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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여성 CEO들 경영능력 입증, 긍정적인 선례…유통업계 고위직 진출 더 늘어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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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대표, '18년 차석용 체제' 변화 이끈다

세계일보

(왼쪽부터)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이사, 이선정 CJ올리브영 대표이사, 안정은 11번가 대표이사. 각 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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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연말 정기 인사가 마무리되는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발탁한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능력있는 여성 인재를 수장으로 올리고 여성 임원 비율을 높이면서 사업의 혁신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8일 뉴시스와 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 CJ올리브영, 11번가 등은 처음으로 최고경영자 자리에 여성 인재를 발탁했다. 이를 중심으로 핵심 보직에 여성 임원들을 대거 배치했다.

여성 CEO들의 탄생 배경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강조하는 최근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국내 기업의 ESG 공시가 의무화하면서 기업들이 다양성 경영 측면에서 여성 임원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이정애 LG생활건강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사례다. LG생활건강 공채 출신인 이 신임 대표는 LG그룹 내 첫 여성 CEO로 발탁됐다. 특히 18년 간 회사를 이끌어 온 차석용 부회장이 용퇴하고 여성 CEO를 발탁했다는 점에서 재계의 관심이 쏠렸다.

앞으로 이 대표가 지난 18년간 이어진 차 전 부회장 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조직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985년에 입사한 그는 생활용품·럭셔리화장품·리프레시먼트(음료) 등 LG생활건강 전반 사업 부서를 두루 거치며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공을 들였다. 특히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후'를 연매출 1조 클럽에 입성시켜 마케팅 능력을 인정 받았다. LG생활건강의 음료 부문 계열사 코카콜라음료㈜의 대표이사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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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우선 중국 봅쇄 영향으로 고꾸라진 실적을 끌어 올려야 하는 무거운 속제를 안고 있다. 특히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북미와 일본 등 포스트 차이나 시장을 개척해 활성화 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LG생활건강은 지난 2005년 이후 17년 연속 흔들림 없는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중국 봉쇄 장기화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지난 3분기까지 LG생활건강 누적 매출은 전년 대비 11%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44%나 줄어든 상태다.

CJ올리브영도 그룹 내 최연소 대표로 이선정 CJ올리브영 경영리더를 발탁했다. 1977년생 40대인 그는 올리브영 최초의 여성 CEO다.

이 신임 대표는 상품기획(MD) 전문가로 불리며 상품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속 승진했다.

이 신임 대표는 CJ올리브영이 증권시장 침체로 한 차례 연기한 기업공개(IPO)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와 함께 기업가치를 끌어 올리기 위한 실적 강화와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하는 숙제도 있다.

앞서 CJ올리브영은 올해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준비를 해왔지만, 금융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약 없는 연기에 들어갔다.

11번가는 안정은 최고운영책임(COO)을 신임 대표 이사로 발탁했다. 안 신임 대표 역시 11번가의 첫 여성 CEO로 하형일 사장과 각자 대표를 맡게 된다.

안 신임 대표는 야후코리아부터 네이버·쿠팡·LF 등을 거친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 전문가로 통한다. 내년 상장을 앞두고 있는 11번가는 SK플래닛에서 독립 후 내실을 다지는 과정에서 쪼그라든 점유율 회복이 시급한 과제다.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와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라이브11' 등을 탄생시킨 안 대표는 상장 전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신규 서비스 확대 및 악화된 수익성 제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11번가는 올해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한 1899억원을 기록해 2018년 독립 법인 출범 이후 분기 기준 최고치를 달성했다.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와 익일배송 서비스 '슈팅배송'의 성장에 힘입은 결과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마케팅 비용 증가로 인해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어 수익성 개선이 시급한 상태다.

이미 유통 업계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여성 CEO로는 김선희 매일유업 사장과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창업주이거나 오너 일가와 관련한 인사들이다.

유업계 최초 여성 대표이자 여성 장수 CEO로는 김선희 매일유업 사장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취임 이후 김 사장은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 수년 간 실적 개선을 보이며 안정적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유업계가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하는 것과 달리 매일유업이 승승장구한 비결은 김 사장 특유의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꼽힌다. 김 사장은 분유와 우유에 의존하지 않고 전 연령을 대상으로 사업 육성에 나섰는데 최근 결실을 맺고 있다는 진단이다.

김 사장은 외부에서도 탁월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현직 CEO로는 이례적으로 타 대기업인 SK㈜의 첫 여성 사외이사도 맡았다. 매일유업은 최근 SK 및 미국의 대체 유(乳)단백질 기업 퍼펙트데이(Perfect Day)와 함께 대체 유단백질 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3자 합작법인 설립을 논의 중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산업 전반에서 고위직 관리자 직급의 여성 비율이 현저히 낮은 편이지만 이번 각 기업들의 파격 인사로 앞으로 분위기가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유통업계 인사로 여성 CEO들이 경영능력을 입증하고 긍정적인 선례를 만든 만큼 앞으로 여성의 고위직 진출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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