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사건' 서막... 성범죄·마약·경찰 유착까지
버닝썬 운영진·경찰에 정준영과 최종훈도 기소
"마약 수사 미진... 경찰 유착 단죄 안 돼" 지적도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한국일보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등 혐의로 기소된 서울 강남의 클럽 '아레나' 실소유주 강모씨는 1심에서 징역 9년에 벌금 550억 원(10월 28일)을 선고받았다.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상교씨와 김씨를 폭행한 강남 클럽 '버닝썬'의 전 이사 장모씨에게는 징역형 집행유예(11월 8일)가 선고됐다.
언뜻 보면 관련 없어 보이는 두 판결을 묶는 연결고리는 '버닝썬'이다. 김상교씨 사건은 2019년 버닝썬 사건의 출발점이었고, 강씨 사건은 버닝썬 수사 도중 가수 승리(본명 이승현)가 아레나에서 해외 투자자를 성접대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4년 가까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는 버닝썬 사건. 관련 사건까지 대부분 법적 판단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버닝썬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의미는 무엇인지 되짚어봤다.
버닝썬에서 벌어진 폭행, 그리고 눈덩이처럼 커진 의혹들
가수 승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폭행당해 신고했는데 경찰은 왜 나만 수갑을 채웠나."
2019년 1월 믿기 어려운 얘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주인공은 김상교씨였다. 김씨는 2018년 11월 버닝썬에서 장씨 등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는데, 서울 강남경찰서 경찰관들이 되레 자신만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거기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경찰관들이 버닝썬에서 뇌물을 받는지 조사해달라." 김씨의 폭로는 성폭력 범죄, 마약, 탈세 등 버닝썬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일단 승리가 투자업체 유리홀딩스 유인석 대표와 함께 클럽 아레나에서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강남경찰서 경찰관이 버닝썬 측으로부터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면서 경찰 유착 논란에도 불이 붙었다. 심지어 클럽 손님들이 여성들에게 몰래 '물뽕'(GHB) 등 마약을 투약하고 성폭행을 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버닝썬 수사는 가수 정준영과 최종훈의 성폭력 수사로 확장됐다. 이들은 술에 취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면서 불법 촬영을 하고, 영상물을 승리가 포함된 단체방에 공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인석 대표가 '경찰총장'과 문자를 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버닝썬과 경찰 고위 인사(윤규근 총경)와의 유착 정황까지 드러났다. 여기다 아레나 실소유주 강씨가 수백억 원을 탈세한 정황도 포착됐다.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버닝썬 사건의 주·조연들은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①버닝썬과 아레나에서 벌어진 마약 투약과 각종 성폭력(성매매, 불법촬영 등) ②정준영과 최종훈 등이 저지른 성폭행 ③경찰 유착 ④탈세 수사의 결과였다.
법원 "공인인데도 죄의식 없어"... 경찰 유착은 입증 실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재판 결과를 종합하면 ①버닝썬에서 각종 마약이 유통·사용돼 성범죄로 이어졌고 ②정준영과 최종훈 등 연예인들이 성범죄를 저질렀고 ③아레나 실소유주는 550억 원을 탈세했다. 다만 버닝썬·아레나와 경찰 간의 유착관계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금품 등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윤규근 총경과 강남경찰서 경찰관이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유죄 판단이 나온 경우도 단죄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버닝썬 사건의 주범인 승리가 징역 1년 6개월 선고에 그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인기 연예인이자 성공한 사업가로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 공인이었음에도 아무런 경각심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면서도 "횡령 피해액이 대부분 회복됐다"고 밝혔다. 승리와 함께 성매매를 주도한 유인석 대표는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정준영과 최종훈은 징역 5년과 징역 2년 6개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정씨와 최씨는 여러 명의 여성들을 상대로 합동 준강간 및 준강간, 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저지르고 카카오톡 대화방에 내용을 공유하며 여성들을 성적 쾌락 도구로 여겼다"며 "큰 인기를 얻은 가수들로 명성과 재력에 버금가는 사회적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꾸짖었다. 최종훈은 최근 출소했고, 정준영은 2025년 1월 죄수복을 벗는다.
승리가 속한 카카오톡 단체방 대화를 제보했던 방정현 변호사는 "관련자들이 휴대폰 등에 남아 있던 증거를 없애는 바람에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줬다"며 "경찰 유착과 성폭력 의혹 등 밝혀지지 않은 범죄가 더 많을 것이고, 죗값도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클럽 마약 뿌리 못 뽑아... 증거 인멸에 단죄 어려웠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문가들은 버닝썬 사건 수사를 통해 마약과 약물 성범죄의 위험성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의미가 있지만, '절반의 성과'로 평가한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클럽 내 마약 문제에 대해 제대로 수사가 진행됐다면, 마약 투약과 약물 성범죄가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방정현 변호사는 "버닝썬 사건은 유명 연예인이 인기와 부를 바탕으로 재력가 및 공권력과 결탁한 악행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며 "부와 인기가 곧바로 권력이 된다고 착각하지 말고, 이를 악용하면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