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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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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스님 손맛'…풀무원·오뚜기 대표도 배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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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 대가 정관스님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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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백양사에는 50cm 가까운 폭설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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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먹을거리가 아니라 자랑거리가 된 소셜미디어 시대다. 하여 “네가 먹는 음식이 너다”라는 독일 철학자의 말이 어딘가 불편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명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냥 먹기만 해서도 안 된다. 잘 먹어야 한다. 그런데 잘 먹는 건 뭘까?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의 정관 스님(66)을 찾아가 물었다. 사찰음식에 담긴 지혜를 엿들을 생각이었는데, 새해 바위처럼 무거운 말씀을 얻어서 하산했다.



세계가 인정한 스님의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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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스님과 함께하는 백양사 템플스테이는 전국 130여 개 사찰 템플스테이 중 가장 인기가 많다. 해외 각지에서 스님을 만나기 위해 천진암을 찾아온다. 백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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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9일. 백양사는 설국이었다. 성탄절을 앞두고 나흘간 50㎝가량 눈이 내렸다. 엉금엉금 몰고 간 차를 쌍계루에 세웠다. 정관 스님이 수행 중인 천진암 가는 길은 눈에 파묻혀 차를 가져갈 수 없었다. 아이젠을 차고 언덕을 걸었다. 20분을 뚜벅뚜벅 걸어 천진암에 닿았다. 정남향, 따스한 볕이 내리쬐는 암자는 한겨울인데도 포근했다.

“차 마시며 조금만 기다리셔요.”

오전 10시. 정관 스님은 사찰음식 교육관에서 제자들과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루 한 끼만 먹을 때가 많다는 스님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삐 손을 놀렸다. 건조기에 버섯을 말리고 배달 온 식재료를 정리했다. “눈 때문에 일주일 만에 택배가 왔거든요. 우리도 며칠 동안 고립돼 있었어요. 이 동네가 원래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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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사찰음식 교육관 벽에 걸려 있는 글귀. 정관 스님은 음식 먹는 정신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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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스님은 1974년 출가했다. 대구, 전남 영암과 장성 등지에서 수행하면서 음식을 배우고 다양한 지역의 식재료를 익혔다. 큰 스님들에게 음식 솜씨를 인정받았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요리가 좋았다. 요리가 재능이 아니라 전생의 연이라고 믿었다. 정관 스님은 “육체와 정신을 잇는 연결고리가 음식이라는 걸 깨달았고, 인연 있는 사람들과 음식을 통한 수행을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관 스님은 2006년 한국전통사찰음식연구회를 시작했고, 국내외 대형 행사에서 사찰음식을 선보였다. 2015년 ‘뉴욕타임스’에 ‘요리하는 철학자’로 소개됐고, 2017년 넷플릭스 프로그램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했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천진암을 찾아온다. 뉴욕타임스에 나온 대로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지난해 3월에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아카데미’가 정관 스님에게 ‘아이콘 어워드’를 수여했다. 석 달 뒤 조계종은 정관 스님을 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했다.



"레시피는 없습니다"



세계가 한식에 열광하는 시대다. 김치, 불고기, 떡볶이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사찰음식도 인기다. 채식 열풍이 부는 서구에서 한국의 사찰음식을 더 주목한다. 왜일까. 스님의 설명이다.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간장과 된장을 보면 발효 음식이죠. 김치 같은 저장 음식도 많죠. 장아찌도 있고요. 음식 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며 움직여요. 거기에 정신이 들어가죠.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부터, 식재료와 자연 그리고 농부에 대한 고마움이 보태져 있죠. 그러니 먹는 사람의 뼛속까지 울림이 전해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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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스님은 레시피를 따르지 않는다. 계절과 식재료의 상태, 그날 그날의 직관에 따라 음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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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사찰음식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면, 요리 구경만 하지 않는다. 음식에 담긴 불교 철학을 듣고, 음식을 대하는 바른 태도까지 배운다. ‘맛있게 먹고 끝’이 아니다. 공양간 벽에는 이런 글귀가 걸려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정관 스님은 제철 식재료를 중시한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사찰에서 가까운 담양이나 정읍의 오일장을 이용한다. 농작물을 직접 기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다. 작물이 많지 않은 겨울엔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 궁금했다. 스님은 뚝딱 일곱 가지 음식을 완성했다. 호박좁쌀죽, 참나물, 미역 무침, 톳나물, 유자청 얹은 샐러드, 연근 삼합, 그리고 스님의 시그니처 메뉴인 표고 조청 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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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9일 정관 스님이 만든 음식. 12시 방향부터 오른쪽으로 미역무침, 참나물, 연근삼합, 표고조청조림, 톳나물과 샐러드, 호박좁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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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톳, 미역 같은 해초가 가장 맛있을 때예요. 삼면이 바다인 건 정말 큰 축복이죠.”

정관 스님이 만드는 음식에는 레시피가 없다. 직관을 따르고 즉흥적으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딸기와 청포도, 연근으로 만든 삼합은 이날 스님이 처음 시도한 음식이었다.

“같은 채소도 계절에 따라 상태가 다른데 하나의 레시피가 있을 수 없죠. 레시피에 의존하면 거기에 걸려서 다음 생각이 안 일어나요. 일체의 집착을 내려놓고 새로 일어나는 에너지로 나를 발견하는 수행의 이치와 같습니다.”



‘풀무원’ ‘오뚜기’ 대표도 배우고 가



음식 맛은? 절밥이라 심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생각보다 간이 셌는데, 과하다기보다는 과감하다고 느껴졌다. 샐러드 드레싱만 해도 다른 색깔의 오미자청과 유자청의 맛이 각각 두드러졌고, 여기에 고추의 알싸한 맛이 묘하게 어울렸다. 표고조청조림은 쫀득한 식감과 깊은 버섯 향이 입안에 오래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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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스님은 지난해 외국을 열세 번 나갔다. 대부분 정부기관 초청으로 사찰음식을 해외에 알리는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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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성 어린 음식은 일상에서 만나기 어렵다. 바쁜 도시인은 시장 갈 시간도 없다. 배달음식, 간편식이 식탁을 지배한 지 오래다. 사찰음식 전도사로서 요즘의 우리 식문화를 보는 심정이 어떨까. 스님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기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풀무원, 오뚜기를 비롯한 많은 식품기업 대표가 천진암을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강조했습니다. 이윤 추구는 어쩔 수 없겠지만, 좋은 식재료로 이로운 음식을 만들어 그걸 찾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나마 요즘은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은 경제 전망이 어둡다. 최악의 경기 침체 전망도 나온다. 이 와중에 식재료와 외식 물가는 치솟고 있다. 문자 그대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스님은 ‘지지 않는 정신’과 ‘에너지’를 강조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와 통하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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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8경 중에 하나로 꼽히는 백양사 쌍계루. 단풍으로 물든 가을 풍광 못지않게 겨울 설경도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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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죠. 근데 기계와 과학을 만든 게 인간 아닌가요? 인간이 과학을 이기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합니다. 선한 음식, 이로운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깨어 있어야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계든 기술이든 수명이 있습니다. 언젠가 끝납니다. 그러나 나의 에너지는 종자 씨앗처럼 계속 남습니다.”

정관 스님은 바쁘다. 주말마다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열세 번이나 외국을 나갔다. 이번 달에는 뉴욕대학생 30명이 천진암을 찾는다. 한데 사람이 부족하다. 스님에게 음식을 배우는 조리학과 졸업생과 요리사 몇몇이 일손을 거드는 정도다. 요리·강연뿐 아니라 행정까지 스님이 직접 챙긴다. 템플스테이를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인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예산이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관 스님은 국내외에서 열리는 온갖 정부 행사에 나가고 있다.

■ 백양사 템플스테이 직접 체험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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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은 "수행하듯 좋은 말을 계속하면 마음이 그 말을 따라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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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군, 내장산국립공원에 자리한 백양사는 백제 시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정관스님과 함께하는 '천진암 사찰음식 체험' 템플스테이와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지난해 12월 28~29일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

오후 3시 법복으로 갈아입고 송강 스님과 함께 사찰을 둘러봤다. 단풍철마다 사진 찍는 이들로 붐비는 쌍계루 앞 연못은 꽁꽁 얼어있었다. 눈 덮인 연못과 누각, 백학봉이 어우러져 그림을 만들었다. 30년 만의 폭설이 만든 비경이었다. 대웅전과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2066호)를 모신 극락보전을 둘러보고 경내를 산책했다. 눈 덮인 고요한 산사를 거니는 것만으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오후 5시. 이른 시간에 저녁 공양을 한 뒤 타종 체험을 했다. 어둑한 밤, 종소리가 골짜기에 길게 메아리쳤다. 타종이 그치자 온 세상이 침묵에 잠긴 것 같았다. 대웅전에서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오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을 받은 쌍계루가 연못에 비친 모습이 낮보다 더 근사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만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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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오전 6시 30분. 공양을 하고 느긋하게 산책을 했다.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도 만났다. "산에 있는 중이 뭘 알겠냐"며 "차나 마시고 가라"고 했는데, 가슴에 깊이 새길 만한 말씀을 들려줬다. 무공 스님은 말을 가벼이 여기는 풍토를 통탄했다. 정치인의 무책임한 말부터 익명을 악용한 폭력적인 댓글까지, 미움이 가득한 말로 한국사회가 병들었다고 했다.

"말도 수행과 같습니다. 계속 연습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색해도 계속 좋은 말을 하다보면 내 마음이 그 말을 따라가고, 상대도 진심을 알아줍니다. 누군가 듣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해도 안 됩니다. 한 번 뱉은 말은 우주에 남아서 반드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장성=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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