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주 심층조사선 “졸음운전·과적·과속 감소”
[주간경향] 화물연대 파업의 쟁점은 ‘안전운임제’다. 안전운임제를 한시적으로나마 도입한 이유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화물운전자의 근로여건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도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제도 시행 이후 성과에 대한 평가는 진영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정부와 화주를 중심으로 한 업계는 교통안전 효과가 불확실하고 산업 전반의 비용 부담만 키운다고 주장한다. 화물연대를 중심으로 한 노동계는 제도의 실효성이 검증된 만큼 제도를 영구적으로 도입하고 대상 품목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단순한 임금 인상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안전망 강화와 도로 안전을 확보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의미다.
이봉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11월 29일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인근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삭발 투쟁식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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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같은’ 안전운임제
‘안전운임제’는 임금노동자의 최저임금과 같은 개념이다. 화물차 기사들이 낮은 임금 때문에 과로·과적·과속의 위험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2020년 1월 도입·시행됐다. 2005년 ‘표준요율제’라는 이름으로 화물연대가 제안한 이후 십수년간 진척을 보이지 않던 안전운임제는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표준운임제(현 안전운임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속도가 붙었다.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됐다. 적용 대상은 컨테이너·시멘트 2개 품목으로 제한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안전운임제 적용 화물차 비율은 전체 사업용 화물차 45만여대 중 약 2만6000대(5.73%)다.
안전운임제는 참여 주체들에서 알 수 있듯 수직적 구조다. 화물운송 시장은 화주(화물의 주인)와 운송사(운수사업자), 그리고 화물차주(화물노동자)로 이어진다. 화주는 운송사에 화물운송을 의뢰하며 안전운송운임(화주가 운수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운임)을 지불한다. 운송사는 여기에서 수수료 등을 떼고 화물차주에게 안전위탁운임(운수사업자가 화물차주에게 지급하는 운임)을 지급한다. 화물차주는 대부분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직이다. 이 과정에서 화주는 입찰을 통해 운송사와 계약을 맺고, 선정된 운송사는 다시 소형 운송사에 하청을 주기도 한다. 화주가 지급하는 운송료가 적을수록 최종적으로 화물차주가 가져가는 수입도 줄어드는 구조다. 화물차주들은 수입 보전을 위해 과로와 과속, 과적 운행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안전운임제에서 화주와 운수사업자에게 책임(안전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불할 경우 과태료 500만원)을 묻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토교통부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제도 도입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2018년 3월 안전운임제 한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의 국회 통과 후 “화물차 운임은 운송업체 간 과당 경쟁과 화주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화물차주의 운임을 부산~의왕 간 40피트(길이 12m) 컨테이너 화물 1개를 기준으로 보면, 정부에 적정운임으로 신고된 화물운임(편도)은 75만원인 반면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화물운임은 45만원(2017년)으로 신고 운임 대비 약 60%에 불과했다. 2005년 실제 운임이 38만원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10년 넘게 화물운임이 오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오히려 하락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화물운송시장의 구조적·핵심적 문제가 바로 이러한 저운임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화물차 안전운임제 도입을 추진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2018년 4월 “작년 기준 화물차 사고 사망자 수는 255명으로 전년보다 20%나 늘었고 버스나 택시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며 “정부는 이렇게 화물차 사고가 높은 원인이 낮은 운임에 따른 열악한 운행 환경에 있다고 보고 이를 해소하고자 화물차 안전운임제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안전운임은 국토부가 매년 화물차 안전운임위원회를 열어 결정한다. 총 13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는 국토부가 추천하는 공익 대표위원 4명과 화주·운수사업자·화물차주 대표위원이 각 3명씩 참여한다. 올해 1월 화물차 안전운임위원회에서 의결한 2022년도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전년 대비)은 수출입 컨테이너의 경우 안전운송운임은 1.68%, 안전위탁운임은 1.57% 각각 인상됐다. 시멘트의 경우 안전운송운임은 2.67%, 안전위탁운임은 2.66% 각각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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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업계 “효과 불명확·비용 부담 가중”
윤석열 정부의 국토부는 안전운임제 효과를 부정한다. 3년 가까이 시행한 결과, 교통안전 개선 효과가 불분명했다고 본다. 12월 말 제도 종료를 앞두고 일단은 ‘일몰 3년 연장’을 하되, 적용 품목의 확대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1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 관련 정부 입장 및 대응방안’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운임제를 한시적으로 시행해본 결과 당초 제도의 목적이었던 교통안전 효과는 불분명하다는 연구 결과가 확인됐다”고 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부 의뢰를 받아 지난 2월 국토부에 제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안전운임제 대상 차량이 포함된 ‘견인형 화물차’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19년 21명에서 2020년과 2021년엔 각각 25명과 30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건수도 690건에서 674건으로 줄었다가 다시 745건으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컨테이너와 시멘트 운송차량만 대상으로 조사·분석한 것이 아닌 데다 분석기간이 짧다는 점 등을 들어 “추가 조사 및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성홍모 한국교통연구원 물류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은 지난 6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성과평가 국회 토론회에서 “화물차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다단계 하청 구조가 개선되고, 화물차주의 순수입이 증가하고 근무시간이 감소하는 등 노동여건 개선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교통안전지표의 뚜렷한 변화는 없다. 제도 시행기간이 짧고 코로나19 여파로 단기간 교통안전 개선효과 확인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화물차주들의 근로여건 개선은 뚜렷했다. 컨테이너 화물차주의 수입이 2019년 월평균 300만원에서 2021년 373만원으로 24.3% 늘었다. 시멘트 화물차주의 수입은 같은 기간 201만원에서 424만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월평균 업무시간은 컨테이너 화물차주의 경우 292.1시간에서 276.5시간으로 5.3% 감소했고, 시멘트 화물차주는 375.8시간에서 333.2시간으로 11.3% 줄었다. 원 장관은 이를 두고 “연구용역 결과 안전개선 효과는 뚜렷하지 않고 (화물차주) 소득을 올리는 효과만 나왔다”고 했다.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제도 시행의 성과 없이 비용 부담만 늘었다’는 화주를 중심으로 한 업계 주장과 같다. 업계 주장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전과 이후 컨테이너 운임은 서울∼부산 400km 기준 28% 인상됐고, 시멘트 운임은 의왕∼단양 150km 기준 38% 올랐다. 업계는 또 화물차주의 4대 보험료, 숙박비, 협회비, 통신비 등을 포함해 차량 정비비와 타이어 교체비 등 비용까지 모두 시멘트회사, 즉 화주들이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멘트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명목으로 지급되는 항목만 고정비 15개 항목과 변동비 7개 항목 등 22가지로, 연간 400억원 규모다.
업계는 안전운임을 법으로 강제한 국가도 유일하다고 주장한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전 세계에서 안전운임제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호주 단 한곳이었지만 이마저도 2주 정도 시행한 후 폐기했다. 이 제도 시행을 위한 도로 인프라 정비에 5년간 약 23억달러가 소요됐고, 높은 요금 인상으로 화주들이 다른 대안을 찾으면서 차주들의 일감은 오히려 감소했다”고 했다.
11월 29일 경기 의왕시 한 시멘트 업체에 시멘트 운송 차량들이 멈춰 서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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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운전·과적·과속 등 감소 효과”
안전운임제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도 많다. 지난해 11월 한국안전운임연구단(단장 백두주)이 발표한 ‘한국 안전운임 시행 효과 분석 및 지속가능한 제도 시행을 위한 조사결과’ 보고서는 화물노동자들의 근로여건이 개선되고 삶의 질 또한 개선된 만큼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연구단은 2020년 10월∼2021년 9월 사이에 컨테이너와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차주 1040여명을 대상으로 3차례 전화와 심층 면접조사를 벌였다. 이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 결과 졸음운전 경험비율은 71.8%에서 53.3%로, 과적 경험비율은 24.3%에서 9.3%로, 과속 경험비율은 32.7%에서 19.9%로 각각 감소했다. 운행 중 피로도는 제도 시행 이전 3.76점에서 시행 이후 3.58점으로, 노동환경 위험도는 4.03점에서 3.80점으로 각각 줄어들었다. 반면 하루평균 수면시간은 5.57시간에서 5.83시간으로 늘었다. 보고서는 “3년 일몰제 제한을 폐지해 안전운임의 효과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고 적용대상(품목)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적었다.
화물연대는 제도 시행 이후 화물노동자들의 소득이 크게 올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한국교통연구원 등에 따르면 안전운임 인상률(전년 대비)은 2020년 12.5%, 지난해 1.93%, 올해 1.57%였다. 화물연대는 제도 도입 첫해의 경우 다소 높은 인상률을 보였으나, 이는 열악한 운임을 화물운송 원가비용과 적정소득을 기준으로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제도 도입 이전인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평균 화물운송 운임 인상률은 컨테이너 운임 -0.41%, 시멘트 운임 -14.41% 등으로 각각 감소했다. 지역별, 산업별로 기준 없이 운임이 결정되던 이전에 비해 원가비용과 적정소득을 기준으로 이해주체(화주-운수사업자-화물노동자)가 안전운임위원회를 통해 운임을 협의하게 되면서 오히려 운송료가 투명하게 결정되고 안정화됐다는 게 화물연대의 설명이다.
특히 이러한 소득 변화에도 불구하고 장시간·고위험·고강도 노동 대비 순수익은 여전히 낮은 상태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한국교통연구원이 밝힌 컨테이너 차주의 근로시간을 보면 2019년 월평균 292.1시간에서 지난해 276.5시간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전체 임금노동자(163.6시간)와 운수업(170.0시간) 등과 비교하면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11월 29일 광주 서구 기아 오토랜드 광주공장 남문 앞에서 화물연대 광주지역본부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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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국가는 어떻게 하고 있나
화물연대는 ‘호주가 유일하게 안전운임제를 시행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호주에서 안전운임제와 유사한 도로안전운임제가 2016년 4월 도입 2주 만에 폐지된 것은 맞다. 하지만 제도 시행 효과가 없어서 폐지한 게 아니었다. 보수정부가 들어선 이후 안전운임제 시행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편익보다 크다는 일부 왜곡된 보고서에 기반해 제도를 폐지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화물연대는 주장한다. 또 운송사에 소속돼 있지 않은 피고용 차주에게 도로안전운임이 적용되지 않아 오히려 일감이 줄어든 부작용도 있었다고 했다.
호주는 현재 (1979년부터 안전운임제를 시행하고 있는) 뉴사우스웨일스(NSW)주만 강제성 있는 운임제도를 운영 중이다. NSW주에서는 올 2월 안전운임제 대상을 택배와 플랫폼 배송 부문으로 확대했다. 퀸즐랜드주에서는 강제력 있는 최저운임 제도를 도입하는 법안이 지난 6월 발의되기도 했다. 임월산 국제운수노련 도로운수분과 부의장은 6월 28일 국회 토론회에서 “지난 5월에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다수당으로 집권한 노동당이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전국 수준에서도 안전운임제가 조만간 재도입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호주 정부는 이 당론에 따라 공정한 운임과 노동조건을 포함한 안전기준을 결정하는 독립기구를 꾸리고 이를 중심으로 전국 안전운임제를 법제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캐나다에서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BC주)가 밴쿠버 항만 컨테이너를 대상으로 최저운임제를 운영하고 있다. 브라질은 2018년 화물운송종사자 대파업 이후 최저운임법을 도입해 현재 전국적으로 시행 중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일일 운행시간 제한과 휴게시간을 보장한다.
국제적으로도 안전운임제와 관련한 지침이 있다. 유엔(UN) 산하 국제노동기구(ILO)는 2019년 제정한 ‘운수사업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안전 증진을 위한 지침’에서 “상업용 차량 운전자의 양질의 일자리 부재에 기인하는 예방 가능한 사고와 위험으로부터 국민과 승객을 비롯한 모든 도로 이용자를 보호하는 것은 정부, 사회적 파트너(노사)와 (화주)를 비롯한 도로운송사슬 당사자의 공동책임”이라고 적었다. 이는 외주화와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공급사슬의 정점에 있는 대기업 화주와 물류자회사들이 공급사슬 맨 아래에 있는 화물노동자에게 모든 비용과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화물연대는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과정이 없다면 화물노동자의 운임은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고, 도로 안전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박연수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은 “일몰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제도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없다 보니 화주와 운수사업자들도 제도의 실효성을 부정하고 있다”면서 “대상 품목 확대 요구의 경우도 단순히 임금 인상 차원이라면 개별 노조에서 추진하면 될 일이다. 근본적인 배경은 조합원과 비조합원 가릴 것 없이 전체 화물노동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이는 곧 사회안전망 강화와 전체 도로 안전을 높이는 순방향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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