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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대화 대신 조사, 협상 대신 협박···공정위까지 동원해 화물파업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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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정거래위원회가 총파업 중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선 2일 서울 강서구 화물연대 건물 앞에서 공정위 관계자들과 화물연대 측 변호사가 대화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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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화물연대 총파업을 비롯한 올겨울 노동쟁의 전반에 대해 전방위적인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감독하는 기구인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동원해 현장조사를 통해 화물연대를 압박했다. 정유·철강·컨테이너 화물기사들에게는 추가적인 업무개시명령도 시사했다.

노동계는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을 노동 탄압으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화물기사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면서 한편으로는 ‘개인사업자’로 규정해 조사에 나선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화물연대 총파업을 지지하며 동조파업에 나섰다.

공정위 조사, 업무개시명령 확대 시사···‘전방위 압박’


공정위는 2일 오전 10시 서울 강서구에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사무실에 조사관 17명을 보내 현장조사를 시도했다. 노조 관계자들과 조사관들이 조사 방법을 놓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날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노조 측은 “조사 협조 의사가 있지만 현재 상황이 민감하고 조사에 응대할 사람이 없으며, 건물에 입주한 여러 단체들이 동의하지 않아 건물 진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지난달 29일부터 화물연대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가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와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해당하는지 살피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날부터 오는 6일까지 주말 제외 3일간을 조사 기간으로 잡았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화물연대 본부는 대표부 부재 등을 이유로, 부산지역본부는 파업기간 중 조사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현장 진입을 저지하고 있다”며 “고의적으로 현장 진입을 저지·지연하는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조사방해 행위에 해당하므로 고의적인 현장 진입 저지가 계속될 경우 고발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당한 공동행위와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는 합의 등과 관련한 내부 자료가 파기되는 경우 그 위법성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저희는 조사 방해가 지금 상당히 조직적으로 심각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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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화물연대, 이태원 사고 및 코로나19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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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추가 업무개시명령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강경 기조를 이어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어 “정부는 정유, 철강, 컨테이너 등 물류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는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피해가 크게 확산하면 업무개시명령을 즉시 발동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여당 정치인들의 ‘입’도 연일 거칠어지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서 민주노총을 “민폐노총”이라 칭하는 등 강성 발언을 이어가는 중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불법 운송거부로 국민을 인질 삼아 민주노총의 이익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노동계 “노동혐오” 비판···건설노동자 “화물연대 지지 동조파업”


노동계는 정부가 무리한 노동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 조사는 화물연대를 ‘사업자단체’로 전제하고 있는데, 개인사업자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업무개시명령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화물기사들은 한국이 비준 중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통해 노동자의 지위를 보장받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산별노조인 공공운수노조 소속 조합원”이라며 “사업자 혹은 사업자단체의 불공정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을 노동조합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고 과도한 행정권 남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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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총파업 중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선 2일 서울 강서구 화물연대 건물 앞에서 공정위 관계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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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는 이어 “화물연대를 향한 윤석열 정부의 혐오와 공격이 법과 상식을 넘어 광기에 이르고 있다”며 “이건 정부가 아니라 노조혐오에 찌든 무법자 집단이다. 근거도 명분도 없이 오직 노조혐오에 찌들어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공안탄압 파상공세를 엄중히 규탄하며, 더 완강한 투쟁으로 응대할 것”이라고 했다.

노동계에서는 정치인들의 강성 발언이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원 장관의 발언은)문제 해결의 주체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분이 국무위원 장관직을 맡고 있다는 현실이 참 서글프다”며 “이태원 참사 등으로 지지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모든 문제를 다 민주노총에게 뒤집어씌우며 보수세력 결집을 꾀하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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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건설노조 회의실에서 ‘화물연대 파업 지지 건설기계 동조 파업 선언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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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총파업의 여파를 겪고 있는 건설산업 노동자들은 화물연대를 지지하며 동조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건설노조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건설일용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게 된다며 노노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며 “우리는 안전운임제 확대를 위한 화물연대 파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이어 “시멘트가 없어 당장 일 못한다고 울상짓는 게 아니라, 건설현장을 멈춰서라도 화물연대의 투쟁에 함께 승리하겠다”고 했다.

송찬흡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위원장은 “30년 넘게 현장에서 덤프를 운전하며 누구보다 화물노동자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며 “화물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운송을 해줘야 우리의 일도 돌아간다.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로서 화물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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