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여성 서품 문제였습니다. 베네딕토16세가 추기경 시절 기독교 교리를 감독하는 신앙교리성을 이끌 당시, 여성도 마땅히 정식 신부가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열망이 있었습니다. “신의 자식에 남녀가 따로 없다”는 논리에도 힘이 실렸지요. 2001년, 논란의 중심 속에서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성 사제서품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저는 말합니다. 열두 사도를 남자로 한 건 예수님이 만드신 틀입니다”. 사실상 거절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었습니다.
21년이 지나 보수의 대들보 베네딕토가 세상을 떠났고, 진보적 교황으로 이름난 프란치스코가 전 세계 가톨릭을 지도하는 지금, 여전히 중심은 금녀(禁女)의 영역입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31일(현지시간) 95세로 선종했다고 교황청이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0년 6월 28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히지노(본명 김희중.오른쪽) 교구장이 로마 교황청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강진관요가 제작한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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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황청의 역사에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 여성이 신부로 서품받고 주교 자리에 오른 것도 모자라 교황까지 올랐다는 믿지 못할 기록들입니다. 그것도 훨씬 더 보수적이었던 1200년 전에 말입니다. 여교황 ‘요안나’가 그 주인공입니다. 세 번째 사색, 가톨릭과 여성입니다.
여교황 요안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포프 존’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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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존이 길거리에서 아기를 낳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1474년 작품으로 독일어가 쓰여 있는 목판화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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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857년. 교황 존이 베드로 성당에서 라테라노 궁으로 행차하고 있었습니다. 불현듯 말 위에서 복통을 느낀 그가 소리를 지릅니다. 그가 말 아래로 떨어지고, 사타구니 사이로 피가 쏟아져피가 솟아 나옵니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응애응애”. 사람들은 경악합니다. 교황이 사실은 여자였고, 그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황 존은 요안나라는 여성이었고,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은 그가 남성행세를 하여 가톨릭 최고 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황청이 그야말로 발칵 뒤집힙니다. 그 이후부터 가톨릭에서는 교황 즉위에 사용할 의자 ‘세디아 스테코라리아’(sedia stercoraria)를 만듭니다. 마치 변기처럼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의자인데, 여기에서 교황의 ‘고환’을 확인했다는 것이지요. 하위 성직자가 교황 후보자의 고환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하베트 듀오스 테스티쿨로스 에트 베네 펜덴테스”. 우리말로 옮기면 “그분은 두 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제대로 늘어져(?) 있노라”라는 뜻입니다.
1500년대 교황들이 앉아서 고환 검사를 받았다고 전해지는 세디아 스테코라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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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즉위한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묘사한 걸로 알려진 삽화. 의자 아래에서 하위 성직자가 교황의 고환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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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황 요안나는 중세 시절 괴물로 묘사되면서 가톨릭 비판의 무기로 활용됐다. 사진은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을 타고 있는 요안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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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자료에도 불구하고, 당대 사람들은 여교황 요안나의 진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관련 문헌도 여럿 남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마르티니의 연대기가 대표작입니다. 교황이 여자라는 파격적인 주제 때문이었는지 필사본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이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여교황의 아들이 살아서 주교가 되었다거나 여교황 요안나가 죽지 않고 살아 도망쳐 한 수도원에서 살고 있다는 변형된 버전이 퍼졌다고도 합니다.
1450년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제작된 비스콘틴 스포르차 타로카드에 여교황 모습이 묘사돼 있다. 이 타로카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 중 하나다. 미국 뉴욕 모건 라이브러리 뮤지엄 소장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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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황 이야기 그 자체는 거짓일 가능성이 크지만, 전혀 뜬금없진 않습니다. 모티브가 된 사건은 있어서입니다. 교황청 수뇌부를 뒤흔든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904년 교황 세르지오 3세 시절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도덕적이어야 할 교황에겐 애인이 있었지요. 귀족 여성 마로치아였습니다. (당시 가톨릭 종교인들은 애인을 여럿 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로치아는 당시 로마 교황청 유력 인사 여럿과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자신의 입김으로 여러 인물을 교황 자리에 올렸습니다. 단적인 예로 교황 레오 6세는 마로치아와 성적인 관계를 맺고 교황에 올랐지만, 다른 이성과 또 다른 관계를 맺다가 마로치아에게 발각됐습니다. 마로치아는 레오 6세를 가둬 교살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전형적인 국정농단, 아니 교정농단이었죠. 마로치아가 지배하는 교황청의 상황을 빗대 창부정치(娼婦政治, pornocracy 포르노크라시)라고 불렀습니다. 성스러워야 할 교황청이 섹스와 살인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던 거죠.
성직자를 유혹하는 여성을 그린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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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헝가리 다뉴브강 선상에서 로마 가톨릭 주교들이 여성 7명에게 사제 서품을 주고 있는 모습. 교황청은 이들을 즉각 파문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다뉴브 세븐이라 불리는 이들은 여성 사제 서품 운동의 주역으로 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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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도 이들은 전 세계 여성 사제 서품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새로운 종교개혁인 셈입니다. 개신교의 하나인 대한성공회는 2001년 부산교구 민병옥 카타리나 사제 서품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24명의 여성 사제를 배출했습니다. 이 역시 1990년부터 이어진 투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여성 교황의 존재가 결코 전설로만 남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 너무 불순하고, 전위적인 생각일까요. 베네딕토16세가 지키고자 했던 원칙을 우리가 너무 쉽게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완고한 원칙주의로 신의 뜻을 헤아리려 했던 베네딕토 16세. 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축제에서 한 여성이 임신한 여교황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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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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