숄츠 총리 친중 행보
11월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담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숄츠 총리는 시 주석의 세 번째 연임이 확정된 후 중국을 방문한 첫 서방 지도자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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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對)중국 압박 전략에 거리를 두는 듯한 ‘유럽연합(EU)의 맏형’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의 최근 행보를 두고 국제사회에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최근 ‘친중’이란 의심까지 사는 숄츠 총리의 움직임은 여러모로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달 4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중국공산당 10월 당대회에서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이후 중국을 찾은 첫 서방국가 수반이었다.
앞서 숄츠 총리는 지난달 2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에 보낸 기고문에서 세계 식량위기 종식, 코로나19 및 기후변화와의 싸움에 필요한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론을 강조하면서 “중국은 중요한 파트너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이어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보낸 최신호 기고를 통해서는 중국 고립 일변도 전략에 동의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냈다. 지난 5일 실린 ‘글로벌 시대전환(Zeitenwende)-다극화 시대에 신냉전을 피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두고 “20세기 가장 끔찍한 방식의 군사공격을 자행했다”며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중국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부상을 이유로 중국을 고립시키거나 협력을 저해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적었다.
이유가 뭘까. 기고문을 뜯어보면 미·중 패권 갈등 구도 속에 독일이 처한 국제 질서와 경제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에 기반한 ‘이념’보다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실리’에 기울 수밖에 없는 독일의 현실과 관련해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경제가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기록적 물가상승률, 공급망 차질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독일의 경기 침체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1분기 성장률 0.8%를 기록했던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끊는 ‘가스 전쟁’을 일으킨 뒤인 지난 2분기 0.1%로 추락했다. 올 3분기에 0.3% 성장하면서 선방했지만,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는 각각 -0.4%, -0.5%의 역성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독일연방은행은 지난 10월 보고서에서 “독일 경제는 경기 침체의 문턱에 있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독일에 중국은 놓칠 수 없는 ‘빅 마켓’이다. 2017년 이후 독일의 최대 무역 파트너는 중국이다. 지난해 대중국 수출은 1440억 달러로 대미 수출(1230억 달러) 규모를 웃돌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실제 숄츠 총리는 중국을 방문한 뒤 시 주석으로부터 두둑한 ‘선물’을 챙겼다. 중국은 숄츠 총리 방문에 맞춰 독일 제약사 바이오엔테크 백신 접종을 자국 내 외국인들에 대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또 민항기 구매를 담당하는 중국항공기재그룹은 유럽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의 여객기 140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총 170억 달러(약 24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숄츠 총리는 방중 때 폭스바겐·지멘스·바스프(BASF) 등 독일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12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또는 관계자들과 동행했다. 폭스바겐은 전 세계 수출 물량 가운데 약 40%를 중국에서 판매하며, 독일 최대 화학기업 바스프는 세계 화학시장의 5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에 2030년까지 100억 유로(약 13조68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숄츠 총리의 이런 실리 행보는 유럽 각국은 물론 자국 내에서도 적잖은 비판을 낳고 있다. 독일 외교전문지 모르겐라게 오이넨폴리티크의 울리히 스펙트 에디터는 “현재 독일 정부가 과거 정부의 러시아 정책 실패를 개탄하는 것처럼 차기 독일 정부는 현 정부의 중국 정책 실패를 개탄하게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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