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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법무부, 7년 만에 난민업무 지침 전문 공개…‘변호사 조력권’ 보장했지만 ‘불신의 벽’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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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법무부 난민업무 지침 표지. 법무부 난민업무 지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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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인정 심사와 난민신청자 체류관리 등에 관한 법무부 업무규칙을 담은 ‘난민업무 지침’ 전문이 재판부 판결로 공개됐다. 2015년 법무부가 “국가보안”을 이유로 비공개 처리한 지 7년 만이다.

법무부가 ‘깜깜이’로 난민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난민신청자들은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법무부의 처분을 받아들여야 했다. 예를 들어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난민인정 신청 접수조차 받지 않는 경우 어떤 지침에 의한 거부인지, 거부 자체가 규정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경향신문은 법무부의 ‘난민업무 지침’과 개정 전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 지침’을 입수해 전문가들과 비교 분석했다. 216쪽 분량인 ‘난민업무 지침’은 서울고등법원이 비공개를 허용한 3쪽 분량의 정보를 제외하고 모두 공개됐다. ‘난민업무 지침’에는 난민신청자의 변호사 조력권 보장, 난민 불인정자에게 사유서 교부 등 내용이 신설됐다. 하지만 난민신청자들에게 장벽이 될 규정도 적지 않게 존치됐다.

면접 중 ‘변호사 조력권 보장’ 등 개선…신청 ‘장벽’ 여전히 높아


전문가들은 지난 9월 개정된 ‘난민업무 지침’이 2020년 4월 개정된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 지침’보다 인권 보호 측면에서 한층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난민이라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난민신청자에게 지우고, 변호사에게 조력받을 권리를 고지하지 않는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 5년간 난민 인정률은 1.88%에 불과했다.

개정된 ‘난민업무 지침’에는 난민심사 면접 과정 중 변호사 조력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이전 지침에서는 ‘가족, 친지, 친구, 변호사 등 신뢰관계 있는 사람의 동석 허용’이라는 내용만 있었지만, 이번 지침에는 변호사 접견 절차, 변호사 접견 가능 시간 등도 적혀 있다. ‘면접 중이라도 부당한 면접 방법에 대한 변호사의 이의제기 허용’ ‘변호사가 기억 환기용으로 간단한 메모를 하는 것은 허용’ 등도 신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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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난민업무 지침 ‘난민인정 신청 및 심사절차 중 면접’ 항목에 변호사 조력권 실질적 보장이 기술돼 있다. 법무부 난민업무 지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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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불인정자에게는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에 더해 난민불인정사유서도 교부하도록 했다. 난민불인정사유서에는 난민신청자가 진술한 내용과 법무부의 법적 판단 등 불인정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외국인보호소에 있는 난민신청자에 대해 ‘5대 박해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명백하고, 입국 전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행위에 따른 박해 사유로 난민신청 한 경우에는 강제퇴거 명령 및 집행한다’는 규정은 삭제했다. 5대 박해사유는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 등이다.

난민 불인정 결정자들에게 이의신청 절차 및 기간, 행정심판 청구 및 행정소송 제기 기간을 안내한다는 내용도 신설됐다. 난민 인정자들에게 한국 체류 가이드북을 배포한다는 조항도 신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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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인정신청서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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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민신청자들의 보편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규정, 난민신청자의 정보 접근권을 제한하는 지침도 여전히 눈에 띄었다.

난민신청자들은 난민인정 심사 과정 첫 단계부터 ‘언어 장벽’에 부닥친다. 22쪽 분량인 난민인정신청서는 한국어나 영어로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제2 외국어로 쓴다면 번역본과 번역자 확인서도 함께 제출해야 하는데, 난민신청자 대부분은 번역자를 직접 고용해 번역을 맡길 만큼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다. 지난해 난민신청자 2341명 중 국적별 상위 3개국은 모두 제2 외국어를 쓰는 중국(301명), 방글라데시(233명), 나이지리아(164)였다.

최초록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난민인정 신청 사유나 이의신청 사유가 긴급하고 중요할 수 있음에도 번역본을 내지 않은 서류를 냈다는 이유로 심사받을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새 지침은 난민신청자의 심사 관련 정보 접근권도 제한한다. 예를 들어 난민심사관이 난민신청자를 평가한 심사보고서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면접 녹화, 녹취록도 열람만 가능할뿐 복사할 수 없다.

정보 접근권이 제한되면 난민 불인정자들이 ‘두번째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난민 불인정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하거나 이의신청을 하려고 해도 법무부의 어느 판단이 잘못됐는지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짧게는 수시간, 길게는 수일간 진행된 면접 녹화·녹취 기록물을 법률대리인이 통역사를 대동하고 면접봤던 장소까지 찾아가 수기로 적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침 재공개까지 걸린 세월, 7년 5개월


대법원은 2009년 법무부 ‘난민인정업무처리지침’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냈다. 하지만 법무부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내용을 상당수 포함해 공개하기 어렵다”며 2015년 5월 정보공개 청구분까지만 공개하고 이후 개정판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5개월 만인 지난 10월 이 지침이 공개됐다. 법무부가 정보공개 거부 취소 소송 최종심에서 패소한 것이다.

원고는 287일간 인천국제공항에 체류한 콩고 출신 루렌도 가족이다. 이들 가족 6명은 2018년 12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회부심사(난민인정 신청 자격을 충족하는지 판단하는 심사)를 받았지만 이듬해 1월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으려 한다’는 추상적인 이유로 불회부결정 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4월 이들은 법무부 지침에 명시된 불회부 사유 중 구체적으로 어느 항목에 해당하는지 알기 위해 법무부 출입국청에 난민업무 지침 서류 공개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하자 소송을 내 최종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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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렌도 부부가 2020년 7월10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법률대리인들과 난민인정 심사 면접 준비를 하고 있다. 사단법인 두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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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이 공개될 경우 난민신청자들이 이를 참고해 심사 전 경력이나 외관을 조작하거나 허위서류를 작성할 수 있다.”

법무부는 난민 지침 공개 거부 취소 소송 내내 이같은 주장을 했다. 이한재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난민신청자들이 무언가를 조작하고 속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라고 가정하는, 난민들에 대한 법무부의 태도를 보여준다”며 “‘자국으로 돌려보내면 위험한 상황’보다는 ‘추호의 의심거리가 없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난민신청에 대해 ‘불신의 벽’을 세우는 동안 몇몇 나라들은 난민심사 업무 지침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영국 정부는 홈페이지에 난민심사 내부 지침을 올렸다. 난민신청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에는 면접 때 던질 질문과 면접 내용을 기술한 기록물 사본을 받게 될 권리 등 상세한 정보를 적어놓았다. 뉴질랜드와 미국 정부 등도 온라인에 난민심사 매뉴얼을 공개했다.


☞ [단독]베일 벗은 ‘난민 지침’ 뜯어보니…이유도 모른 채 감내해온 ‘편견의 장벽’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5011718001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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