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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지목, 가혹행위 피해자 20명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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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누명 피해자 인권침해 진실규명 결정

당시 수사관들 “수사 전 과정 인권침해적이었다”

경향신문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20년간 옥살이한 윤성여씨(55)가 2020년 12월 수원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 청사를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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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고문·허위자백 등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20명 더 있다고 9일 발표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8일 제48차 전체위원회를 열어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에서 누명을 쓴 피해자들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조사를 통해 윤성여씨(55)와 고 윤동일씨 외에 그간 알려지지 않은 20명의 피해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또 진실화해위는 이춘재 사건 피해자 중 1명인 김모양(당시 7세) 사건을 경찰이 단순 가출인 것처럼 은폐했다고 밝혔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이춘재(59)가 1986~1991년 경기도 일대에서 저지른 14건의 살인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2019년까지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2019년 경기남부경찰청은 재조사를 통해 부산교도소에 수감된 이춘재로부터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았다. 이춘재는 처제 강간살해 혐의로 기소돼 무기수로 복역 중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에서 경기 화성·수원경찰서와 경찰국 특수강력수사대 형사 등 가해자 43명의 진술을 청취했다. 경찰 보고서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등 20만 여매의 자료도 분석했다.

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진범이 잡히지 않자 강제추행·절도 등의 혐의를 구실로 누명 피해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만들고 체포영장 없이 연행했다. 이모씨(당시 17세)는 불심검문 중 과도가 있다는 이유로 화성경찰서에 4일간 불법구금 당하며 연쇄살인에 대한 자백을 강요받았다.

A씨는 1987년 5월10일 오후 7시 다방에서 연행된 뒤 영장없이 경기 화성경찰서, 궐리파출소 동탄파출소 등을 옮겨 다니며 7일간 조사를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물적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자백을 받기 위해 조사 장소를 옮겨가며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강압수사를 했다”고 밝혔다.

허위자백을 받아내려고 구타 등의 고문도 가했다. 전모씨(당시 31세)는 1988년 12월 수사본부로 연행돼 5일간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당하면서 자백을 강요받았다. 1988년 1월6일 수원경찰서로 연행된 누명 피해자 B씨는 사흘간 공중 매달리기와 몽둥이 구타 등의 고문을 당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물품을 짜맞춰 증거물을 만들고 허위자백을 강요했다. 경찰은 누명 피해자 C씨를 조사하면서 현장에서 손톱깎이 칼이 발견되자 C씨에게 손톱깎이 칼을 범행에 사용했다는 허위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 C씨의 진술을 구체화하기 위해 28회 이상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기도 했다.

국과수도 증거 조작에 가담했다. 국과수는 수사 당시 박모양(당시 13세)을 살해한 것으로 지목된 윤성여씨의 음모를 채취해 2차례 동위원소 분석을 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비슷한 값을 조합해 감정서를 작성했다. 윤씨는 2009년 가석방되기 전까지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2020년 12월 법원은 재심을 통해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에 의해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도 이뤄졌다. 경찰은 윤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언론에 공개했다. 진실화해위는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는 형법 제126조와 헌법 제27조에 명시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당시 화성경찰서 소속 경찰관 D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용의자로 생각되는 사람들의 주변 사람들을 탐문해 보고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용의자라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며 “수사 전 과정이 인권침해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진술했다.

진실화해위는 김모양 살인사건 은폐 의혹의 진실도 규명했다. 피해자 김양은 1989년 7월7일 학교에서 귀가하다 실종됐다. 경찰이 단순 가출로 사건을 종결해 30여년간 미제 가출사건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2019년 경기남부경찰청이 재조사 과정에서 이춘재로부터 “김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후 경기남부경찰청은 형사계장 이모씨 등 2명이 당시 김양의 유골 일부와 유류품을 발견하고도 유족에게 알리지 않고 은닉한 혐의를 확인해 입건했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화성경찰서 소속 경찰관 E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실종이나 살인사건이 되면 언론의 관심이 커지니 단순 가출로 축소해서 조사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누명을 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법은 국가가 윤씨에게 18억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달 17일 수원지법은 국가가 김양 실종사건의 유족에게 2억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무부는 지난 1일 법원 판결을 받아들여 두 사건의 항소를 포기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불법구금, 가혹행위, 허위자백 강요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이뤄진 것에 대해 신청인 및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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