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총장 강경환), 부여군(군수 박정현)과 추진하고 있는 부여 군수리사지 발굴조사 중 새롭게 확인한 백제 사찰의 중문터와 남회랑터 기단석 조사 성과를 발굴현장에서 14일 오전 10시 공개한다.
부여 군수리사지는 일제강점기(1935~1936년)에 목탑터, 금당터, 강당터 등이 조사되면서 금동제 불상과 기와, 전돌 등이 출토돼 백제시대 사찰로 확인된 바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부여 군수리사지 중문터와 남회랑터 전경(북→남) [사진=문화재청] 2022.12.14 89hklee@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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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5~2007년, 2011년에는 정확한 가람배치와 규모를 확인하고자 금당지, 목탑지, 동편일대에 대한 조사도 진행됐다. 하지만 군수리사지의 중문터는 일제강점기에 목탑터 남쪽에서 발견된 기와 무더기 인근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만 됐을 뿐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 조사에서 목탑터 중심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25m 떨어진 곳에서 남동쪽 모서리에 놓인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가 발견되면서 중문터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처음으로 파악하는 성과를 거뒀다. 중문의 기단 규모는 동서 길이로 약 14m로 추정된다.
또한 남회랑터에서도 남쪽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 일부를 확인했는데 중문보다 좁은 기단을 갖춘 회랑이 중문의 동쪽으로 약 10m 이어진 것으로 보이며 다만 중문과 남회랑의 서쪽 부분은 사찰 폐기 후 축조된 백제시대 도로(남-북 방향)로 인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가구식기단 참고사진 미륵사지 서탑 [사진=문화재청] 2022.12.14 89hklee@newspim.com |
이전 조사에서 확인된 군수리사지 목탑과 금당의 기단이 벽돌이나 기와를 세우거나 쌓아서 만든 것인데 반해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중문과 남회랑의 기단은 돌로 만든 석축기단이 특징이다. 중문의 기단석은 'ㄱ'자 형태로 잘 다듬은 모서리 지대석(기초석)으로, 그 윗면에 턱이 마련되어 있어서 이곳에 우주석(기단 모서리에 세워지는 기둥석)을 끼워 놓고 그 위에 납작한 갑석(대석 위에 올려놓는 돌)을 얹은 가구식 기단 구조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중문터와 남회랑터는 백제 사비도성 내부에 위치한 사찰인 군수리사지의 중심 사역 범위와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특히 중문의 가구식 기단은 부여지역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것으로, 백제 사찰의 중문 복원을 위한 기초 자료가 확보됐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은 부여군과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진정성 있는 정비와 관리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89hk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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