름답고 모호한 해설”이라고 꼬집었다.
끝으로 최 시인은 “내가 경제적으로 가난해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는 원고 고은의 거지 같은 주장을 반박하려 세무서에 가서 지난 10년간 소득금액증명원을 떼며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다시는 그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없을 줄 알았다”며 “권력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아래는 최영미 시인이 보내온 글,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전문이다.
〈최영미 시인의 '위선을 실천하는 문학' 전문〉
지난 월요일 아침부터 고은 시인의 문단 복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문자와 이메일이 쏟아졌다. 등단 65주년 기념 시집과 대담집을 출간하며 “5번의 가을을 보내는 동안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고은 시인은 지난 5년을 회고했다고 한다. 고은은 2018년 여름 나를 상대로 뻔뻔스럽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고, 1, 2심에서 내가 모두 승소하였다. 원고 고은의 대법원 상고 포기로 나의 승소가 확정되었으나, 2019년 겨울에 재판이 끝나기까지 나는 두 번의 가을을 보내며 고통의 시간을 살았다.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진실만으로는 부족했다. 진실을 증명해야 했다.
“가족과 부인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는 고은의 발언에 충격과 참담함을 느낀다. 젊은 여성에게 치욕적인 추행을 하여도 성관계를 맺지 않았으면 가족과 부인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성인식이란 말인가?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 뒤에 숨더니 이제는 출판사 뒤에 숨어 현란한 말의 잔치를 벌이는 그가 나는 두렵지 않다.
고은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시인인지 그간의 경력과 활동을 소장에 길게 열거하였다. 소장을 읽으며 나는 내가 싸워야 할 상대가 원고 고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거대한 네트워크, 그를 키운 문단 권력과 그 밑에서 이런저런 자리를 차지하고 이익을 챙긴 사람들, 작가, 평론가, 교수, 출판사 편집위원, 번역가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전체라는 사실을 알았다. 몇십 년 전에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탈퇴한 뒤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확실한 진실’이라는 버팀목이 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여성 문인 등에 행한 그의 성추행에 대하여 피해자나 목격자를 특정하거나, 때와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원고 고은의 성추행 증거들을 적어 재판부에 제출했다. 나는 1심도 이겼고 항소심에서도 이겼다. 대법원까지 갈 줄 알았는데 원고가 상고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면서도 허망했다.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하더니 끝까지 싸울 배포도 없었나?
원고 고은은 재판정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고, 당사자 신문 신청에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핑계를 대며 응하지 않았다. 나는 1심과 항소심의 모든 재판기일에 빠짐없이 출석했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상황을 기억에 의존하여 모두 법정에서 진실하게 진술했다. 자신이 제기한 소송인데 법정에 나올 배짱도 없는 비겁한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란 말인가? 진실을 말한 후배 시인의 글에 대하여 명예를 훼손당하였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그가 전(全) 지구적 시인 맞나?
그의 시집에 어느 대학의 명예교수인 K선생이 아름답고 모호한 해설을 썼다고 한다. K처럼 해외문학을 전공한 먹물들, 최루탄이 쏟아지는 화염의 시대에 외국으로 도피했던 그들에게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감옥에 간 시인’은 빛나는 존재였으리. 얌전한 샌님인 평론가들에게 술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여자를 욕보이는 고은의 요란하고 대담무쌍한 말과 추행은 멋있어 보였을 게다.
내가 경제적으로 가난해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는 원고 고은의 거지 같은 주장을 반박하려 세무서에 가서 지난 10년간 소득금액증명원을 떼며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다시는 그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없을 줄 알았는데… 권력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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