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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中 젊은층, 코로나 봉쇄로 정치적 자각...팬데믹 재확산 땐 시위 재개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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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이 만난 사람]

중국 사회운동과 불평등 연구한

일라이 프리드먼 코넬대 교수

“시진핑 권력 독점에 적 많아져

당은 블랙박스, 무슨일 있는지 몰라”

지난 10월 29일 미국 애플 ‘아이폰’의 중국 내 제조 기지인 허난성 정저우시 폭스콘 공장에서 대규모 직원 탈주 사건이 일어났다. 코로나로 봉쇄된 공장에서 16일간 일하던 직원 수백 명이 열악한 환경과 음식 부족을 견디다 못해 담장을 넘었다. 일회성 사건처럼 보였던 이 일은 한 달 뒤 예상치 못한 전국적 시위로 번졌다. 지난달 24일 신장 우루무치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가 직접적 도화선이었다. 코로나 봉쇄 조치로 소방차가 제때 진입하지 못해 10명이 숨졌다는 소식이 퍼지자 엄격한 방역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중국 전국으로 확산했다.

중국 당국은 휴대전화 검열과 최루탄 등으로 시위를 진압하는 한편, 베이징·광저우 등 대도시의 봉쇄 조치를 완화했다. 지난달 30일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하자 대대적 추모 분위기를 조성해 여론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다. 유혈 진압으로 막 내린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 이후 처음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전국적 시위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중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 사회운동 등을 연구해 온 일라이 프리드먼 코넬대 교수와 2일(현지 시각) 전화 인터뷰를 했다.

조선일보

일라이 프리드먼 미 코넬대 교수는 2일(현지 시각)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코로나 방역 반대 백지 시위가 중국 사회에 매우 장기적인 영향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백지 시위에 대해 “시진핑이나 공산당을 직접 비판할 공간이 아주 작게나마 열렸다”고 평가했다. /코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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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코로나’, 중국인들을 한계로 몰아붙여

-그간 중국 내 대부분 시위는 소규모에 그쳤다. 왜 이번에는 전국적 시위로 번졌나.

“(제로 코로나가) 전국적 정책이고, 그 정책이 사람들을 절대적 한계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자유가 일부 제약되더라도 그에 따를 의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번 시위의 발생 과정을 보면 사람들이 기본적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먹을 음식이 충분히 없었고, 고층 주택에서 화재가 났다. 봉쇄 중 자신들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깨달은 사람들이 ‘이제 잃을 것도 없다’고 느끼는 상태가 됐다.”

-국수주의 교육을 받아 당국에 순응적인 것 같던 젊은 대학생들도 자유를 요구하고 나섰다.

“몇 년 전까지는 학생들이 더 국수주의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확신이 흔들렸다고 생각한다. 지난 4월 상하이 봉쇄 때 그런 점을 확실히 보게 됐다. 대도시에서 자라 중산층이 기대하는 비교적 안락한 생활 방식을 즐겨온 20대 학생들이 처음으로 ‘상하이처럼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도 국가 권력에는 제약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젊은 중국 학생들은 그 점에 정말 동요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고 느낀 것이다. 또 다른 배경에는 경제성장 둔화가 있다. 젊은이들이 어렸을 때 가졌던 물질적 기대가 충족되지 않고, 부모님들만큼 잘살 수가 없게 됐다. 여기에 ‘국가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정치적 자각이 합쳐져서 변화로 이어지는 주요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방역 완화 후 中 의료 부실 우려

-중국 당국이 코로나 방역 조치를 완화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불만이 가라앉을까.

“시위 참가자들이 어느 정도 만족감은 느낄 것 같다. 다만 시위의 기저에는 다른 종류의 불만들도 깔려 있다. 대규모 확진 사태 없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끝낼 수는 없을 것이란 문제도 있다. 중국의 의료 시스템은 다른 사회복지 제도와 마찬가지로 부유한 대도시 지역에 집중돼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병원들과 비교해 중·서부 지역이나 농촌 지역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은 훨씬 나쁘다. (코로나) 대유행이 다시 일어날 경우 적절한 의료 시설이 없는 곳에서 많은 사람이 중증이 되거나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또 다른 불만이 생겨날 것이고 더 많은 시위가 일어나거나, 시위는 일어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을 화나게 만들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도농 간 격차, 노동 분쟁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낙관적이지 않다. 사회적 문제에 대처하는 시진핑의 본능은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기보다는 감시망과 경찰력 등 사회를 억압할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신장의 위구르 문제다. 문제 해결에 자원이나 인력을 투입하기보다 엄청난 규모의 대형 감옥과 수용소를 몇 달 만에 짓고 놀랄 만한 수준의 탄압을 가했다. 나는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농민공) 문제를 연구해 왔는데, 중국 정부가 20년 동안 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말해왔지만 거의 진척이 없었다.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전국적 사회보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시민사회에도 좀 더 공간을 줘야 한다. 민주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한데, 중국 공산당은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시진핑의 본능적 행동들을 보면 항상 대중을 억압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했다. 미래에 나쁜 징조다.”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한 건 백신이나 병상, 치료제 공급에 자신이 없기 때문인가.

“중국 당국이 (백신이나 병상, 치료제 같은) 자원을 동원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몇 달간은 힘들 것이다. 코로나가 확산하기 쉬운 겨울이란 점도 문제다. 또 다른 측면을 보자면 (제로 코로나 정책 덕분에) 정부가 거대하고 아주 포괄적인 감시 시스템을 돌리는 것이 가능했다. 정부가 (코로나란) 상황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中 엘리트, 習 독재에 희망 잃어

지난 10월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리기 사흘 전 베이징 시내의 육교에 누군가가 ‘수령이 아니라 선거가 필요하다’ ‘(코로나) 핵산 검사 말고 밥이 필요하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건 일이 있었다. 프리드먼 교수는 이처럼 전국적 시위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소규모 저항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시 주석은 집단 지도 체제를 폐지한 뒤 얼마 전 별세한 장쩌민 전 주석의 상하이방이나 공청단 등 다른 파벌을 일절 배제하고 일인 지도 체제를 만들었다. 이런 변화가 시위에 영향을 줬다고 보나.

“물론이다. 20차 당대회가 열리기 직전 베이징 시내의 다리에 한 남성이 나타나 현수막을 내걸었다. 일인 시위였지만 어떤 토론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했다고 본다. 도시 사람들이 시진핑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차 당대회가 열렸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시진핑 사람들로만 채워졌다. 리커창 총리도 퇴출됐다. 이 때문에 지식인과 기업인 같은 도시 지역 엘리트들이 ‘변화의 희망이 전혀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고 본다. 이런 시기에 일부 사람은 먹을 음식조차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자 위험을 무릅쓰고 나가서 시위를 하게 됐다.”

-시 주석이 2013년 집권한 뒤 전국 규모의 시위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권위나 중국 공산당의 리더십을 얼마나 약화시킬 것으로 보나.

“아주 중대한 일이다. (천안문 사태가 있었던) 1989년 이후로 전국적 시위는 거의 없었다. 1989년에도 거의 대부분 도시 지역에 집중된 시위였다. 시진핑이 집권하기 직전인 2012년 영유권 분쟁이 있는 센카쿠(일본명)·댜오위다오(중국명)를 두고 반일 시위가 있긴 했지만 국가의 지원을 받는 시위였다. 이번 시위 참가자들이 (시진핑이나 공산당에) 직접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천안문 광장 같은 공공장소를 점거하거나, 도시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말하기 어려운 문제는 ‘이것이 공산당 내부 정치, 파벌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다. 시진핑에게는 적이 많다. 시진핑은 당내의 많은 묵계를 깨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를 잡기 위해 이런 기회를 이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분명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당내 정치)은 블랙박스나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정치 검열이 ‘백지 시위’ 불러

-1989년 천안문 사태와 이번 시위는 어떻게 다른가.

“1989년에는 주로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최근 시위 참가자들은 더 다양하다. 또 1989년의 중국은 지금보다 정치적 공간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민주화를 중심으로 분명한 정치적 요구를 표현했다. 반면 이번 시위에서 ‘자유를 달라’ 같은 슬로건을 외친 사람은 소수였다. 이번 시위의 상징은 그저 백지였다. 사람들은 ‘우리에게는 어떤 요구를 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검열에 대한 대응이다.”

조선일보

일라이 프리드먼 코넬대 교수가 올해 발간한 저서 ‘인민의 도시화: 중국 도시 내 개발, 노동 시장, 학교 교육의 정치’. 학교 시스템의 불평등을 통해 중국 당국이 도시로 유입되는 농민공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이번 시위가 중국 사회에 장기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그렇다. 매우 장기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시진핑이나 공산당을 직접 비판할 공간이 아주 작게나마 열렸다. 검열 체제는 여전히 강력하고 언론은 매우 강하게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사적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대담해질 수 있게 됐다. 왜냐하면 모두가 현 정책에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담론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는 조화롭고, 안정적이고, 모두가 시진핑을 지지하는 중국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해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안다. 사람들이 극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와서 시위를 했고 전 세계가 그 모습을 봤다.”

☞일라이 프리드먼

중국과 아시아의 사회운동, 도시화, 노사 관계 및 개발 문제 전문가. ‘인민의 도시화: 중국 도시 내 개발, 노동 시장, 학교 교육의 정치’(2022) 등의 저서를 썼다. 미국 영재들이 고교 졸업 전 조기 입학하는 것으로 유명한 바드칼리지 사이먼 록 캠퍼스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11년부터 코넬대학 노사관계대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진명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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