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의 캐리커처.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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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출신의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수도자’라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신학자’에 가까웠다.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학자적 면모가 돋보였던 인물이다.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기간에는 오랫동안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맡을 정도였다. 젊었을 때는 진보적 성향이었으나, 나중에는 가톨릭 안팎에서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늘 따라다녔다.
베네딕토 16세는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다. 추기경 시절에는 ‘라칭거 추기경’으로 통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을 휩쓸 때도 바이에른주는 가톨릭 신앙을 지켰던 지방이다. 그러니 고인은 어려서부터 철저히 가톨릭적인 사회 환경에서 자랐던 셈이다. 고인의 가족도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바티칸을 찾아온 삼소회(불교·천주교·원불교 여성 수도자 모임)의 천주교 곽 베아타 수녀(왼쪽 가운데)와 원불교지정 교무(왼쪽 아래)를 축복하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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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뮌헨 대학과 프라이징 대학을 거쳐 본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20년 넘게 신학자로 활동하며, 숱한 강연과 저서를 출간했다. 고인은 생전에 “만약 어쩔 수 없이 무인도로 가야 한다면 두 권의 책을 가지고 가겠다. 성경과 아우구스티노(성 오거스틴)의 『고백록』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인간의 지성보다는 하느님의 은총에 무게 중심을 두는 편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학생 신부였을 때,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당시 교수였던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로부터 수업을 들었다. 라칭거 교수가 너무 깐깐해 김 추기경이 논문 작성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도 있다. 나중에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즉위 미사에서 사제급 추기경들 중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이 최선임자로 교황에게 순명 서약을 하기도 했다.
고인은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교황청에 입성했다. 이후 남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세속주의, 무신론 등에 맞서 보수적 입장을 강하게 취했다. 저명한 해방신학자들을 교황청으로 초청해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교회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지 말라”고 날 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세계적인 신학자 한스 큉이 교황무류성(敎皇無謬性ㆍ교황이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서 신앙 및 도덕에 관하여 내린 정식 결정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 교의를 비판하자, 큉 교수의 수업 및 저서 출간 금지 결정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고한 보수적 행보로 인해 “전차 추기경”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2007년 로마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만나 고려 상감청자를 선물한 뒤 자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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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황은 원래 로마의 주교직이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출신이 오랜 세월 교황이 됐다.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됐을 때 파격이었고, 이어서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 됐을 때도 파격으로 여겨졌다. 2005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선출됐을 때, 콘클라베(교황 선출 투표)에서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던 사람이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주의와 맞서 싸웠다면, 베네딕토 16세는 재임 기간에 현대사회의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무신론과 소비 만능주의에 맞서 싸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에 로마 인근에 위치한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카스텔 간돌포 별장을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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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안팎에서 교황이 소화해야 하는 공식 일정은 무척 많다. 심장박동기를 달고 살았던 베네딕토 16세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재임 기간 베네딕토 16세의 아시아 방문은 성사되지 않은 이유도 건강 때문이었다. 2013년 2월 베네딕토 16세는 건강 문제로 교황직을 스스로 사임했다. 오랫동안 가톨릭 교황은 종신직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 만에 생전에 퇴위한 교황이 됐다. 이후 베네딕토 16세는 명예 교황(Pope Emeritus)으로 지내왔다. 퇴위 후에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을 다룬 ‘두 교황’이란 영화가 제작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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