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민감한 시기'라 연기했으면 하는 의사"
양금덕 할머니 서훈 취소 이어 잇단 '저자세 외교'
미쓰비시중공업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4)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후문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 대법원 판결 4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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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를 비롯한 한일 양국의 쟁점 현안을 논의하려던 민관 토론회가 돌연 연기됐다. 외교부가 "민감한 시기라 행사를 미뤘으면 좋겠다"고 종용한 탓이다.
외교부가 의견수렴을 위해 대국민 공청회까지 열겠다며 '열린 자세'를 강조한 것에 비춰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다. 윤석열 정부가 문제 해결이 아닌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 데만 골몰해 '저자세 외교'를 감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13일 외교가에 따르면 다음날 열릴 예정이던 '한일관계 민관대토론회'가 급작스럽게 연기됐다. 연기라고는 하지만, 다음 토론회 일정을 공지하지 않은 터라 사실상 취소나 마찬가지다. 토론 참가 전문가들은 이틀 전 연기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이번 토론회는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와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이 공동 주최한 행사다. 지난달 한일정상회담을 거치면서 꽉 막힌 양국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상황에서 당면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를 놓고 민관이 함께 모여 해법을 찾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에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과 방향 △한일협력의 과제(안보와 경제협력) 등에 대해 발표와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토론 참가 예정자 "여러 의견 들어보려는 취지의 행사였는데…"
주최 측 관계자는 "외교부에서 (토론회를) 미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다"며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 정부와 한창 논의하고 있는 강제동원 해법과 관련해 일본 측을 자극하는 발언이라도 나온다면 외교적 부담이 가중된다는 게 정부 판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전 조율은 없었다. 외교부 초청으로 토론회에 참가하려던 한일관계 전문가는 "행사의 취지 자체가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여론을 수렴하거나 설득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정부의 생각과 다른 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로 토론회를 취소시킨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외교부의 '일본 눈치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달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2022 대한민국 인권상'(국민훈장 모란장) 수상자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를 선정하자 외교부에서 부정적 의견을 넣어 제동을 걸었다. 외교부는 "국무회의에 수상자 명단을 올리려면 차관회의를 거쳐야 하는데 인권위가 명단을 늦게 주는 바람에 시간이 없었다"며 절차상 이유를 들었다. 반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나왔다.
앞서 7월 외교부는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재산 강제매각과 관련, 최종 결정권을 쥔 대법원에 "외교협상을 위해 최종 판단을 미뤄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강제동원 피해자 측과 아무런 협의 없이 독단으로 진행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반발을 샀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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