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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전자오락 ‘뿅뿅’·달그락대는 스푼도 현대음악의 재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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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프린스턴대 서주리 교수

기발한 타악기 연작으로 주목

美구겐하임재단 펠로십 수상도

조선일보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작곡가 서주리씨가 7일 서울 중구 경운궁 양이재 앞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12.07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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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작곡가는 보통 현실과 유리된 채 골방에 틀어박혀 복잡한 이론과 씨름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작곡가 서주리(40) 미 프린스턴대 교수의 경우는 다르다.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라이팬과 숟가락은 물론, 전자 오락에서 뿅뿅 울리는 일상적 소리들마저 그에겐 훌륭한 작곡의 소재가 된다.

두 명의 타악기 연주자가 10개의 스푼을 두드려서 다채로운 리듬을 빚어내고, 프라이팬을 뒤집어 놓고 젓가락으로 두드리는 등 기발하고 위트 넘치는 타악기 연작들로 미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연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서 교수는 미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2014년 프린스턴대 교수로 임용됐다. 2016년에는 빼어난 역량을 보여준 학자·작가·예술가들에게 수여하는 미 구겐하임 재단 펠로십(fellowship)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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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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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는 7일 인터뷰에서 “무술 영화에서 젓가락 같은 주변 도구를 활용해서 싸우는 결투 장면이 갑자기 예술적으로 변하는 것처럼 일상적 순간이나 풍경도 얼마든지 음악적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한 피아노 연탄곡인 ‘피아노리(Pianori)’에선 가위 바위 보의 손 모양으로 건반을 내리찍거나 ‘아리랑’과 동요 ‘우리의 소원’의 선율이 어우러지기도 한다. 그는 “피아노를 배우는 조카들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 그래서 작품 이름도 피아노와 사물놀이를 합쳐서 ‘피아노리’라고 지었다”며 웃었다.

이번에는 악장마다 장난감과 오락의 도구들을 제목으로 붙인 바이올린 곡 ‘장난감 가게’를 들고 왔다. 9~10일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캐나다 맥길대 교수)의 연주로 세계 초연될 예정이다. 범상치 않은 제목처럼 이번 곡도 1악장에선 사전 녹음한 전자 오락의 음향들이 반주처럼 깔리고, 공격적인 헤비메탈 음악 같은 2악장은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 마지막 5악장에선 비눗방울이 터지는 소리들도 들린다. 조진주는 “현대음악은 난해하고 까다롭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서 교수의 곡들은 들으면 곧바로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고 평했다. 서 교수는 “아무리 나이 들어도 누구나 마음속에는 어린이처럼 장난스럽고 순수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음악을 통해서 어린이 같은 감성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작곡가 서주리씨가 7일 서울 중구 경운궁양이재 앞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12.07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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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음악적 영웅은 지금도 베토벤. 하지만 재즈 화성도 공부하고 헤비메탈도 즐겨 듣는다. 그는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적 시도에 대해 “언젠가부터 현대음악은 조성을 금지하고 장르 간 결합도 금지하는 등 너무나 많은 금기들로 가득하다. 그런 금기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타악기 연주자인 남편과 함께 드럼과 건반의 2인조 메탈 밴드도 결성할 생각도 있다”며 웃었다. 혹시 작품을 쓸 때 염두에 두는 관객도 있을까. 그는 “음악계와 학교 동료들의 전문적 평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은행에서 은퇴하시고 지금은 열심히 색소폰을 배우시는 아버지 같은 일반 관객들과도 교감을 나누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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