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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박정훈 칼럼] ‘西조선’이 된 나라, 중국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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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억압하고

시장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선진국이 될 순 없다…

한국 좌파가

동참하겠다는 중국몽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조선일보

지난 4월 상하이에서 중국 공안이 방역 정책 비판 시위 참가자를 제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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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독재를 완성한 중국에서 비상식적 일들이 꼬리 물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귀를 의심케 하는 것이 ‘휴대폰 불심 검문’이다. 경찰이 길거리에서 대학생 또래 청년들의 휴대폰을 열게 한 뒤 반정부·시위 관련 내용이 없는지 검열한다는 것이다. 당국의 감시망을 우회하는 가상사설망(VPN)이라도 깔려 있다면 휴대폰을 압수하고 경찰서로 연행해 간다고 한다. 21세기 문명 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나라는 북한이나 이란 정도일 것이다. 중국은 그런 실패 국가들에 비견될 전체주의 공포 사회가 됐다.

거대 중국의 메가 트렌드와 관련해 빗나간 예측이 두 가지 있다. 첫째가 중국 민주화론이다. 중국을 자유무역 질서에 편입시키면 민주 체제로 전환해갈 것이란 믿음이 서구 세계를 지배했다. 미국이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적극 지원한 것도 이런 전략적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제 발전이 정치 민주화를 이끌 것이란 기대는 허망한 착각으로 드러났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지만 민주주의는 찾아오지 않았다. 민주화는커녕 ‘시진핑 황제’가 등극해 ‘중국화된 마르크스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식 모델로 자유민주주의와 체제 경쟁을 하겠다고 했다.

빗나갈 가능성이 커진 또 하나의 예측이 미·중 경제 역전론이다. 중국이 경제 총량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그 시점은 2030년쯤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회의론이 커졌다. 연 7~8%씩 불어나던 중국의 고속 성장세가 멎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은 3% 성장에 그쳤다. 코로나 요인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성장 동력이 한계에 도달한 탓이다. 숨겨진 부실, 부동산 거품, 고령화 등이 맞물려 중국의 성장세는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동부유(富裕)’ 대신 ‘미부선로(未富先老·부자가 되기 전에 늙는다)’ 시나리오가 우세해지고 있다.

여기에다 시진핑의 급속한 좌경화 노선이 경제에 제동을 걸고 있다. ‘중국식 현대화’란 이름 아래 시장을 억제하고 공산당의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중국 지도부 입에서 ‘개혁·개방’이란 말이 사라졌다. 대신 시진핑은 내수 중심, 기술 자립을 내세웠다. 자급자족을 강화하겠다는 뜻인데, 북한식 주체 경제를 연상시킨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실망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주가가 출렁이고 있다. 중국 부자들이 싱가포르 등지로 집단 탈출한다는 뉴스도 나왔다.

시진핑식 통제 경제의 실상은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숙청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중국식 혁신의 아이콘이던 그는 공산당 관치(官治)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회사 지분을 내놓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텐센트·디디추싱·메이퇀 등의 빅테크 기업들도 줄줄이 철퇴를 맞았다. 권력에 밉보였다고 하루아침에 기업을 빼앗기는 나라에서 혁신과 창의성이 살아날 수는 없다. ‘시장’보다 ‘마르크스’를 우선하는 시진핑의 중국 경제는 과거 같은 활력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한국 좌파가 중국식 국가 모델에 동경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진보를 대표한다는 전직 대통령은 “중국몽(夢)에 동참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인류 보편적 가치에서 일탈해 기형적 특수 국가로 변질한 것이 중국의 실상이다. 방역을 이유로 도시 전체를 봉쇄하고 수천만 명을 몇 달씩 집안에 감금했다. 이런 전제 통치가 가능한 나라는 지구상에서 중국과 북한뿐일 것이다. 5억여 대에 달한다는 CCTV와 감시 드론으로 안면 인식·홍채 등의 생체 정보를 수집해 14억 감시망을 구축했다.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사적 동선과 사회적 관계를 추적하고, 전 인민의 언동과 선행·악행 기록을 빅데이터로 집적해 개인별로 사회적 신용 등급을 부여하는 계획까지 추진되고 있다.

절망한 중국 네티즌들은 자기 나라를 ‘서(西)조선’으로 부른다고 한다. 김정은 왕조의 북조선처럼 중국이 ‘서쪽의 조선’이 돼간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권력자 스캔들을 암시한 스포츠 스타가 돌연 종적을 감추고, 체제 비판 인사들이 행방불명되는 일들이 일상화됐다. 억압과 감시, 개입과 통제, 공권력 독재 등에서 중국은 북한을 닮아가고 있다. 북한이 아날로그 감시라면, 중국은 첨단 기술을 총동원한 디지털 감시 국가가 됐다.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몽’은 글로벌 패권 국가의 꿈이다. 경제·군사력, 문화와 소프트파워에서 미국을 뛰어넘어 ‘팍스 시니카’의 초강대국이 되겠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을 통제하고, 인권을 억누르고, 인민을 감시하고, 사상을 검열하는 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는 없다.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하는 전체주의 체제로는 결코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시진핑이 ‘서조선 황제’로 앉아 있는 한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한국 좌파가 “동참하고 싶다”는 중국몽은 환상일 뿐이다.

[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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