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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ANDA 칼럼] 문재인의 내로남불식 대북전문가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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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구속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4일 "자산(資産)을 꺾어 버리다니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에 서 전 원장을 "최고의 북한 전문가이자 전략가, 협상가"라고 치켜세우면서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으로서는 4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김여정(김정은의 여동생) 특사 방남, 3차례의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주역이자 대북 참모인 서훈이 영어의 몸이 됐으니 실망감을 드러낸 것도 무리는 아닐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만감도 드러난다. 앞서 서 전 실장의 구속영장 청구 소식에 문재인은 "도를 넘지 말라"고 경고성 발언도 내놓았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의 이런 입장 표명은 본말이 전도됐다. 자신의 집권 기간 있었던 잘못된 대북 접근과 정책 노선에 대한 국민 비판 여론과 사법적 프로세스에 대한 도전이다. 말 그대로 내로남불식 인식의 극치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서 전 원장이 받는 혐의는 무겁다. 문 정부 시절인 2020년 9월 북측 수역으로 표류하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무참하게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를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허비하고도 그를 월북으로 몰아갔다. 해양경찰청에 이 씨의 '월북 정황'을 공개하도록 지시하고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와 국정원 첩보에서 문 정부의 '월북 발표'와 배치되는 사항을 삭제하도록 한 혐의도 구속 핵심 사유 중 하나다.

법원이 구속을 결정한 건 서훈의 혐의가 갖는 이런 심각성 때문이다. 사실 관계나 법리적 다툼은 앞으로 공판 과정을 통해 이뤄지겠지만, 일단 증거 인멸이나 공범과 입을 맞출 가능성 등에 우려하며 인신 격폐를 결정한 것이다.

사실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망 사건은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이나 노선의 문제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국민 보호'라는 근본 책무를 저버렸다는 점에서다. 특히 고인의 명예 실추는 물론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진 유족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월북몰이와 증거인멸, 짜맞추기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민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안이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자신의 수하였다는 이유로, 자신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장이나 평양의 15만 군중연설 현장으로 이끌었다는 연유로 서훈 구속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미 간에도 최상의 정보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미국과 긴밀한 공조로 문재인 정부 초기의 북핵 미사일 위기를 넘고 평화 올림픽과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끌어 내면서 평화의 대전환을 만들어냈다"고 SNS에서 서 전 원장의 '치적'을 호소하는 문재인의 말에 국민 공감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문재인이 서훈을 두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모든 대북협상에 참여한 최고의 북한전문가, 전략가, 협상가"라고 말한 대목도 비판 소지가 있다. 국가정보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을 특정 정파에 줄 세워 요직을 주고 최고 수장에까지 오르도록 하는 과정에서 '국익 수호'라는 국정원의 존립 이유는 심각하게 도전받았다. 당사자들의 입신출세 과욕도 한 몫 했겠지만 대북 전문가를 북한의 입맛에 맞는 정책 개발과 꼼수 만들기의 기술자로 전락시킨 정치권력의 책임은 작지 않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이제와서 "서훈처럼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갖춘 신뢰의 자산은 다시 찾기 어렵다"고 강변한다.

문 전 대통령이 "정권이 바뀌자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언론에 공포된 부처의 판단이 번복됐다"고 주장한 대목에서 국민은 손잡이 역할을 할 어처구니 빠진 맷돌돌리기의 당혹감을 느낀다. 자신이 집권하자마자 국정원 서버까지 들여다보며 먼지털이식 이른바 적폐수사를 벌여 굴욕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실형을 살거나 연금이 박탈되고 폐가망신의 수준에 이른 공직자들이 한둘 아니다.

국정원에만 42명의 베테랑 요원들이 적폐로 몰려 비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다는 일념으로 20~30년 일해 온 정보맨들을 하루아침에 국익을 훼손하고 사욕을 채운 파렴치범으로 만들었다. 대북 정보수집에 전념해온 군 정보장교에게는 무려 11가지 죄목을 씌워 기소했다. 가택 압수수색에서 나온 고급 소주병 2개를 가져가 '군납주류 횡령'으로 몰았다.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고통의 시간은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대북 첩보망은 무참하게 무너졌다는 게 현장 요원들의 한탄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일한 전직 국정원장을 줄줄이 '직권남용'이나 '국고손실' 등으로 엮어 보복성 조치를 취하면서 오늘의 비극을 잉태시켰다고 보는 게 국민의 시선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문재인식의 궤변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국민은 이제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고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을 문재인과 그 참모들이 입을 주시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여전히 집권 시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아름다운 추억에 연연해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핵무력 법제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내세워 '서울 과녁' 운운하는 상황에서도 미사일 위기 극복과 평화 운운하는 건 앙천대소할 일이다.

하지만 국민이 더 궁금하고 꼭 답을 얻었으면 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문재인-김정은의 로맨스가 왜 추풍낙엽 신세가 됐을까 하는 점이다. 이건 문재인과 그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사람뿐 만의 생각이 아니다. 문 정부에서 일한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도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과 화해・협력 기류를 '일장춘몽'이라고 꼬집었을 정도니 말이다.

문 전 대통령은 물론 참모그룹의 핵심인 서훈 등은 2018년 소위 '평창의 봄'부터 이듬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파국 이후 남북관계의 전말을 이제라도 국민 앞에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2018년 3월 대북특사로 다녀와서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분명하다"고 우리 국민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세계 앞에 공언한 서훈과 당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입을 열어야 한다. 왜 김정은과 김여정이 문재인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는 막말을 퍼붓게 됐는지 그 연유도 공개해야 한다.

너무 부끄럽고 낯뜨거워 차마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면 윤석열 대통령과 그 참모들에게라도 귀띔해줘야 한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 수 없는 실타래를 떠안은 윤석열 정부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새로운 대북정책에 탄력을 붙이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 문재인과 그 참모들도 '대북정책의 연속성'을 입버릇처럼 말해오지 않았는가.

마침 문 전 대통령은 서훈 구속을 계기로 이대준 씨 피격・사망 관련 사안의 최종 재가를 자신이 했음을 언급했다. 진실 규명과 책임 추궁의 종착지가 '전직 대통령 문재인'이 돼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발언이다. 그렇다면 이제 솔직해져야 할 시간이다. '통치사료'란 이유로 비밀에 묶어버린 정보를 포함한 모든 사항을 공개하면 된다. '통치권자의 결정'으로 눙치겠다는 꼼수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진실규명을 회피하며 장외전만 벌이겠다는 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격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모양새가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권고하고 싶다. 지금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한가하게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거나 반려견 파양 같은 좀스런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안전을 위해 접경지역 해상에서 공무를 수행하다 북한군에 무도하게 숨진 국민을 방치하고 그 명예를 실추시키고, 유족을 고통 받게 한 점에 대해 진솔하게 사죄하는 게 우선이다. 문 전 대통령 스스로 '사람이 먼저'라고 늘 말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의 궤변과 자기변호는 국민들이 반기지 않을 것이다.

yj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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